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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름없는 자 Sep 23. 2021

온라인 게임의 상용화에서 확률형 아이템 논란까지

목적이 된 게임 아이템의 명과 암 1부입니다.


https://brunch.co.kr/@netee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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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게임의 상용화와 게임 아이템의 명암


90년대 당시 한국 게임계는 불법복제로 게임 프로그램을 다운받는 사이트, 총칭 ‘와레즈’에 시달려서 골머리를 썩히고 있었다. 온라인 게임의 등장은 불법복제로 시달리던 한국 게임계에 한 줄기 빛이 됐다. 패키지로 판매하던 패키지 게임과 달리, 온라인 게임은 소프트웨어 제작사나 ISP(Internet Service Provider)를 경유하기 때문에 불법복제를 차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수의 소프트웨어 제작사들이 온라인 게임 개발로 개발 방향을 전환한 이유다.


<바람의 나라>(1996)(이하 바람의 나라), <리니지>(1998)(이하 리니지)를 필두로 온라인 게임이 하나 둘씩 서비스를 시작했고 PC방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나왔다. ADSL를 비롯한 초고속통신망이 보급됐다. 다른 국가에 비해 인터넷 환경만큼은 최상의 수준이었다. 서민들도 쉽게 인터넷에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해서 모여서 활동하기를 좋아하는 한국의 집단주의, 가족주의 문화 역시도 온라인 게임이 대세가 되도록 도왔다. 온라인 게임은 한국 게임계에 성공적으로 안착했고 한국 게임계는 성장해나갔다.


게임 내 ‘아이템’이라는 요소는 온라인 게임계의 흥행과 플레이어간 내러티브의 형성에 크나큰 영향력을 끼쳤다. 아이템이 목표가 됨으로써 플레이어가 엔딩 외에도 지속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 있게 되었으며, 나아가 플레이어간 경쟁과 협력을 동시에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어떻게 아이템이 게임 속 플레이어간 경쟁과 협력을 이끌었는지 두 가지 게임으로 나누어서 분석해보고자 한다. 리니지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WOW)다. 이 두 게임은 같은 MMORPG지만 속은 전혀 다른 게임이며, 두 게임이 게임계에서 가지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 모두 존재)가 있기 때문에 분석의 대상으로 삼기에 적절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통곡의 동굴 지도. 미로형에 복층 구조, 점프 구간도 있기 때문에 다소 복잡한 편이다.


첫 번째는 WOW다. WOW는 게임 속 아이템을 얻기 위해 협력하거나 때로는 상대방과 경쟁하곤 한다. 호드 진영에서 거치는 인스턴스 던전인 ‘통곡의 동굴’의 경우 게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자에게 유용한 아이템을 주기 때문에 많은 플레이어들이 이 인스턴스 던전에 들르곤 한다. 우선 플레이어는 같이 통곡의 던전에 들어갈 플레이어 4명을 모집한다. 총 5명의 플레이어들은 마지막 괴물인 ‘걸신들린 무타누스’라는 멀록을 잡기까지 여러 괴물과 마주하게 된다. 이때 파티의 일원이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괴물을 공략하기 위한 기믹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따라 던전의 진행은 천차만별로 달라지게 된다. 물론 파티원 전원이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전원 공략을 숙지하고, 조합 역시 앞에서 적의 공격을 막아주는 탱커, 막아주는 사이에 강하게 공격하여 적을 죽이는 딜러, 다친 파티원을 치료하는 힐러가 적절하게 배분된 상황이라면 변수가 거의 존재하지 않으므로 무난한 진행이 되겠지만, 상황이 꼭 그렇게 잘 맞는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흥미로우면서 아이러니한 사실이 있다. 사람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상황이 잘 맞지 않기 때문에 플레이마다 항상 변수가 나오고 그걸 극복하는 재미가 생긴다는 사실이다.


파티 플레이를 하면서 아귀가 맞지 않아 파티원이 전멸하게 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그 당시에는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가 쌓일지 몰라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과정 자체가 플레이어들이 만들어 나가는 내러티브가 될 수 있다. 가장 무난한 통곡의 동굴마저 수많은 변수가 있을 정도이니, 파티원의 레벨이 올라가서 더 높은 수준의 인스턴스 던전에 들어갈수록, 최고 레벨을 달성하고 공격대에 도전할수록 변수가 더욱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 변수를 극복하고 개발자가 만들어낸 괴물을 전부 공략하여 던전을 클리어할 때, 플레이어가 얻는 쾌감은 극대화된다. WOW의 오리지널 시절 공격대를 경험해본 플레이어라면, 너무나 어려운 난이도로 공격대원들을 좌절시켜 공격대 파괴자라 불리던 타락의 벨라스트라즈를 비롯하여 어려운 괴물들을 수도 없이 많은 시도 끝에 잡아내었을 때 두 손을 뻗어 만세를 부르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한 보상은 공격대 던전에 들어가 해당 괴물을 사냥하거나, 관련 퀘스트를 클리어하여 얻는 ‘아이템’으로 화룡점정을 찍게 된다.


WOW의 공격대 던전 모두 몬스터의 숫자, 기믹, 맵의 구조 등 규칙과 레벨 디자인은 모든 플레이어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만 플레이하는 과정은 매번 다르다. 같이 플레이하는 플레이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완결은 목표로 하는 각자 어느 정도 차이는 있으나 대다수가 목표로 하는 ‘아이템’을 얻는 순간 끝나게 된다. 소위 ‘고인물’이라 부르는, 게임의 모든 콘텐츠를 끝냈다고 말하는 플레이어의 기준 역시도 필요로 하는 아이템을 전부 얻었는지에 달려 있다.


출처는 중년게이머 김실장 유튜브. 리니지의 던전 구조는 방처럼 구성되어 있으며, 각 방으로 이동하는 길목을 제외하면 구획이 명확히 나뉘어져 있다.


두 번째는 리니지다. 리니지 역시 더 좋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 플레이어 간 경쟁과 협력을 반복하는 구조는 동일하다. 다만 리니지는 경쟁에 좀 더 치중되어 있다. 위의 그림에서 볼 수 있다시피, 리니지의 던전 구조는 여러 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방은 일종의 구획이자 영역이다. 한 플레이어가 하나의 방에서 사냥하고 있으면 그 사냥터가 플레이어의 영역이 되는 것이다. 영역을 차지하지 못한 플레이어는 사냥을 할 수 있는 구역이 제한되므로 경험치와 아이템을 얻기 어려워진다. 플레이어간 갈등이 일어나는 부분이 여기서 시작된다. 영역이 없는 플레이어는 영역이 있는 플레이어와 맞서서 자리 싸움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플레이어 간 영역 싸움은 개인과 개인간의 싸움에서 끝나지 않는다. 영역 싸움에서 패배한 플레이어는 승리한 플레이어에게 분노하게 된다. 다만 개인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기에 같은 혈맹의 플레이어를 불러 상대 플레이어를 공격한다. 상대 플레이어도 혼자 힘으로는 상대 혈맹원 전부를 상대할 수 없기 때문에 같은 혈맹원을 불러모은다. 혈맹간 싸움이 일어나는 과정이다. 리니지의 사냥터는 혈맹간 이권 다툼이 벌어지는 전쟁터인 셈이다. “WOW에서 얼라이언스와 호드 간 전장이 규칙을 정해놓고 싸우는 스포츠에 가깝다면, 리니지의 PVP는 현실 전쟁에 가깝다”고 유튜버 중년게이머 김실장이 지적하듯이, WOW는 설정상으로만 갈등의 대상일 뿐 상대방에게 분노하여 싸우지는 않는 반면, 리니지는 플레이어 간 분노를 적극적으로 유발하여 싸우게 된다는 차이가 있다.


두 게임의 규칙과 레벨 디자인을 비교하여 분석해보면 두 게임의 철학이 다르다는 게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WOW의 인스턴스 던전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파티만 입장할 수 있다. 하나의 파티는 최대 5명으로 구성된다. 널찍한 공간 내에서 고작 5명의 파티가 순차적으로 던전의 괴물을 공략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던전의 괴물들은 전부 정예 괴물로, 플레이어 한 명으로는 단 한명의 괴물도 쉽사리 잡기 어렵다. 괴물이 2~3마리 정도만 되더라도 플레이어 한 명으로는 당해낼 도리가 없다. 따라서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파티를 맺어 역할을 분담하고 협동을 해야 던전을 헤쳐나갈 수 있다. 반면 리니지의 던전은 전혀 다르다. 우선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는 플레이어의 수가 정해져 있지 않다. 던전의 각 레벨은 여러 개의 방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순차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괴물도 소수의 우두머리급 괴물을 제외하면 매우 약하다. 플레이어가 직접 컨트롤을 하지 않고 자동사냥만 눌러놔도 괴물들은 플레이어를 잡을 방법이 사실상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좁은 공간에 수많은 플레이어가 모여있고, 잡을 수 있는 괴물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으니 자연스럽게 더 많은 괴물을 차지하기 위해서 플레이어 간 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개발사 측에서 의도적으로 좁은 공간을 만들고 괴물의 숫자를 제한함으로서 플레이어끼리 경쟁을 하도록 유도했다는 의미다. WOW의 던전이 플레이어 간 협력을 유도하는 규칙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리니지의 던전은 플레이어 간 경쟁을 유도하는 규칙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각1)


MMORPG에서 가장 위대했던 플레이어 간 내러티브 중 하나. 리니지2의 바츠 해방전쟁.


이밖에도 리니지에는 분쟁을 유발하는 너무나 많은 요소들이 있으며, 플레이어는 이 요소들을 쟁취하여 게임 내 권력을 얻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플레이어는 상대 플레이어가 설정상의 적이 아니라 실제 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작게는 던전의 방 하나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크게 보면 특정 우두머리 괴물, 게임 내에 있는 성까지 전부 권력관계가 작동하는 전쟁터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게임 내에 있는 성과 같은 유무형의 자산까지 전부 아이템으로 정의한다면, 결국 리니지 역시도 게임 내 권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아이템이 목적이 되는 것이다. 리니지에서 가장 유명한 일화이자 관련 사건에 대한 분석 논문까지 나온 “바츠 해방전쟁”도 '드래곤 나이츠'라는 게임 속 혈맹이 중요한 사냥터를 전부 차지하고 폭리를 취하는 등 과도한 갑질에 맞서 바츠 서버의 모든 이용자가 들고 일어난 사건이다. 아이템을 얻기 위한 사냥터를 되찾기 위해 시작된 내러티브라는 얘기다. 이처럼 아이템을 얻는 과정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영화나 소설 속 내러티브가 항상 아름다운 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피와 살이 튀는 지옥도 역시도 내러티브가 담아내는 영역이다. 내러티브의 다양화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플레이어 간 경쟁을 유발하는 리니지를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해석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경쟁 그 자체가 다른 의미의 아름다움일지도 모른다.


WOW나 리니지나 게임의 구조는 전연 다르지만 결국 게임 속 아이템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만들어지는 내러티브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아이템의 목적화는 플레이어에게 게임을 지속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게 해주는 동기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플레이어가 만들어내는 내러티브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아이템의 목적화가 갖고 있는 순기능이다. 하지만 아이템의 목적화에는 문제점도 있다. 목표로 하는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 플레이어가 노력해야 하는 과정이 너무나 고되고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간을 들이지 않더라도 목적으로 삼은 아이템을 얻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아이템을 실제 현금으로 거래하는 중개 사이트가 생겨났다. 개발사들은 플레이어들이 원하는 아이템을 돈만 주면 손쉽게 얻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고안했다. 온라인/모바일 게임계 최고의 논란거리인 확률형 아이템이 탄생한 과정이다. 


부분 유료화의 시작과 확률형 아이템의 등장


2001년 <퀴즈퀴즈(1999)>의 부분 유료화는 본 게임뿐만 아니라 한국 게임의 BM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이전까지 가장 많은 게임에서 도입한 정액제 시스템은 한계가 있었다. 당시 가장 성공한 게임이었던 리니지를 비롯하여 많은 수의 게임이 월 29,700원이라는 이용료로 게임을 운영했던 것이다. 29,700원이라는 비용은 플레이어에게 하나의 기준점이 됐다. 성공한 리니지조차 이 금액 이상의 돈을 받지 않는데, 신생 게임들이 이 이상의 돈을 플레이어에게 요구한다는 것은 어려웠기 때문이다. 정액제의 한계는 명확했고 한국 게임 산업은 돌파구를 찾아야만 했다.


퀴즈퀴즈가 도입한 부분 유료화의 의의는 게임 이용료 없이 아이템을 파는 것만으로는 돈이 벌리지 않을 거라는 통념을 깼다는 점이다. 게임 아이템을 돈 받고 팔아도 살 사람은 한정적이기에 플레이어가 매달 돈을 내는 정액제만큼 돈이 벌릴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통념을 깨준 게임이 퀴즈퀴즈였다. 채팅은 무료로 하되 아바타를 꾸미기 위한 아이템은 돈을 주고 사는 부분유료화 모델을 세계 최초로 도입한 게임 산업 BM(Business Model)계의 혁신이었다. 게임을 무료로 할 수 있게 되자 동시접속자 수가 크게 증가했고 수익도 늘어났다. 부분 유료화가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된 것이다.


초창기의 부분 유료화는 캐릭터의 옷이나 스킨을 바꾸거나, 캐릭터의 성능에 관계 없는 악세사리를 사는 정도로만 개입됐다. 많은 플레이어들이 모여서 경쟁하는 온라인 게임의 구조상 성능 좋은 아이템을 유료로 파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게임의 밸런스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다. 게임은 메카닉(피지컬)이라 불리우는 플레이어의 실력이나 노력을 중요시 하는 편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과금을 통해 최고 수준의 아이템을 단번에 갖춘다면 게임의 실력이나 노력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돈 많은 사람만이 해당 게임의 상위권에 군림할 수 있다면 시간을 들여 게임의 실력을 키우거나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기존 플레이어들이 게임에 불만을 품게 된다. 두 번째는 목적으로서의 아이템이라는 온라인 게임의 구조에 치명상을 입히기 때문이다. 앞서 아이템은 플레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동기부여로서 역할을 한다. 하지만 현금 결제를 통해 게임에서 노력하여 얻는 것보다 훨씬 좋은 아이템을 얻는다면 플레이어는 게임을 지속적으로 플레이할 목적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게임 개발사들은 아이템을 직접 파는 대신 뽑거나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유료로 제공하는 시스템을 부분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 방식은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는 아이템을 직접 판매하지 않기에 한 번에 많은 돈으로 아이템을 구입해서 게임 내 밸런스를 무너뜨리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둘째는 가령 낮은 확률을 통해 성능 좋은 아이템을 뽑을 수 있더라도 사람의 운에 달려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공평하다는 명분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이론상의 이야기지만 돈이 없는 사람도 한 번에 원하는 아이템을 뽑을 수도 있기 때문에 가난한 플레이어에게도 기회가 간다는 논리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확률을 도입하여 아이템 뽑기를 하는 편이 매출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개발사측의 계산이 있었겠지만, 명분만큼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출처는 디스이즈게임. 최초의 확률형 아이템인 메이플스토리의 가챠포티켓(왼쪽)과 부화기(오른쪽)다.


‘확률형 아이템’을 첫 번째로 도입한 MMORPG는 <메이플스토리>다. 이 게임은 2004년 6월 확률형 아이템의 시초인 가챠포티켓을 1장당 100엔에 판매했다. 티켓을 뽑기자판기에 넣으면 무작위 아이템이 나왔다. 티켓의 판매량이 예상을 웃돌자, 넥슨은 2005년 7월에도 확률형 아이템을 도입했다. 부화기라는 아이템이다. 게임 내 피그미에그를 부화시켜서 무작위적으로 아이템을 얻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한시적이었으나 꾸준히 판매량이 늘자 판매기간을 늘렸다. 2008년에는 프리미엄 부화기로 업그레이드를 했다. 부화기의 상업적 성공을 지켜본 한국의 게임 개발사들 역시 확률형 아이템 판매에 뛰어든다.


2008년 이후로 확률형 아이템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고 종류도 늘어났다. 기존의 부분유료화 게임이 옷, 스킨, 펫과 같은 감성적 측면의 아이템 위주로 판매를 했었다면, 무기와 방어구 등 기능적 측면의 아이템까지 늘어나게 되었고, <리니지M>의 경우에는 스킬이나 직업까지도 확률형 아이템의 범주에 들어가게 됐다. 확률형 아이템의 범주와 응용은 점점 더 악랄하고 지독하게 상업적으로 변했다. 가령 원하는 아이템을 뽑기 위해서는 그 이전 단계의 아이템을 뽑아야 한다는 이중 가챠, a~z까지의 모든 아이템을 다 뽑아야 A라는 완성품을 얻는 컴플리트 가챠와 같은 예시는 해당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들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리니지2M>의 숙련도 시스템. 숙련도를 습득하기 전(왼쪽)과 후(오른쪽)의 모습이다.


확률형 아이템을 응용한 극단적인 예시로 <리니지2M>의 숙련도 시스템이 있다. 무기를 숙련한다는 의미의 숙련도이며 해당 무기의 숙련도가 올라갈수록 캐릭터의 능력치가 올라간다. 아인하사드의 은총이라는 게임 내 버프를 사용하여 올릴 수 있다. 위 사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숙련도는 총 9단계로 나뉜다. 단계가 올라갈 때마다 캐릭터의 능력치의 종류나 숫자, 배경색이 무작위적으로 올라가거나 변화한다. 배경색은 일종의 빙고 역할을 하며, 저 3x3 배열의 숙련도에서 한 줄이 같은 색깔로 정해지면 추가 능력치가 올라가는 방식이다.

 

문제는 숙련도를 올려도 플레이어의 캐릭터가 필요로 하는 능력치가 안 나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가령 단검을 사용하는 캐릭터는 위 사진의 근거리 데미지, 명중, 치명타 같은 능력치를 최우선으로 확보해야 한다. STR처럼 캐릭터에게 필요없는 능력치가 나온 경우, 플레이어의 캐릭터가 필요로 하는 능력치가 나올 때까지 게임내 재화를 사용하여 능력치 재조정을 해야 한다. 이 과정이 매우 복잡하다. 1단계에서는 사진 아래에 있는 효과 변경 버튼을 눌러 능력치를 재조정하는데 게임 내 화폐인 아데나를 쓴다. 그러다 원하는 능력치가 나오면 능력치를 고정시키고 재조정을 해야 한다. 재조정을 하게 되면 2단계로 넘어가게 되는데, 그때부터는 다이아몬드라고 해서 현실의 돈을 사용하여 결제하는 재화가 필요하다(게임 내에서도 수급할 수 있지만 방법이 매우 한정적이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한 번 능력치 재조정을 하기 위해 필요한 다이아몬드의 수량이 늘어나게 되며, 마지막 9단계에서는 한 번 능력치 재조정을 할 때마다 2000개의 다이아몬드가 필요하다. 다이아몬드 2000개는 현실의 돈으로 치면 5만 5천원 정도다. 능력치 재조정을 한 번 할 때마다 5만 5천원 어치의 돈이 소모되는 셈이며, 원하는 능력치가 바로 나오지도 않는다. 재조정 횟수가 늘어날수록 돈의 소비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능력치 재조정을 하는 데만 억대의 돈을 쓰는 플레이어도 있을 정도다.


그만큼 황당한 수준의 과금 유도에도 불구하고 확률형 아이템은 한국 게임 산업에서 핵심적인 BM으로 자리잡았다. 기존에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는 충분한 플레이 시간을 확보하고, 강한 보스 몬스터나 상대 플레이어를 잡기 위해 공부를 해야 했다. 하지만 확률형 아이템이 상용화되면서 현실의 부자는 손쉽게 원하는 아이템을 얻을 수 있게 됐다. 게임에서 상위권 플레이어가 되기 위해 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돈으로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대신 플레이어가 게임 플레이를 통해 직접 좋은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사라졌으며, 위기 의식을 느낀 플레이어들은 하나 둘씩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4) 확률형 아이템을 비롯한 BM구조를 둘러싼 논란 – 2021년 시위 파동 이전까지

   

한국의 플레이어들은 환멸에 빠졌다. 한국의 온라인/모바일 게임의 점점 늘어만 가는 과금 유도와 확률형 아이템을 중심으로 한 BM구조에 점점 목소리를 높였다. 그럴만도 했다. 플레이어들의 돈은 쓸어가면서 막상 게임은 20년 전과 비교하여 바뀐 게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게임계는 잘 나가는 게임을 표절하기에 바빴고 BM구조만 더욱 교묘해졌다. 커뮤니티에서는 변하지 않는 한국 게임계에 여러 번 경고를 던졌고 ‘한국판 아타리쇼크’가 올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이 바라는 희망적인(?) 미래는 오지 않았다. 오히려 상업적 측면으로만 보면 반대였다. 카피캣이 넘쳐나는 한국 게임을 누가 하냐는 커뮤니티 플레이어들의 우려와 별개로 한국의 게임 산업은 거의 항상 우상향을 가리켰다. 통계가 보여준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20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게임 시장 규모는 17조93억원으로 추산됐다. 직전 연도보다 9.2% 성장한 규모다. 수출액의 규모를 보면 더욱 눈부시다. 2019년 한해의 게임산업 수출액의 비율은 70억 달러의 규모이며, 전체 콘텐츠 산업의 70%를 차지한다. 한류라 불리우는 K-POP, 영화보다 훨씬 월등한 규모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모바일이다. 지난해 모바일 게임 시장 규모는 9조3926억원으로 1년 전보다 21.4% 늘었다. 국내 전체 게임 시장의 55.2%를 차지한다. 커뮤니티에서 플레이어들이 허구한 날 양산형 게임이라고 욕하는 것과 별개로 그렇게 욕먹는 모바일/온라인 가챠 게임들이 한국 게임 산업을 먹여 살리고 있다는 점에는 의문을 품을 여지가 없다.


이러한 모순이 발생한 이유는 간단하다. 대다수의 플레이어는 게임에 그다지 열정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할 때 휴식 용도로 짤막하게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의 다수다. 반면 게임 커뮤니티까지 와서 게임에 대해 검색하고 의견을 내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게임을 열정적으로 하는 열혈 플레이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심심풀이 땅콩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게임에 커뮤니티까지 와서 의견을 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표절을 하든 게임성이 과거와 별반 차이가 없든 일반 플레이어들은 아무런 상관도, 관심도 없다. 지금까지 해온 게임 자체가 적고, 해온 게임이랑 비슷하더라도 그렇게 많이 게임을 해온 것도 아니다 보니 굳이 따지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독창적인 시도를 한답시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대중성을 잡기에는 더 위험할 수도 있다. 독창적인 시도라는 것은 기존에 하지 않았던 시도라는 것이고 게임을 그다지 진지하게 하지 않는 대중에게는 오히려 낯설고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플레이어에게 일침을 가하는 장면을 묘사한 만화의 한 장면(왼쪽)과 해당 만화에 달린 플레이어들의 댓글(오른쪽)


왼쪽의 그림은 나왔을 당시 각종 커뮤니티에서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던 어느 만화의 한 장면이다. 저 만화를 그린 사람을 소위 ‘콰아아갑’이라고 부른다. 이 만화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너희 커뮤니티 하는 사람들은 다른 게임 표절하고 랜덤박스 넣은 게임들을 욕하지만, 실제로 매출 잘 나오는 게임들은 저런 게임들이다. 창의적인 시도랍시고 해봐야 너희들 게임 사지도 않을 거 뻔히 아니까 불만 있으면 그냥 게임을 하지 마라.” 물론 해당 만화는 수많은 플레이어들의 공분을 샀다. 오른쪽 사진에서 볼 수 있듯, 해당 만화를 올린 게시글에는 ‘그러니까 한국 게임 안 한다’라는 식의 반응이 수백개의 추천수를 받은 것처럼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만화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만화에 대해 옹호론과 비판론이 맞서고 있는데 모든 내용을 소개하기는 어렵고 간략하게만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이 만화를 옹호하는 입장에 따르면, 실제 커뮤니티에 있는 소수의 플레이어들의 반응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플레이어의 불매운동이 수익을 단기적으로 감소시킨 적은 있을지언정 게임의 서비스를 종료시킬 정도로 이어진 적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전체가 게임을 불매하더라도 커뮤니티를 하지 않는 누군가는 여전히 게임에 돈을 지르고 있다. 게다가 게임사 입장에서 볼 때 게임을 지탱하는 사람들은 한 번 게임을 사고 마는 패키지 게임을 구매하는 플레이어나 무료로 즐기는 무과금 플레이어가 아니다. 확률형 아이템을 비롯하여 꾸준히 게임에 돈을 지불하는 플레이어들이다. 특히 잡아야 하는 핵심 플레이어이자 VIP고객은 소위 ‘고래’라 불리울 만큼 과금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는 소수의 플레이어들이다. 2016년 상반기 구글플레이 게임 카테고리 총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모바일 게임 매출에서 단 0.15%의 고래 플레이어들이 전체 매출의 41%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에 나타난 통계 결과는 게임회사가 패키지/무과금 플레이어에게 관심을 줄 이유가 없다는 강력한 근거다.     

비판론도 있다. 말로는 독창적인 게임들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한국 게임으로만 범위를 좁혀도 <배틀그라운드>, <영원회귀 : 블랙서바이벌> 등 굳이 심한 과금 유도가 없이도 플레이어에게 폭넓게 받아들여지는 게임들은 분명 존재한다. 이러한 게임들의 수입이 나쁜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게임을 만들라고 했지 ‘유사도박’을 만들라고 하지 않았다. 게임을 만들어서 돈을 벌겠다면 최소한의 선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게임이라고 자칭하지 말라는 것이다. <리니지M>처럼 원하는 아이템 하나를 뽑기 위해 수천만원이 넘는 돈을 내야 한다는 것은(이마저도 운이 없으면 못 뽑을 수도 있다)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수준이다. 이처럼 비판받는 게임 제작자들은 본인은 게임을 만들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기거나 우월함을 과시하기 위해 극한의 현질 경쟁으로 유도하거나 확률형 아이템의 지극히 낮은 확률로 다수 플레이어들의 인생을 망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확률형 아이템은 현행법상 도박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헛점을 이용하여 자신들이 만든 게임이 도박이 아니라 그저 게임 아이템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일 뿐이다.


이 만화를 둘러싼 논란 외에도 확률형 아이템을 비롯하여 한국의 온라인/모바일 게임의 BM구조를 옹호하는 논리와 비판하는 논리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의 온라인/모바일 게임은 흥행가도를 달렸다. 그렇게 욕을 먹는 리니지 시리즈라도 구글 매출 순위에서는 항상 상위권이다. 확률형 아이템으로 점철된 온라인/모바일 게임의 흥행을 바라보면서 패키지 게임을 주로 하는 플레이어들은 확률형 아이템으로 떡칠한 온라인/모바일 게임 플레이어를 보고 대체 왜 게임이 아니라 도박을 하냐면서 온라인/모바일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를 ‘개돼지’취급을 하며 경멸하곤 한다. 온라인/모바일 패키지 게임을 주로 하는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을 비난하는 패키지 게임 플레이어를 보면서 선민의식에 빠진 사람들이자, 정상적인 직장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패키지 게임을 할 시간과 에너지가 없다면서 패키지 게임 플레이어들을 직업이 없는 ‘백수’로 취급하곤 한다. 두 집단은 2020년까지 평행선을 달렸다.


3부에서 계속

(참고문헌은 하나의 챕터가 끝난 후에 한꺼번에 올라갑니다)


각1) '플레이어 사이'의 협력과 경쟁을 유도한다는 의미다. 광의의 의미로 보면 괴물과의 전투 또한 경쟁의 정의에 속하기 때문이다.


용어설명

ISP(Internet Service Provider) : 개인이나 기업체에게 인터넷 접속 서비스, 웹사이트 구축 및 웹호스팅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회사를 말한다. 

공격대 : 대규모 인원으로 공략해야 할 때 구성되는 파티의 묶음으로 약칭 공대. PvE의 최상위 컨텐츠, 혹은 그 컨텐츠를 즐기기 위해 구성된 파티를 뜻한다. 영어로는 Raid라고 말하며, Raiders는 공격대원이다.

가챠 : 게임에서 어떠한 아이템이 뽑힐지 알 수 없는 ‘랜덤박스’(Random Box) 아이템을 구입하는 행위를 뜻한다. 다른 말로 확률형 아이템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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