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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또 Nov 23. 2018

나는 미니멀리즘에 반대한다

무소유와 별개로.

 Il semble que la perfection soit atteinte non quand il n'y a plus rien à ajouter, mais quand il n'y a plus rien à retrancher.

완벽함이란, 더 보탤 것이 남아 있지 않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완성된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느 순간부턴가, 미니멀리즘이란 생활양식이 바람직하고 가치 있는 삶의 방향 중 하나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 같다. 그 사조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바람직하겠다. 단순하게 사는 것. 물건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정말 필요한 것들만 내 삶에 남겨두는 것.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생각이다.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단출하지만 완벽한 삶. 나도 그런 삶을 살고 싶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 싶지가 않다. 


물건과 나


물건이란 것은 왜 우리 주변에 있게 되었을까. 애초에 우리는 그것들에게 왜, 이 좁디좁은 나의 공간에 기꺼이 구석 한 편이라도 내어줄 마음을 갖게 됐을까. 


사람이 일상을 살면서 하는 선택들 중에 정말 순수하게 '내가 원해서' 택하는 것들은 몇 없다고 믿는다. 우리는 일어나는 시간도, 출근하는 시간도, 퇴근하는 시간도, 점심 메뉴도, 해야 할 숙제도, 해야 할 업무도, 심지어는 해야 할 말조차도, 순수히 홀로 있는 나라면 택하지 않았을 것들을 택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구매 활동을 통해 억눌렸던 선택 욕구가 발동한다.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물론 소중한 용돈을 포기하면서이지만, 몇 안 되는 영역 중에 하나가 쇼핑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들을 하나둘 사들이는 행위만큼 쾌감이 느껴지는 순간도 많지 않다. 


그렇게 나의 공간 여기저기에 나의 선택들이 남는다. 방을 둘러보다 보면, 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이런 거구나, 나는 이런 것들을 모으고 싶어 하고, 이런 것들에 결핍을 느끼는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한 예로, 읽지 않더라도 방 한 면을 꽉 채우고 있는 책들을 통해 '나는 책을 읽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구나'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기도 하고, 작고 노란 조명들이 가득한 선반을 보면서 '나는 따뜻한 공간을 좋아하는구나'라고 다시금 되새긴다. 



이런 생각들이 나로 하여금 다시 내가 누군지를 깨닫게 해 준다. 그래서 나는 이 물건들이 내 곁을 떠나는 것을 허락하고 싶지 않다. 전구 하나 없다고, 스피커 하나 없다고, 책 몇 권 없다고 내 삶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 물건 하나하나에 담겨있는 그때의 내 생각과 애착들을 손에서 놓고 싶지 않다.


나의 역사가 가득한 공간


나는 왠지 그런 집이 좋다. 현관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집주인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곳곳에 묻어있는 집. 


여행을 좋아하는 집주인이라면 신발장 위에는 여러 나라에서 들여온 구두 주걱이 있겠고, 장식장 안에는 빼곡히 진열된 작은 기념품들이 귀여운 모양새로 서있을 것이며, 냉장고 문은 싸구려 여행지 자석 같은 것들이 빈틈없이 붙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 집을 갖고 싶다. 집에 있는 물건들로만 도 앉아서 한세월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나'로 가득한 공간. 어찌 보면 미니멀리즘에는 매우 반하는 집이겠지만, 내가 선택한 것들로 가득해서 무엇하나 빼내고 싶은 것이 없는 집. 


이런 물건들은 나의 삶을 침범하고 위협하고 나를 휘두르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구성하고 내 삶을 아름답게 꾸며줄 뿐이다.




미니멀리즘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고 쓴 글은 아니다. 다만,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면서 뭐든지 버리고 깎아내는 과정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나의 서사를 완성해줄 수 있는 좋은 물건들은 가까이 두고 온전히 나의 공간을 꾸미는 과정도 가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주저리주저리 쓰게 되었다. 썰렁한 빈 방보다는, 왠지 잡동사니라도 가득한 가득 찬 방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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