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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대의 철학 Nov 23. 2020

안개 걷히는 날에

- 현실

안개 걷히는 날에
- 현실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새벽을 나서고

둥지 틀은 어미새에

품을 잃을까

모정의 마음은  조바심은

안개를 두려워한다


살며시 다가와

소리 없이 길을 잃어버리고

찾아 나서는 어미새의 마음


한 마리가 보이질 않는다

어둠의 숲 속 보다 더 무서운

소리는 들려도

방향을 잃어버린 어미새의 마음


소리가 멈추고

안개는

시나브로 더 깊게 다가온다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틀림없이 새끼가 자지러진

발자국 소리일 거라


거의 다가온다

이제는 안심해도 된다는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다


둥지를 떠나면

안개에 휩싸인 채 보이질 않는

희미한 잔형들의 유령들이 보인다


끝에서는 하얀 불빛이

점점 다가오고

긴장의 끝을 놓아서는 안된다


이래나 저래나

둥지를 떠날 수 없는 처지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어차피 들려오는

저벅저벅 소리는 아기새의

몸부림이 더 이상 아니다


짝 잃은 어미새의 마음을

곁에 두고도

짙어가는 안개가 야속할 뿐이다


이제는 더 이상의

숨 고르기 소리도 없이


숨 막히는 적막감이 닥쳐오듯이

긴장의 끈은 더욱

팽배해져 끊어질 듯한 기세다


버터야 산다

나머지를 위해서  

이곳을 절대로 떠나서는 안된다


드디어 태양의 햇살에

그동안

감춰진 비밀의 문이 열렸다


주변은 평온하고

예전처럼 아무 일 없듯이

안개도 바람에 날려가고

햇살에 증발하여 버렸다


흔적이 없다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


다섯 마리에 한 마리가

틀림없이 둥지를 벗어났다

울타리를 벗어났다


아무리 주변을 살피고

찾아보아도 그곳은

예전의 모습과 동일하다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일까

틀림없이 안갯속에서는

치열한 싸움의

전쟁터를 방불케 하였는데




오늘도 안개가

흰 눈처럼 내리는 날

뿌연 안개인듯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도수 높은 뿔테 안경 너머

마스크를 입에 재갈 물리듯

뛰지 못한 채

오늘을 걷는다


잠시 뒤 안개가 아니었다

밖에 찬 공기가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의 온도를

습격하였다


방어할 기세도 없이

당하기만 하고

손은 너무 추운 나머지

옴짝달싹 못한 채

바짓가랑이 주머니를 만지작 거린다


두 손

양치질을 하여도

재갈에 물린 마스크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북선의 유황의 냄새들


아뿔싸,

지금까지 네 안에

나를 찾기 위함이었던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나 자신을 알리기 위한

자위적인 해석이 되었단 말인가


다시 바깥세상에서

되돌아오니

안개 걷히듯 제 눈에 안경에

햇살드리치니


이내 작금의 현실이

일장춘몽이 되었더구나


이윽고 안경에 서리 걷어내니

안개가 걷혔다

2020.11.23 덕수궁 정동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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