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달인
- 사랑의 부재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그대
이제껏 여태까지 살아온
내공이 얼마인데
어찌 이리도 무정하오
언제 내 마음을 알아 달라 하였소
살아온 인생에 더해서
지금껏 기다려온 내공까지 합치면
아마도 신의 섭리는 벗어났을 게요
눈치 밥에
어깨너머로 배워 온 것만도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뀌었으니 말이오
이제는 내 처지가
이것저것 가릴 게 없는
줄자로 재지 않아도
사랑의 달인이 되어가지
않았겠소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수많은 세월 속에
기다려야 했고
그리워야 했고
사랑의 눈치의 줄자도
재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잖소
이제는 제법
우리 둘 사이에
혹독한 그림자가 나타날지언정
그만한 대들보는
충분히 세워가지 않았었나
생각되리오만
이제는 선수가 되어가고
눈만 딱 마주쳐도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의례 짐작을 하니 말이오
그동안에
사랑의 부재가 되었던 것은
아마도 우리 둘만의 우정이
사랑보다 더 깊어서
그럴 거라 생각되오
그 흔하디 흔한 사랑 한 번 못했다고
그대는 말하지만
평생을 함께 살아서 걸어온 시간들이
그들이 우리 둘 사이를 말해주듯
오랜 추억의 시간들이
가히 얼마만큼의 거리였겠소
마치 알알이 맺힌 포도송이처럼
그렇게 지내온 내공이 있어왔기에
사랑의 달인은 못되어도
사랑의 부재 곁에는 늘
묵묵히 지켜준 당신이 있어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당신의 마음은 늘
사랑보다 더 귀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가게 된 것은
그 오랫동안
내 곁에 지켜주면서도
사랑이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어도
그게 바로 사랑이었다는 것을
오랜 세월을 함께한 마음이
그들이 바로 우리 사랑의
주춧돌이 되어왔다는 것을
이제야 말할 수 있었다오
해마다 봄이면
늘봄처럼 변함없이
그 빈 공간에
그 자리에
당신의 붉은 입술을 닮은
홍매화가 피어난다는 사실을요
사랑의 부재는
소리 없이 들려오는
내 마음의 메아리가 곧
사랑의 달인이 되어갔다는 것을
세월이 지나서야
이제야 눈을 뜨게 되어갑니다
꿩의바람꽃 2025.어느 춘사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