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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대의 철학 Nov 03. 2020

도둑맞은 가을

- 도둑맞은 마음

도둑맞은 가을

- 도둑맞은 마음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누가 나의 가을을

훔쳐갔는가


아지랑이 피어오른 봄이 오면

봄 나들이 꽃단장에 바빠

알록달록 색동옷 입을 찰나


내 고향 오월은 실종되고

새하얗게 눈이 덮여

봄을 잊게 하여

겨울을 반기네


봄의 끝자락에선

개구리가 힘차게 울어 젖히면

여름날 알리는 소리에

옷을 훌렁훌렁 벗어던질 찰나


하늘도 새까맣게 타올라

여름 소낙비인 줄

또다시 흰 눈 날리며

겨울이 기다려 오


메뚜기도 한철

무더위에 피어처마 끝에

전날 소낙비에 애처로이 매달린

빗방울 하나에


다가올 가을이 오는가 싶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아직도 뭉게구름 등쌀은

바람을 머리에 이고 지나간다


아 가을이

언제 오는가 싶더니


어서 말하지 말라하고

어서 말을 아끼려 하네


가을 타령하다 보니

어느새 그 많았던 시절은

산나물에 이리저리 비벼지더니


한 잎에 다 들어갈 숟가락도

꾸역꾸역 엿 넘기듯 하니

여름 장사에 못 이길 장사는 없더라


그 틈새를 노리는

늦여름 꾼 춤바람은

그해의 가을을  기억하고 불어준다


그 누가

나의 가을을 가을이라

부르지 못하게 하였는가


나의 가을은

기다려지지 않는다


사랑도 기다리지 못해

여름에게 빼앗기고


사랑을 그리다 만

원앙새의  한쪽 마음을 둔

왜가리 인생길


그래서

나의 가을은 

그렇게 처절하지 않아도 된다

더욱 간절하다 못해 애절하다


이제는 가을을

기다려주지 않아도 되지만

가을을 도둑맞지 않아도 되는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할

시간을 떠나온

여행자이자 순례자이다


만추가 오기 전에

겨울이 왔으니까


날에  

소문 없이 내리던 비에

사람들 두문불출에

이 깊어가는 가을이 외면당했다


이 가을은 겨울을 향해

점점 깊게 빠져들듯

이내 하얀 눈이

또다시 가을을 덮어버렸다


도둑맞았던 나의 가을이

다시 돌아왔다


그 순간의 찰나에

나의 가을은


금세 겨울의 흔적을

지우려 애쓰지만

도둑맞은 나의 마음은

말하고


누가 나의 가을을 훔쳐갔는가

이 점점 늙게 변해가는  

나의 아리따운  시절이여 오라


모두

이 가을의 만추가 시작됨으로써

나의 마음도 끝이 나고

나의 마음은 동면으로 들어간다



2020.11.3 어느 만추가 되어가는 길목에서 만난 사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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