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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름없는 자 Sep 26. 2021

메이플 스토리 사태를 둘러싼 이성(理性)의 딜레마

목적이 된 게임 아이템의 명과 암 1, 2부입니다.


https://brunch.co.kr/@netee12/24


https://brunch.co.kr/@netee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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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게임업계 연쇄 파동 – 메이플 스토리 사태를 중심으로


<페이트/그랜드 오더>(이하 페그오) 시위를 위해 사용된 트럭.


2021년 1월 초, 넷마블이 유통하는 게임인 페그오의 한국 서버에서 진행하던 스타트 대시 캠페인이 중단됐다. 스타트 대시 캠페인이란 게임 내 처음에는 동일한 게임에서 외국 서버와 한국 서버 간의 보상이 동일하지 않다는 게임 내 공정의 문제였다. 회사가 대처를 잘했다면 사소한 해프닝 정도로 끝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회사 측에서 이 사건에 대한 보상 및 대처가 원활하지 않았다. 그러자 분노한 플레이어들이 결집하여 회사 측과 갈등을 빚게 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하나의 계기였다. 사실 한국 온라인/모바일 게임의 과도한 과금 유도와 확률형 아이템은 이전부터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불만이 많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었던 셈이다. 페그오 사건은 이 폭탄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을 뿐이다. 이후로 ‘3N’이라 불리는 한국 3대 게임업체를 비롯하여 한국 게임계 전반에 쌓였던 불만과 반감이 도미노처럼 폭발했다. 플레이어들은 결집하여 회사와 간담회를 열거나 시위용 트럭을 보냈다. 그렇게 2021년 게임업계 연쇄 파동이 시작된 것이다.


게임업계 연쇄 파동은 전반적으로 심한 과금 유도 및 플레이어를 기만한 회사 측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항의였다. 대다수 갈등의 양상도 플레이어와 사측 간의 갈등이었다. 하지만 다른 게임계 사건들과는 조금 다른 양상으로 나아간 사건이 있다. 바로 <메이플스토리> 확률 조작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단순히 플레이어와 회사 측 간의 갈등에서 끝나지 않았다. 갈등을 겪는 과정 속에서 플레이어 간 갈등과 게임 유튜버, 언론인과의 갈등이 더해졌다는 점에서 짚어볼 여지가 있다.


출처는 중년게이머 김실장 유튜브. 메이플스토리 아이템의 능력치와 추가 옵션이다. 능력치 옆에 녹색 원으로 표기한 부분이 추가 옵션을 나타낸다.


위 사진을 보면, 메이플스토리에서는 게임 내 아이템에 STR(힘), 공격력, 명중치 등의 능력치가 있다. 그리고 능력치 오른쪽에 노란 글씨로 달려있는 추가 옵션이라는 규칙이 있다. 이 추가 옵션은 캐릭터의 능력치를 강화시켜주는 것으로, 높을수록 캐릭터가 강력해진다. 다만 추가 옵션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옵션이 존재한다. 여러 옵션 중에서 플레이어의 캐릭터에게 필요한 옵션은 사실상 정해져 있다. 캐릭터의 직업마다 필요한 능력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가령 소드마스터 캐릭터면 힘이나 공격력이 가장 중요한 옵션이 되고, MaxMP 같은 옵션은 필요가 없다.


사건의 발단은 이 추가 옵션에서 생겨났다. 게임 내 ‘강력한 환생의 불꽃’이라는 아이템이 있다. 아이템에 무작위로 달려있는 추가 옵션을 다시 한번 무작위로 바꿔주는 것이다. 여기서 추가 옵션이 어느 능력치에, 어떤 확률로 적용되는지 설명해주는 자료는 없었다. 회사 측에서 제공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확률에 대해 정확하게 표기해준 자료가 없다 보니 플레이어들은 확률이 일정하게 적용되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밝혀진 확률은 아니었다. 능력치에 따라 더 잘 나오는 확률에 가중치가 있었고, 이를 계산하는 공식도 존재했던 것이다.


다수의 플레이어들은 분노했다. 추가 옵션에 가중치가 있고 없고 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플레이어에게 확률을 고지하지 않았고 각 능력치마다 나올 수 있는 확률이 다르다는 걸 설명해주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회사가 플레이어에게 거짓말을 한 셈이다. 경험상 가중치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 플레이어도 있었지만, 소수에 그쳤고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은 회사의 거짓말을 믿었다. 그래서 값비싼 재화를 주고 강력한 환생의 불꽃이라는 아이템을 구입한 것이다. 확률을 미리 알았다면 구입하지 않을 수도 있었음에도 말이다.


메이플스토리 큐브 아이템의 확률을 고지해둔 자료. 큐브를 사용하면 확률에 따라 최대 세 가지 옵션이 붙는다. 논란 이전에는 이런 자료가 없었다.


플레이어들의 항의가 들어온 이후 넥슨 측에서는 기존에 고지하지 않았던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고지하기 시작했다. 확률이 하나둘 공개될수록 논란은 커졌다. 플레이어들이 나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아이템의 확률이 생각보다 낮거나, 아예 나올 확률이 0%인 경우도 있었다. 위에 언급한 강력한 환생의 불꽃 말고도 또 다른 문제가 큐브 아이템의 ‘보보보’ 사태다. 큐브란 무작위적으로 아이템의 옵션을 최대 세 개까지 추가해주는 아이템을 뜻한다. 현실의 돈으로 구입하는 캐시 재화다. 보보보의 보란 '보스 몬스터 공격 시 데미지 +%'의 줄임말이다. 이 옵션을 가지고 있으면 게임 내 보스 몬스터를 더 쉽게 사냥할 수 있다. 게임 내에서는 몬스터의 HP가 0이 되면 몬스터가 죽는다는 규칙을 차용하고 있는데, 이 옵션이 붙으면 게임 내 보스 몬스터의 HP를 더 쉽게 깎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 내에서 제법 인기가 많은 옵션인 이유다. 보보보란 장비 아이템이 붙을 수 있는 세 가지 옵션 모두가 보스 몬스터 공격 시 데미지 +%로 붙는 경우를 뜻한다.


넥슨 측은 여기서도 플레이어를 속였다. 위 사진의 빨간 원을 자세히 보면 보스 몬스터 공격 시 데미지 +% 옵션은 세 개중 최대 두 개까지만 붙을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논란이 발생하여 넥슨 측에서 확률을 고지하기 이전에는 이 사실을 알 수가 없었다. 보보보를 노리고 큐브 아이템을 사용해도 절대 이 옵션이 나오지 않는다. 정해진 게임의 규칙이 그렇다. 보보보 자체가 안 나온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본질은 게임사의 확률 미고지가 일종의 기망이었기 때문이다. 플레이어에게 확률을 미고지함으로서 나올 수 있는 옵션의 확률이 0% 임에도 나올 수 있다고 믿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유명 게임 유튜버 <중년게이머 김실장>(이하 김실장)을 비롯하여 플레이어들 뿐만 아니라 기성 언론과 정치권마저 이 아이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이유다.


사건의 흐름이 변화한 시점은 유튜버들이 이 보보보 사태를 짚었을 때부터 일어났다. 이전까지만 해도 플레이어들이 합심하여 게임사의 부당한 게임 운영에 반발을 하는 식으로 논란이 진행됐었다. 하지만 보보보 사태 이후로 기존 메이플스토리 플레이어들 중 일부가 오히려 보보보를 문제 삼는 유튜버나 다른 플레이어들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소비자와 비윤리적 기업 간 대립에서 소비자와 소비자 간의 내분으로 사건의 흐름이 뒤바뀐 것이다.


갈등의 구조가 변화한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플레이어들이 ‘쌀먹’이라고 부르는 용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쌀먹이란 ‘게임 내 아이템 팔아서 쌀 사 먹는다’는 말의 줄임말로, 게임 플레이를 통해 얻은 화폐/아이템을 현거래를 통해 현금으로 환전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플레이어들의 행위를 뜻하는 은어다. 앞서 언급했듯이, 게임 내 아이템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될 수 있다는 강력한 근거 중 하나가 이 쌀먹 행위에서 나온다. 온라인 게임은 이미 플레이어 간에 형성된 하나의 경제 체제를 소유하고 있다. 이 경제 체제 속에서 몬스터 사냥 등으로 아이템을 획득하여 현실의 돈으로 환전하는 행위는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의 ‘노동’ 일 수도 있다. 조금만 생각을 돌려본다면, 몸이 불편한 노인이나 장애인이 굳이 밖에 나가지 않고도 집에서 노동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는 일종의 대안 노동 형태가 될 가능성도 있다. 아이템 현금 거래가 위법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2010년 대법원은 게임 아이템 거래가 위법이 아니라는 취지의 판결을 냈다. 게임 아이템 거래 시장이 사실상 합법으로 인정받은 계기였다. 형식적으로나마 현금 거래를 금지한다는 약관이 남아있는 정도다. 게임업계에서도 약관을 폐지하고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남아있는 이유는 아이템 현금 거래로 인해 게임이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식의 여러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다.


사실 이 쌀먹 행위는 게임사가 의도만 가지고 있다면 언제든 무너뜨릴 수 있다. 가령 모든 아이템을 얻는 즉시 플레이어 캐릭터에게 귀속하도록 하고, 타 플레이어 간 아이템 거래를 못하도록 게임의 규칙을 바꿔버린다면 게임 내 쌀먹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안 하는 이유는 플레이어의 쌀먹 행위가 게임사 입장에서도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온라인 게임 같은 경우 단순히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투자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플레이어도 많다. 쌀먹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게임의 경제가 활성화되고, 현금 거래가 원활할수록 이러한 개념으로 접근하는 플레이어들은 많아진다. 가령 <로스트 아크>의 경우 초기에 실제 돈으로 50만 원 정도를 투자하여 캐릭터를 키우고 나면 한 달 40~50만 원 정도의 실수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투자한 금액이 늘어날수록 벌 수 있는 돈은 더 늘어난다. 이처럼 게임 내 경제 체제가 활성화될수록 투자의 개념으로 게임에 접근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늘어나며 이는 게임 자체가 흥행할 수 있는 하나의 요소가 된다. 아이템 현금거래가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명분으로 막는 척하면서도 암암리에 게임사 측에서 규칙을 조정하여 현금거래를 유도하는 이유다. 일종의 게임 마케팅인 셈이다.각1)


분노한 메이플스토리 플레이어가 커뮤니티에 성토하는 글.


일부의 메이플스토리 플레이어들이 분노하는 이유도 여기서 나온다. 플레이어들은 게임 속 노동을 통해 아이템을 획득하는 쌀먹을 하고 있었다. 메이플스토리라는 게임 자체가 일종의 업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유명 게임 유튜버를 비롯한 플레이어들이 보보보 사태를 비롯하여 메이플스토리의 게임 운영에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함으로써 다수의 플레이어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게임 내 아이템을 헐값에 처분하고 게임을 접는 사태가 속속들이 일어났다. 당연히 게임 내 시장에는 재화가 넘쳤고 플레이어들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의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하락했다. 쌀먹을 하는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는 청천벽력이었다. 멀쩡히 다니던 일자리를 잃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쌀먹을 하던 플레이어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의 가치를 보존해야만 했다. 확률 미고지에 항의하던 다른 플레이어와 유튜버들을 공격한 이유다. 넥슨 측이 다른 플레이어에게 확률형 아이템을 보상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이템 보상으로 인해 게임 내 재화가 풀리면 풀릴수록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의 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플레이어 사이에 내분이 발생했다. 해당 사건이 게임사의 잘못된 기업윤리와 현금거래를 유도하는 게임 내 규칙으로 인해 벌어졌음에도 당장 손해를 보는 플레이어들의 눈에 그런 구조적 문제가 들어올 리 없었다. 특히 이 사건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김실장은 기존 메이플스토리 플레이어에게 부모 욕을 비롯하여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온갖 비난을 다 들었다. 김실장 측은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김실장을 옹호하는 플레이어들은 김실장을 욕하는 플레이어들을 게임사에 그렇게 당하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면서 ‘개돼지’로 취급하며 비난했다. 한동안 불길은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보보보' 사태의 딜레마


현대는 자본주의 사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정치적 주체로서 대기업과 같은 거대 조직의 횡포에 맞설 수 있는 방법은 타자와의 연대뿐이다. 혼자의 힘으로는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소비자로서 권리를 주장하기는 어렵다. 법적으로 따지고 싶어도 혼자서는 소송비용과 길고 긴 소송 기간을 감내하기가 쉽지 않고, 설사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도 개인이 하나의 기업을 상대로 승소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정치가 필요하다. 개인이 연대하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뤄야만 공론화가 가능해지고 기성 언론과 정치권에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 과정을 거쳐야만 기업이라는 거대 조직과 비로소 상대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2021년에 도미노처럼 벌어진 게임업계의 연쇄파동 역시도 플레이어 간 연대로 일어날 수 있었다. 개개인만으로는 기업에게 어떤 영향력도 끼치기 어렵다. 게임 하나에 수십억을 쓸 수 있는 서버 1위의 고래 플레이어가 아닌 이상(이런 고래 플레이어도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 트럭 시위, 플레이어와 회사 측 간의 간담회 모두 플레이어들이 연대한 성과였다. 이전까지는 사소한 해프닝 정도로 여기고 플레이어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던 게임업계에서 이 정도로 큰 반응을 일으킨 건 이번 파동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메이플 스토리의 '보보보'사태는 조금 사정이 다를 수 있다. 플레이어 간 입장이 갈리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선 문제로 여기는 쪽의 논리를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이렇다. 첫 번째, 게임 내 확률은 조작된 것이 맞다. 설령 조작이 아니라 플레이어에게 확률을 고지하지 않은 것에 불과하다고 치더라도 그 자체로 조작으로 볼 수 있다. 플레이어들은 게임 내 아이템 설명에 옵션이 존재하니까 당연히 나온다고 알고 확률형 아이템을 구입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고지할 의무가 없었기 때문에 확률 조작이 아니라고 말하는 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짓에 불과하다. 두 번째, 가령 '보보보'가 흔히들 슬롯머신의 '777'만큼 게임 내의 최상위 옵션이 아니더라도 문제가 된다. 문제의 본질은 게임 내에서 가장 좋은 옵션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개발사 측에서 플레이어에게 옵션이 나올 확률을 속였다는 점이다. 앞으로도 이런 사태가 또 벌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더 나아가 게임계 전체를 통틀어서 게임업계 내부의 잘못된 관행을 고치기 위해서라도 따끔하게 비판을 해야 하는 게 옳다는 입장이다.


반면 문제가 아니라는 측의 논리는 이렇다. 메이플스토리를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라면 누구나 다 알다시피, '보보보'는 게임 내 최상위 옵션이 아니다. 오히려 '보보공'같은 옵션이 게임상에서는 더 효율적일 수도 있고, 플레이어의 캐릭터에 따라 다른 옵션이 더 좋을 수도 있다. 가령 '나이트로드'라는 게임 내 캐릭터라면 '보보보'보다 크리티컬 확률 12% 증가 옵션이 세 개 붙는 '크크크'를 더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라면 보보보에 매달릴 이유는 전혀 없다. 플레이어들은 애초에 신경도 쓰지 않던 문제다. 확률이 고지되든 안 되든 간에 플레이어들은 아무런 이상 없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페그오 사태 이후로 갑자기 확률이 고지되고, 커뮤니티와 유튜버에서 시작하여 기성 언론과 정치권까지 문제를 제기하자 비로소 문제가 된 사건에 불과하다. 가만히 있으면 될 일을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든 격이다. 확률형 아이템 그 자체를 문제시 삼았던 것은 과거에도 제법 있었던 일이지만 이번 일은 플레이어들이 신경 쓰지 않았던 게임 아이템의 확률을 문제시했다는 점에서 확률형 아이템을 둘러싼 기존 담론과는 결이 다르다.


여기서부터는 정치 철학의 문제로 들어간다. 공동체의 이득을 위해 개인의 이득을 희생시키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해서다. 이 사례는 매우 공리주의적이다. 게임업계 내부의 잘못된 관행을 고치기 위해 기존 게임을 하던 플레이어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플레이어들과 연대하지 않으며 자신의 아이템 가치를 방어하려는 플레이어들을 보며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원자화된 개인으로 보며 고쳐야 할 사회적 문젯거리로 삼는 것도 잘못된 판단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리 쉽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 이들에게는 메이플스토리 자체가 직업이고, 아이템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은 당장의 생계가 위험해질 수도 있는 문제다. 이들을 보호할 어떤 수단이 없다면 아무리 게임업계 전체라는 공동체의 대의가 중요하더라도 이들에게는 공허한 메아리이자 자신의 생계를 위협하는 ‘악’의 축일뿐이다. 무엇보다 이 문제는 플레이어들이 문제로 인식하고 있지 않은 문제였으며, 오히려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바깥에서 문제시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 사례라는 점에서 더욱 복잡해진다.


미셸 푸코 <광기의 역사> 표지


미셸 푸코의 명저 <광기의 역사>에는 사람이 어떻게 광인으로 취급받게 되었는지가 기록되어 있다.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광인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근대 이후로 이성이란 개념이 생겼다. 반사회적이고 이성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며 광인이라는 명칭을 붙이고 정신병원에 가두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오히려 신성한 무언가로 취급하며 넘어가곤 했던 것이다.


푸코의 지적은 메이플스토리 사태를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탁월한 통찰이 된다. 사회 구조가 문제시할 때 비로소 문제가 된다는 푸코의 권력 개념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넥슨 측은 명백히 확률 조작을 했음에도 이 사실을 모르던 메이플스토리 플레이어들은 아무런 문제로 삼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게 여기며 게임을 했다. 조작이 사실이든 아니든 본인들은 신경도 안 쓰던 사실이었다. 그런데 사회에서 문제시 삼은 이후부터 멀쩡히 게임하던 자신들이 푸코가 지적한 ‘광인’이 되어버리고 사회에 의해 통제받아야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모르고 있었을 때는 그저 행복한 게임 라이프를 즐기고 있었을 뿐이다.


출처는 디씨인사이드 중세게임 갤러리의 중갤만화 3편 중 일부. 메이플스토리 사태를 넘어 한국 온라인/모바일 게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만화다.


이 문제는 이성의 딜레마다. 플레이어끼리 연대하여 회사의 부당한 관행에 대항하는 모습은 분명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의 결과물이다. 그 결과 정치권에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고 관련 법률도 개정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플레이어들이 합심해서 이룬 쾌거다. 하지만 문제를 다른 시각으로 보면 확률 문제를 오히려 문제시했기 때문에 기존에는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 문제가 되었고 행복하게 게임을 하던 기존 메이플스토리 플레이어들은 개돼지로 취급받아 경멸당하고 배제되었으며 쌀먹이라는 자신들의 수입원을 잃었다. 따라서 이 문제는 나쁜 기업윤리를 가진 기업과 소비자의 권리 싸움으로만 단순화되어서는 안 된다. 이 문제는 이성을 인간 해방의 수단으로 바라볼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사회적 통제의 수단으로 바라볼 것인지라는 철학계의 오래된 논쟁을 다시금 꺼낸 사건이다.


게임은 재미로 하는 거고 어떤 게임이든 간에 본인이 즐거우면 그만이다. 아무리 주변에서 유사 게임이니, 도박이니 이런 게임을 하는 사람들을 개돼지로 취급하니 뭐니 해도, 본인 스스로가 즐겁다면 무턱대고 부정적으로만 바라보기는 어렵다. 이번 사태에서 논란이 된 확률형 아이템도 해당 게임을 플레이하던 플레이어 본인들이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았다면 반드시 문제라고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를 포함하여 확률형 아이템이 한국 게임업계에 미친 영향력을 좌시할 수도 없다. 스스로가 즐겁다면 기업이 어떤 부정한 일을 하든 간에 넘어갈 수 있다는 부정적인 선례를 남기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같이 연대하여 시위하고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지켜낸 플레이어들의 노력을 허사로 돌리는 것일 수도 있다. 이번 사태는 앞으로도 한국 게임계에서 끊임없이 논의하고 사유해야 할 화두다. 따라서 이 문제에 필자가 당장 답을 내릴 수는 없다.


아마도 정답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있을 테니까.


각1) 게임 속 재화를 실제 재화로 인정하면 게임사가 게임 서비스를 종료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는 현실적인 요인도 있다. 게임 속 재산이 회사 소유가 아니라 플레이어의 소유이기 때문에 아무리 게임을 서비스하는 게 적자가 나더라도 회사 측에서 게임 서비스를 종료할 수가 없는 것이다. 명목상으로라도 현금 거래를 금지하는 항목을 약관에 포함시켜야 하는 이유다.


용어설명

HP(Hit Point/Health Point) : 비디오 게임에서의 체력을 나타내는 말. 적의 공격이나 환경으로 인한 재해 등을 맞고 버텨낼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MP(Magic Point/Mana Point) : 각종 마법이 등장하는 게임에서 마법을 사용하는데 필요한 수치. 바리에이션으로 SP, TP, AP 등이 있다. MaxMP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MP의 최대 수치를 뜻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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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iKDB1l2TPjg&t=417s

https://www.youtube.com/watch?v=JdoLLFNlh4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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