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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또 Sep 10. 2019

현대인들의 스트레스 해소법에 대한 자바 개발자의 관찰

Don't Stop the world

나는 5년 차 Java 개발자다. Java라는 개발 언어 하나로 앱도 개발해봤고, 웹페이지도 개발해봤고, 게임도 개발해봤고, 결제 시스템도 개발해 봤다. 딱딱해 보이는 개발 언어 Java 에는 꽤나 인간적인(?) 특징 하나가 있었는데, 왠지 우리 현대인들의 스트레스와 그 해소법에 꽤 연관성이 있는 것 같아서 소개해보려고 한다.


Java가 뭔데?

Java가 뭔 지조차 모르는 독자들도 분명 많이 있으리라. 딱히 깊이 알 필요는 없다. 영어, 중국어와 같이 '개발자'라는 종족들이 구사하는 또 하나의 외국어라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다만 우리가 일상에 사용하는 언어보다 훨씬 엄격한 문법을 가지고 있으며, 그 누구도 입으로 직접 말하지 않을 뿐이다. (물론 그러란 법은 없지만, 미친 사람 취급받을게 너무나 당연하므로)


Java라는 언어가 재밌는 것이, 개발하다가 생기는 소위 "쓰레기"들을 자동으로 분리수거하고 버려주는 시스템을 동반한다.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조차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필요 없어진 쓰레기들을 모아서 버려주는 대단히 편리한 환경이다. 심지어 이름도 '쓰레기 수집기'(Garbage Collector)이다.


예를 들자면 냉장고를 떠올려보자.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나에겐, 아직도 '적당한' 식재료를 '적당히' 사는 게 엄청난 난제이다. 장을 보면서 필요해 보이는 것들을 장바구니에 쓸어 담아와 냉장고에 보관하고 나면, 나도 모르게 남아있는 식자재들의 양은 몰론, 존재조차 잊어버린다.


그렇게 냉장실이 꽉 차는 것은 순식간이다. 원래 같았다면 냉장고 청소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남편이나 엄마에게 한소리 듣고 말았을 것이다. 그럴 때 우렁각시 같은 쓰레기 수집기가 등장한다. 냉장실이 일정량 차면 나도 모르는 새 등장해, 식자재들의 사용 여부를 체크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 같은 식자재들을 자동으로 모아서 버려준다. 게다가 똑똑하게도, 이런 체크에서 여러 번 살아남아 앞으로도 꾸준히 사용할 것 같은 재료들은 냉동고로 이동시켜 영원한 수명을 부여한다. (냉동고 만세)


이런 수집기가 내 삶에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가장 바람직한 식재료 장보기는, 쓸 만큼만 사서 적당한 기간 동안만 냉장실에 머물렀다가 모두 우리 부부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겠다. 혹은 소량의 식자재들만 남아 수집기가 버리기에도 부담 없는 정도면 그나마 낫다. 최악은, (이건 진짜 겪고 있는 일인데) 대파나 당근 같은 식재료들을 대량 번들로 사서 계속 찔끔찔끔 쓰는 행위다. 안 쓴다고 버릴 수도 없고, 쓴다고 내버려두기엔 냉장고의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한다. 그런 식재료들은 결국 싱싱한 식자재도 음식물 쓰레기도 아닌 상태로 냉동고 한편을 주구장창 차지하고 있게 된다.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냉동고가 꽉 차 버리는 것이다. 냉장고의 마지막 보루 같은 공간인 냉동고가 꽉 차면, 이젠 정말 미룰 수 없다. 엄청난 에너지가 흘러나가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냉동고 문을 활짝 열고 수십 분 간 냉동고 청소를 하거나, 냉장고 전원을 아예 끄고 청소를 해야 한다.


작성하다 보니 너무 몰입하긴 했지만, 이런 일들이 실제로 Java 개발 환경에서 벌어진다. 그리고 냉동고 청소와 같이 최후의 보루마저 더 이상 남은 공간이 없게 되면, "Stop the world" 즉 앱은 지옥 같은 대청소를 하기 위해 다른 모든 동작을 멈춰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Stop the world 상태가 오랜 시간 지속되면 당연히 서비스 장애 상황에 당면하게 된다.




현대인들에게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 스트레스가 일상의 동기부여가 된다는 말도 있지만, 사실 그건 해소될 수 있는 스트레스에 한해서만 옳은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보면 스트레스는, 나의 희로애락이 깃들 수 있는 공간을 차지하는 일종의 "쓰레기"가 아닐까.


일상의 작은 스트레스들, 나의 삶에 중요한 일들과 무관한 스트레스들은 사실 냉장고 치우기처럼 쉽게 해소될 수 있다. 친구들과 부딪히는 술잔, 혀가 얼얼할 정도로 달콤한 케이크 같은 것들로도 쉽게 사라진다. 물론 이마저도 지속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지만, 스트레스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는 것도 스트레스 해소에 어느 정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삶을 갉아먹는 스트레스들도 있다. 낮은 자존감으로 인한 자기 비하처럼 스스로가 제공하는 스트레스일 수도 있고, 열악한 근무환경, 직장 내 괴롭힘처럼 바깥에서 오는 스트레스일 수도 있다. 이러한 스트레스들은 쇼핑이나 폭식으로는 절대 물러나지 않는다. 감정 냉동고 구석에 소위 "말뚝을 박고" 좀처럼 사라지지를 않는다.


이런 스트레스들이 하나 둘 쌓이고, 장기간 일상에 녹아들면, 어느 순간, 우리의 삶에도 Stop the world 가 발생한다. 번아웃 현상, 우울증, 무기력증 심지어는 몸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차라리 냉장고는 청소하고 나면 말끔해지기라도 하지, 사람의 몸과 마음은 그렇지 않다. 한번 다친 곳은 쉽게 복구되지 못하고, 한 번 삐뚤어진 삶은 되돌아오기 힘들다.  



개발자들도 이 Stop the world의 시간과 횟수, 영향도를 줄이기 위해 꽤나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크게 보자면, 사전의 노력과 사후의 분석이 있을 수 있겠다.


가장 먼저, 개발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각종 설정을 이리저리 변경하고 변경 결과를 모니터링하면서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낸다. 얼마나 자주 쓰레기 체크를 할 건지, 쓰레기가 쌓일 수 있는 공간은 얼마나 둘 건지, 몇 번의 체크를 넘어섰을 때 냉동고로 보낼 건지를 이리저리 살피고 바꿔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top the world로 장애가 발생할 경우엔, 아예 쓰레기 통을 뒤져서 철저히 분석을 한다. 어떤 쓰레기들이 왜 어디서 얼마나 발생했는지를 면밀히 분석해서, 쓰레기의 원인 자체를 찾아내는 것이다.



개발자가 장애가 될 수 있는 Stop the world를 방지하기 위해 사전에 대비하고 사후에 분석하는 것처럼, 현대인들 역시 몸과 마음을 꼼꼼히 살피고 돌봐야 한다. 프로그램이 개발자에게 모든 변화를 알려주고 장애 직전에 자동으로 알림을 주지 않는 것처럼, 우리 몸과 마음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새에 점점 지쳐가고 스트레스에 매몰되어 다시 일어나기 힘들 지경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얼마나 자주 스트레스를 받고 술과 디저트를 찾는지, 스트레스의 원인은 무엇인지, 해결 가능한 방법은 없는지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종종, 우리가 잊고 지내는 것 중 가장 중요한 대상은 '나' 라고 여겨진다. 가장 사랑해야 하고 가장 아껴야 하고 가장 보살펴야 할 '내'가, 스트레스라는 유해한 독약에 젖어드는 것을 무심히 방관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한 번 생각해보자.


 '삶'이라는 건 우선 '나'를 전제로 하며, '나'라는 존재는 건강한 몸과 행복한 정신 상태에서 가장 온전히 존재할 수 있으니 말이다.


모두의 삶, 모두의 세상이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Don't Stop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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