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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악이 걸어가는 길(2)

- 바람 한 점 없던 날에

by 갈대의 철학
바람 바람아. 정서주

치악이 걸어가는 길(2)

- 바람 한 점 없던 날에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바람 한 점 없던 날

나는 치악산으로 떠났다


모두가 세에 짓눌려

인연의 정에 이끌러 남아 있을 때

나는 그곳에서

잠시 세속의 연을 끊기로 했다


숲에 가려 빛이 내려앉지 않은

하늘의 운명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부단히 걸어서 올라야 한다


나무 끝에 아스라이 매달린

나뭇잎의 흔들림

용기를 내어 쉼 없이 올라오니

지쳐간 나의 마음에도

동요의 바람이 일어난다


고둔재 나들목에서 쉬어가는 마음

옛 이곳을 병품 삼아

이 고을 저 마을 넘나들던

보따리장수의 마음이 되어갔었으리라


향로봉에 올라 보아라

치악에서 저 멀리 서산에 누운

산허리 축에 둘러 메인 산자락에

나의 손끝이 가리 킨 곳


나의 잃어버린 옛 청춘의 고향

석양이 떠나간 진자리에

내일의 밤이슬이 맺혀

나의 슬픔이 떨어졌을 때

아침 이슬에 눈물 훔치던

나의 이데아여


어느덧

치악산 종주 반을 넘나들어

능선에 불어오는 바람은

이산 저산을 넘나드는

나는 바람의 방랑객이 되어가리라


치악의 백미

치악산 치마바우에 올라서서

드 넓게 펼쳐진 광야를 바라보라


이 얼마나

지고지순한 장대한 역사의

한 장르가 펼쳐져 있지

아니하는가?


하늘은 나를 향해

끝없는 마음은

이 세상에 없다고 말하고


한없이 펼쳐진 산야에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은

이 세상에 없다고 들려주고


굳이 이 먼 거리를

애써 힘써서 오르지 말라고

전해주네


이 세상에 강한 것보다

더 강한 것은

정상에서 불어오는

그리 살갑지 않은 미더운 바람 한 점에


오르는 내내 못다 한

나의 인내심의 끝자락에서 보여준

마지막 갈구하는 자존심이

상심이 되어갔을 때


비로소 나는

치악이 걸어가는 길이


비단,

정상에서의 높게 불어주는 바람만이

내게서 불어오는 강한 마음을

지켜주고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네


바람의 인연은 붙잡을 수 없다고

단지,

스쳐 지나는 가벼운 존재의 허상일 뿐

하늘은 내게 스스로를

되묻지 말라고 전해주며

구름 되어 떠나가라 말해주네


2025.6.13 치악산 종주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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