누구에게나 시련은 온다. 내 기억 속 첫 시련은, 여느 사람과 같게 고등학교를 입학하면서 ’대학 입시‘라는 명목으로 크게 다가왔다.
풍족하게 살지는 못했어도 부족함 없는 가정에서 크게 좋아하는 것도, 바라는 것도 없이 나름의 사랑도 받으며 자랐다.
초등학생 때부터 유일한 취미는 딱 하나 책 읽는 것뿐이었고, 그 외에는 딱히 관심도 흥미도 없었다.
중학생 때도 책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 도서관에 자주 들렀고 글 쓰는 건 그때부터 즐기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다양한 주제로 글을 써 SNS 계정에 글을 공유하고 서로의 글을 읽어주며 조언도 하면서 중학생 시절을 그렇게 보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원하는 글을 마음껏 배울 수 있는 학과를 가기를 원했고, 더 많이 배워 글로 꼭 위로를 전할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랐다. 유일하게 흥미를 가진 게 글이었고, 원하는 건 글쓰기 그것 하나였으니.
처음으로 꿈을 가졌고, 응원해 줄 줄로만 알았던 가족들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내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길 원했고, 내가 원한 직종과는 아예 다른 길을 권했다.
-너라도 안정적인 직업 가져.
그 말은, 형제가 원하는 일을 선택한 만큼 나는 조용히 현실적인 길을 택하라는 뜻이었다. 어쩌면 압박이었을지도 모른다.
행복하고 싶어서 처음으로 원한 꿈은 그렇게 가슴속 깊은 곳에 조용히 묻어가야 했다.
주변의 만류와 내 불확실성으로 접힌 꿈이 그렇게 쉽게 잊힐 리 없었다. 꿈을 이룬 누군가를 어깨너머로 쳐다만 봐도 가슴 한 구석이 저려왔다.
바라고 원하는 것에 확신을 가지고 그만큼의 성과가 없어도 언젠가는 성과를 이룰 것이라 생각하며 나아가는 그들의 눈빛은 하염없이 반짝거렸고 힘들어도 행복해 보여서. 그래서 그런 그들을 볼 때 행복하다가도 이상하게도 눈물이 났다.
-너 그 말에 자신이 있어?
-네 자신 있어요, 정말로요.
난 그렇게 말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나아가지 못하나라는 하염없는 생각에 날 더 몰아붙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게 된다면 나중에 떠올렸을 때는 '내가 조금만 더 어렸으면 도전했을 텐데'라는 생각에 갇혀 또 나를 괴롭힐 게 뻔했다. 충분히 어린 지금도 더 도전하는 이들을 부러워하며 바라만 보면서.
스크린 속 노래, 영상, 연예인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충분한 보상을 받는 삶. 하지만 그들도 꿈을 위해 포기한 것이 많았을 것이다. 뼈를 깎는 고통도 있었을 테지만, 나는 그런 부분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원래 노력한 것도 없으면서 바라기만 하는 사람은 그런 법이다. 남의 것만 탐내고 끝없이 부러워만 하다가 배만 아파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은 원래 평생을 꿈꾸던 일을 일련의 사고로 그만하게 되고 하고 싶은 것을 다시 찾아 새롭게 다시 도전했다. 나는 또 그런 부분을 외면했다. 그렇지 않으면 난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한심해서 살 수가 없었다. 그런 마음은 끊임없이 나 자신을 괴롭혀 밤마다 눈물을 훔치게 만들었다.
좋아하지만 자신 없다는 이유로 한없이 회피하고 숨기던 그의 결말은 어땠을까. 어필하지 못하고 결국엔 남이 정해준 기대로 가는 그의 인생은 안타깝게도 불행하진 않아도 마냥 행복하지도 않았다.
가히 불행하지 않았어도 누군가 지금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망설임 없이 대답할 자신도 없었다.
꿈을 이룬 누군가를 볼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씁쓸하고 한편으로는 불쾌했다. 이 불쾌감이 꿈을 이룬 누군가를 향한 게 아닌 나를 향한 것이라 탓할 수도 없었다.
포기당한 꿈의 결말은 결국 돌아보지도 못하게 된다.
그 기억을 북북 찢어 가슴 깊은 곳 어딘가에 있는 포기한 쓰레기통에 처박아두고 그렇게 잊어버려야 한다.
찢어버린 기억을 하나둘 꺼내어 퍼즐처럼 맞출 때, 형태는 그럴듯해 보이더라도 완전하지 못하다. 멀리서 보면 그림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사이사이 찢어져버린 조각일 뿐.
그 꿈의 주변을 맴돌 뿐, 차마 다가서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바라보는 것조차 너무 아파서 외면하는 걸지도 모른다. 언젠가 완전히 다른 꿈에 매료될 즈음, 비로소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