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가는 길 외롭지 않도록 듣는 음악들
너무 늦은 시간은 아니다.
버스들은 사람 없는 정류장을 의무적으로 스치듯 지나가고, 신호등 불빛은 사람 없는 도로에서 민망하게도 혼자 반짝인다. 하필 내가 타는 마을버스만 끊겨서 영락없이 10분~15분쯤 걸어가야 한다. 이어폰 꽂고 노래 서너 곡만 들으면 딱 집 앞이다. 보도는 가로등 불빛으로 언제든 지나가는 사람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내가 그 첫 손님인 것 같다. 아니면 말고. 어쨌든 내 앞에는 아무도 없고 나는 의기양양하게 이어폰을 귀에 꽂고 걷기 시작한다.
이왕이면 너무 우울하지는 않고 적절히 감성적인 노래로 선곡해서 들어야지.
요즘 빠져서 듣는 노래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다. 심플한 피아노 반주와 여성 코러스만 깔린 채로, 흑인 여자 가수의 특유의 창법으로 노래가 흘러나온다. 천천히 또박또박 계속 반복하는 가사는 비록 영어일지라도 대강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알 수 있다.
미안해.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어
전반적인 가사가 마치 이제 헤어져야 할 옛사랑에게 보내는 사죄의 편지만 같다. 가사를 꼭 한 번 보면서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우는 듯 말하는 듯, 죄책감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며 이별을 통보하는 이 노래를 들으면, 남자 쪽이든 여자 쪽이든 쉽게 감정 이입이 된다. 가사도 반복이 많아서 꽤나 중독성이 있지만 애드리브가 많아서 노래방에서 부를 수 있을 만한 용기는 쉬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흑인들의 노래가 가지는 특유의 호소력이
부담스럽지 않은 가사와 듣기 좋은 멜로디를 타고 최대한으로 증폭된다
어쩜 이리도 집에 가면서 듣기 좋을 것만 같은 제목을 떡하니 지어놨을까. 특히나 지치고 힘들고 중심을 잡기 힘든 하루를 보낸 사람이라면, 이 가사에 특히나 공감할 만한 부분이 많이 보인다.
내가 여기 쓰러져있게 된다면, 너는 나를 집까지 데려가 줄 수 있니?
Jess Glynne의 목소리는, 아마도 많은 분들이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목소리인데'하는 느낌을 많이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Take Me Home이 포함된 앨범 'I cry when I laugh'는 Jess Glynne의 정식 데뷔 앨범이지만, 이 허스키한 보컬을 가진 매력적인 여가수는 데뷔하기도 전에 이미 '역사상 두 번째로 5개의 UK 싱글 차트 1위를 보유한 여성 솔로 아티스트'가 되었다고 한다. 그 중에 몇 곡은 아마도 우리가 제목도 모르는 채로, 누구는 카페에서 누구는 옷가게에서, 흘러가는 배경음악으로 만나본 적 있는 곡들일 것이다.
그리고, 한창 Adele의 Hello로 SNS를 뜨겁게 달궜던 여고생 이예진 학생이 이번에는 이 Take Me Home도 불렀다. 그만큼 이 곡은 Adele이 부르는 풍의 노래와 많이 비슷한 느낌을 준다. 이예진 학생한테 잘 맞는 노래는 모두, 감정이 터질만한 후렴구가 있는 느리고 행복하지 않은(?) 노래인건가 하는 추측을 조심스레 해본다.
'행복한 Adele이 노래를 불렀다면, 그것이 Jess Glynne일 것이다'라는 평을 들은 앨범의 수록곡
2015년도 최고의 목소리라고 불리는 Jess Glynne이 부르는 우울함과 그로부터 오는 절박함을 들어보자.
몇 년 전부터 꽂힌 노래인데,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아직도 Sting의 Shape of My Heart와 제목이 자꾸만 헷갈린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설마 Heart라는 글자 하나가 같다고 헷갈리고 있는 거라면 참 슬픈 일이다. 그리고 이 아티스트의 이름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도 항상 미스테리고 찾아보고 나서도 항상 잊어버린다. '실예 네가드'인지 '실제 너가드'인지... 이렇게 제목도 가수도 다 헷갈리고 제대로 기억 못하는 내가 이 노래를 어떻게 해서든 계속 찾아 들을 수 있는 이유는 중독성 있는 후렴구 때문이다.
Be still my heart, My heart be still
노르웨이인 아티스트인 Silje Nergaard의 목소리는 사실 이 무겁고 낮은 톤의 재즈 반주와는 다르게,
높고 맑고 청아하다. 오버하지도 않고, 딱 불러야 하는 멜로디만 깔끔하게 불러낸다. 어른의 슬픈 동요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노래를 자주 반복해서 듣고 나중에 머릿속에서 떠올려보면, 목소리만큼이나 반주 흐름도 쉽게 떠오른다. 그 슬픈 반주가, 너무 좋다.
안전한 귀가는 보장할 수 없다. 하지만 침대에 들기 전 마지막 바깥 공기를 마시며 듣는 이 음악들은 오늘 지쳤던 몸과 마음에 좋은 마취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