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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대의 철학 Nov 21. 2020

눈이 내리는 날에는 나는 치악산으로 간다(9)

- 불어오는 바람을 어찌 막을 수 있으랴

눈이 내리는 날에는 나는 치악산으로 간다(9)

- 불어오는 바람을 어찌 막을 수 있으랴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그대

바람이 불어오면

불어오는 대로 떠나고


바람이 멈추면

멈춘 그곳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


샛바람 불어오면

나는 길 떠나는 길손


저 멀리 동녘 바라보는 그대는

눈시울 적시며 애수에 젖은

그리움 찾아 나서는 방랑의 나그네


어머니 닮은 하얀 머릿결을

이고 지고 떠나온 마음에

참빗으로

곱디 고운 빗손 빚어 얹으면


어느새 세월 지난

그대 머리에도


망초대 꽃 피어났을 적에

맺힌 하얀 꽃망울대에

향기 어린 상고대가 피었났을 거라고


해가 중천에 떠오르기 전에

우리 그곳에서


밤샘 빛나던

별빛이 내려앉은 향로봉에서

우리의 사랑을 이야기하자


새벽을 이고 떠나는 마음 앞에서

아직까지 식지 않은 열정으로

낮과 밤의 동트는 길목을 지키는

그대의 수문장인 상고대여


이곳은

그대들에 이방인의 휴식처

밤의 요정들의 빛나는

별밤 축제의 한마당


축제가 끝나면

우리의 사랑이 이루어진

그곳 바람의 나라로 떠나자


치악의 칼바람에 이리저리 나부끼며

떨어지는 마음들을

아파와 하지도 슬퍼하지도 말자


흔들릴 수 있는

모든 것들에 찬사를 보내며

떨어지며 흔적을 남기지  않는


비밀의 화원

그곳을 열 수 있는

그대와 나와의 언약식이 되어간다


치악의 거센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상고대에

하얗게 수정 이슬 맺힌 너는


그날이 오면

늘 아름답고 애처롭다


그러나 너는

아무리

절대불변이라고 부르고 싶어도

치악으로 떠나자에게


불어오는 바람을 어찌 막을 수 있으랴


햇살에 발버둥 치는 애처로움도

그대에게는 한낱 바람에 떨어진

이슬에 불과하노니


얼어가는 마음을

어찌  막을 수 있으랴 말이다


해지고 해 뜨면

네가 숨 쉬고 살아난다는 것을

너를 반기려

이곳 먼 곳까지 찾아오는 마음을


오르는 내내

온몸에 젖어오는 뜨거운 열기에

너를 오랫동안 품어온 마음도


만지면 금세 녹아 사라지는

한숨에 불어 꺼져가는 촛불처럼

곧 형장의 이슬 되어 떨구며 사라지리라



너의 이름도 거둘 수 없는

차마 그대의 이름도 부르기도 전에

기다림에 목이 메어

떠나온 자의  마음을 위로할 사이도 없이

그저 한낱 허공의 뜬구름만도 못하다


그대의 마음에 녹아내린

이내 만민의 눈물을 머금는 어머니는

대지에 한 줌의 사랑의 눈꽃으로

다시 태어나리


첫사랑은

그대 앞에서

천년의 사랑으로 다가오기까지


해 뜨면 금세 사라지고

해지면 금세 나타나는

그대와

이곳에서 상고대 같은 사랑을 하리

2020.11.21 치악산 향로봉 가는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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