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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베어졌다고

- 그 나무의 뿌리가 죽어있는 게 아닙니다(그루터기 인생)

by 갈대의 철학

나무가 베어졌다고

- 그 나무의 뿌리가 죽어있는 게 아닙니다(그루터기 인생)


시. 갈대의 철학


나무가 주변의 풍광에 가린다고

아름드리 역사와 함께 지켜온

이름 모를 나무가 가차 없이 베어졌습니다


그 나무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 할 말이 잃은 것도 아니고

충격을 받아서 말을 잃은 것도 아니며

그저 가슴 한편에 묻어두는 사랑이었습니다


울어도 울지 못하고

혼자 있는 나무는 늘 버팀목이

뿌리가 깊게 뻗어 있는 땅속에서

다른 뿌리들과 서로 교감하고 엉키고 설키어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갑니다


태풍이 와도 버틸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됩니다


뜨거운 여름이 오면

나뭇잎이 무성하여

더워도 덥지 아니하고

다른 이들의 편안한 휴식처를 만들어줍니다


추운 겨울이 오면

그리 많았던 나뭇잎들이 떨어지고

허허벌판 들녘에 앙상한 전라의 몸짓으로

그해 지났던 봄이 오기를 기다리며

뭇 사진작가들의 전리품으로 치장됩니다


그루터기는

봄에 어린 잔가지에 새싹이 돋우면 어린싹이 오르기 전에 베어내고

여름에는 미처 베어내지 못한 잔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어 잠시 휴식을 취하지만

가을에는 낙엽이 지면 또다시 쓸모없다 하여 베어지며

겨울에는 꽁꽁 언 동아리 위에 그동안의 모진 세월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하얗게 춤추며 내리는 눈꽃에 위로를 받습니다


그루터기는

벌목공들의 금식에 불문율로 여겨졌던

아랫동아리가 잘려나가도

아픔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고

가슴 한편에 응어리 된 마음도 달랠 수가 없습니다


벌목공들의 애환이야 그루터기 삶과 무엇과 다르겠소마는


그루터기에 올라서지 않는 그들로 인해

서로의 말 못 하는 아픔을 달래 보기도 하며

베어진 나무 위의 풍설에 따른 악령의 혼(魂)을 달래 보기도 하며


탁주 한 사발에 벌컥벌컥 들이키며 수목장 된 영혼들을 위로해 주고

그동안의 심신 된 위령을 벗 삼으며

서로의 말 못 하였던 애환 된 삶들에 아픔을 대신 위로해 줍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심령술과 같은

아주 하찮고 보잘것없는 일이었지만

그 누구도 우러러보지도 않으며 슬퍼하지도 않습니다


그루터기와 벌목공들의 인생은

그곳을 지나며 다시 찾는 이들을 위해서

그루터기에 더 쉼터를 만들어 줍니다


어쩌다 스쳐 지나는 그들에게는 그저 한 낱 나무 일지라도

그루터기의 벌목공들에게는

한 사람이 그곳에 앉아있고 서있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멀리 보기 위해 한 나무의 수령된 나이테의 가운데를 바라보며


애써

다 자라지 못해 꽃을 이루어 피우지 못한 나무들과

아름드리 나무들과


그리고 하늘의 명을 다해

고사목 된 나무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마음과 다리가 되어줍니다


무심코 서서 내려앉은 나이테를 바라보고

그들 삶과 다를 바 없는 인생살이를 달관하면서도

그저 한(恨) 없는 높은 하늘만 올려다봅니다


마치 어린 사슴이 호숫가에 내 비친 자기 모습에 반해

무심코 언저리 하늘에 드리워진 꽃잎을 따러 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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