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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대의 철학 Nov 26. 2020

산천이 말하더군

- 쓰러져 가는 가을

산천이 말하더군

- 쓰러지는 가을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너무 좋다

이 기분을 어찌 말할 수 있으랴

내게 사랑을 고백한

가을은 떠나갈 것이고


내게 남겨진 사랑은

다가올 겨울에 쓰러질

가을을 예고하듯이 

또다시 일어날 것이다


사랑한 가을이 쓰러져 갈 때

그 위에 덮인

낙엽 위를 또다시 눈이 덮여

더욱 그리운 마음을 감추려 할 것이다


오늘은 한가로운 구름 벗하고

바람 쐬러 가는 날에

산천을 호젓이 호령하는 상원사에 올라

여유 있는 마음을 두었단다


그 기풍이 진경이 되었더군

가히 풍경이 절세로 아름답도다


여름 쓰러지고 난 후

짙어가는 가을 들녘에

고목은 말이 없다 하여

산천을 호령하듯

겨울 문턱의 수문장이 되었다지


겨울 문턱에 다 다랄 쯤

가을 가로수 터널을 지나가게 된 후

이미 그대의 수문장은 떠나고 없었다


오를수록 거침없는 숨소리에

저 멀리 떠도는

매의 한 순간의 눈초리에

사시 떨듯 하니


범종의 종소리가

누를 멀리하고

청산을 다시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떠나거라 가을아 멀리멀리

청산은

너를 위해 기다려 주지 않는다

만복은

 너로 인해 다시 태어나기 위함이더냐


그러니 우쭐대지 말고

머뭇거리지도 말고

뒤도 돌아보지도 말며

떠나거라 가을아


훗날에

지나온 네 처지를 비관하지 않음을

야속하다 하여

네 온몸을 눈보라에 맡기지도 말아라


너의 이가을이 아프면

다가올 초 겨울에

늦가을이라 불러달라는

네 이름 덮인 낙엽 위를


하얗게 눈이 소복이 내려

네 마음 감추며 달래 줄 것을

미리 예견하여 자랑도 하지 말거라


조심조심  또 조심

네 묻힌 곳을

어느 이의

발자국으로 남기기를 희망할 테면

 

그 뒤를 다시

눈이 덮여 온다는 사실을

하늘을 무색할 정도로 원망하지도 말거라


다시 걸으면 걸을수록

깊어가는 가을에

이미 초산의 마음이었던 너를


이 겨울은 너로 하여금

다시 태어나게 하는

마력을 지니게 하였다

 

이 가을이 아파할수록

마음은 더욱더

네게 다가서는 마음이

원숙하고 성숙해 갈  테지만 


정초 없이 떠나온 마음 앞에서는

늘 이곳에 다시 서면


지난 시간 앞에

내 과거의 굴이 멈추는 곳이요

다가올 시간 뒤에

미래가 감춰질 곳이라네


2012.12.1치 악산 종주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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