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대에게 속았어요
- 사기꾼 사랑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그대에 달콤함의 끝은
어디인가요
저 높은 하늘에 피어난 구름과
하늘 아래 숨 쉬는 대지와
속삭이듯 은밀한 파도에 밀려와
말을 전해주는 깨알 같은 하얀 백사장의
은빛 모래알들 인가요
가을날 떨어질 나뭇가지에
낙엽의 끝에 매달린 인연의 시작은
누구를 위해 머물러야 하나요
이제는 더 이상
제게는 갈 곳도
머무를 곳도
떠날 곳도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되어갑니다
가을바람 찬바람 일어
거울이 산산이 부서지는 아픔을 감내하여도
당신의 두 눈은 벌써
그 자리를 대신할
다른 마음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려 깊은 당신의 지난 웃음도
달랠 길 없이 맴도는
굳건히 그대를 위해 지켜낸 나의 성채도
서서히 무너져 갔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마음도
밤하늘에 가장 빛나던 별빛도
가장 뜨겁던 태양도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지를 못했어요
그저 단지
당신의 그 눈빛만큼은 달랐지요
나는 알아요
그대의 눈빛이 무엇을 말하려는 지요
갈등과 갈망과 상심의 그늘 아래서
보이지 않던
수많은 부러움의 유희들 장난에
지금도 나는 그대에게 곧 있을 기대감으로
노리개가 되어갑니다
그래도 나는
그대 품속을 꿈꾸는
아직도 남아있을 마지막 사랑에
울고 웃고 떠날 수 있는 용기를
작은 돛단배의 실에
사랑의 모험을 찾아 떠나갑니다
나는 그대에게 속고 또 속아가지만
사기꾼 같은 낭만적인 사랑은
제게는 어울리지가 않아요
그저 한 떨기 꽃이 떨어지는 사연도
찬바람이 불어와도
추위에 떨지 않는 이유도
제게는 모두 사기꾼 사랑일지를 몰라요
아직도 나는 그대를 위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더 이상 바라볼 수 없는
슬픔을 대신할 곡조를 만들어
영원히 살아갈지를 모릅니다
2022.9.7 치악산 금대트래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