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 떨어지는 미학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가을비 내리는
젖어드는 마음이
이슬처럼 소리 없이 내려오면은
촉촉이 적셔오는 가을비에
기다림에 묻어난
아직까지 피어있는
어느 이름 모를
꽃 한 송이 잎의 마음을 기억하렵니다
가을비에 떨어져
쓸쓸히 빗물에 씻기어 떠나가는
흘러가는 옛사랑이 되어주고
우산을 받쳐주었던 옛마음을 말이에요
이제는 더 이상
차라리 뒷모습을 돌아보지 않고
소낙비 되어 준 이 가을을
떠나보내 주기로 하였습니다
정 하나 남기고
미움 하나 떠나보내면
미련 하나 건졌다고
사랑 하나 떠나보낼 수가 있나요
털털털 툴툴툴 털어서
내게 남은
마지막 자존감마저 무너뜨려야
낙엽 떨어지듯 떨구어지는
떨어지는 미학의
그리움을 말하려 할 수가 있나요
점점 깊어가는 이 가을 녘에
눈이 하염없이
내릴 것만 같은 가을밤에
가을비가 주는 정감이
이렇게 다가설 줄은
예전에 꿈에도 미처 몰랐습니다
대지는
비를 머금게 하여
나를 살아가게 하는 이유를 만들고
대 자연은
햇빛을 받으며 살아가야만 한다고
나에게 스스로
울부짖는 방법을 터득케 합니다
못 미더운 사랑 앞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마음이 또한
남아있는 사랑이 되어가다 보니
때로는
이래도 저래도 살 것 같으니
위로한다 말하지 말아 달라
하늘을 우러러 곡소리 내어 보았습니다
그 사람에게 있어
인생의 담보는
나에게 저당 잡힌
삶의 일부분의 짐일 뿐이었다면서
그것 하나만이면 된다고
지켜낼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 주는 것만이라도
다행스럽고 만족한다 하더이다
그러면 아마도
다시 계절이 돌아오는 길목에 서면
만날 그리움이 안되어도
만추 지나
매서운 겨울이 오는 길목엔
우리 따뜻한 봄날이 있다는
미래를 기억하고
그 순간들을 잊어가기로 해요
그리고 나는
퇴색되어 가는 이가을을
더욱 재촉하며
마지막까지 바람에 흔들려도
떨어지지 않는 낙엽을 위해
찬바람 이는
오늘을 위해 기도를 하렵니다
그래도
흔들릴 수 없는 마음을
가지고 떠날 수 있다면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묻지도 말아주세요
그때는 이렇게 말하렵니다
태어나
세월 따라 찾아온 것뿐이라면서
내게 가지고 갈 것이라곤
아직까지
걸어갈 수 있는 튼튼한 두 다리와
바람의 마음을
함께하며 떠날 수 있는
튼튼한 심장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해 줄 수 있다고 말이에요
2020.11.21 행구 치악자락 일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