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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대의 철학 Dec 29. 2020

어느 노인네의 죽음

- 이승과 저승의 길목

어느 노인네의 죽음

- 이승과 저승의 길목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뭐 드시고 싶으세요


이제껏 힘겹게 살아오면서

가장 삶에 부끼며 길게 한숨을 내쉬는

젖 먹던 힘도 모자라

태초의 힘을 빌어야 했던


이 맘 때쯤이었습니다

생과사의 갈림길에 서면

그곳에선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었습니다


생굴을 드시고 싶다면서

난 그것이

그분이 그렇게 맛있게

드시는 것을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음력 1월이라

아직도 겨울 마음을 담아두었더니

당연히 생굴을 구할 수 있을 줄 알았지요


이리저리 동네방네

찾아 헤매었던 그날

마침내 발견한 봉지 굴 하나


먹기도 버겁고

숨쉬기조차 할 수 없었던 그날

마치 어릿광대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깡통 연줄에

일그러진 우리들의 자화상에

세월의 녹록은 그리 달갑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동분서주

가락동 수산시장을 달려서

사온 생굴을

얼마 드시지 못하고

입맛만 축이셨습니다


걷기도

눕기도

흡하기도


마치 어린 아기의

숨소리가 들릴 듯 말듯한

새가슴 소리도 나지 않는


어느 하나

죽음에 목전을 둔 마음은

이미 이 속세와

이별을 하고 있었습니다


버릴 수 없는 생굴을

나의 입에 넣어 보았습니다

어렵게 구한 것이라

특별했기에....


그러나 그 맛은 천상의

맛이 아니라,

먹어서는 안 되는

아련한 소싯적 맛이 아니라는 것을요


차마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먹을 수 없는 비린내

그 한 분은 자식 사랑에

그렇게 마다하지 않고

한 절이라도 드셨던 마음을


죽음을 앞두고도

자식 사랑에

죽음의 마음도 접어두었습니다


이제는 이승의 문턱을 넘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잠이 들곤

지나온 회한의 추억들을 이야기하자니

먼저 눈물을 흘리시는 한 노인네의 인생


마지막 한 소절에

그만 두 눈을 뜨시며 무언가 언저리

말을 잇지 못하고

시계추는 멈추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들 한 인생사는

저승의 문턱으로 들어갑니다


오늘 같이

소리 없이 눈이 내리는 날에

이슬 눈꽃이 피어난

어느 한 노인네의 백발에


하얗게 내린 설움도 시리지 않는

이제는 아련한 봉분만이

이곳을 지키고


가끔은 까마귀 날아들어

하얀 나라에서 박 씨 하나 물고 와

이듬해 따뜻한 봄날에

새 하얗게 망초대 꽃이 피어났습니다


저희들 의 좋게 잘 지넬 께요

염려 마세요. 아버지

이 한마디가

그분의 마지막 세상을 지켜보고

혼신의 힘은 무언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2020.12.29 둔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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