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과 끝
등산(登山)의 마음(등산 타령가)
- 시작과 끝
시. 갈대의 철학[蒹葭]
겨울산에 가보았다
이곳은
지난 미지의 세계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세상의 공존이 함께 떠나오는 곳
너는 일찍이
동트기 전 얼었다 녹았다를
늘 반복의 순간들에 환희하고
따뜻한 봄을 기다리기도 전에
너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그곳에 가야만
너의 의미를 퇴색치 않게 하였다
이듬해
봄이 피기 전에
그 짧은 기다림도 이기지 못한
겨울앓이에 네 마음 잃고
늘 새봄을 맞이할 채비를
서둘러야만 하였다
붉은 가을산에 올라서 보아라
난 아직 푸르름을 간직하고 싶었는데
너는 덜 성숙하여도
낙엽 떨어지는 연습을 가르쳐 주었지
젊음과 낭만이 숨쉬고 머무는 그곳
뜨거운 여름산으로 올라가 보자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나니
밤하늘 떨어지는 별똥별과 함께해서 좋고
하늘 아래 누워 그대와 함께 수놓은
수많은 별자리 중에
그대와 함께하는
백조의 호수가 있어서 더욱 좋네라
여름철 별자리가 그대 차지라면
나는 그대의 장막을 거두는 빛이 되드리다
천둥지하 호령치며 떨어지는
소낙비 한 방울에
장대비 되어 휩쓸고 내려간
긴긴 계곡의 물살을
너는 아무 탈없이 버티며 지킬 수 있는
뿌리의 위대함을 가르쳐 주었다
봄 등산을 떠나보세
여기가 들머리의 시작입니까
저기의 끝이 날머리로 가면 되오리까
출발했을 때 가졌던 마음이 시작의 반이요
도착했을 때 떠났던 마음이 끝의 반이라
시작과 끝을 두고
발길은 이미 그곳을 떠나니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몸은 하나요
배낭도 하나인데
마음은 벌써 두 마음이라
등산의 시작이
배낭을 짊어지고 가는 것만도 아니요
등산의 끝이
내려갈 때의 홀가분한 마음도 아니라네
처음 시작했을 때의 마음이 함께하니
짧지만은 않은 오름 길에
하늘이 내게 주시고
시험을 들게 하심에 영광이라 여기리라
산 종주의 가장 힘들 때가 언제였냐고 물으면
나는 익히 서슴없이 이렇게 대답할 것이요
" 온몸의 무게와 사투를 벌이는
처절한 자기만의 지루한 시간과의
연속된 싸움의 시작이라고 감히 말하리
곧 내게 주어진
첫 오름 삼십 분의 시간을
내 생애 전부였다고 서슴없이 말하리라 "
생각해 보면 참으로 우습습니다
출발과 도착에 앞서
이미 가지도 않은 이 길을
오르지도 않은 저 산을
마음으로 이미 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니 말입니다
출발의 마음과 도착의 마음에
산을 오르고 있는 두 마음 앞에
등산의 무게는
곧 마음의 무게 앞에 무너지게 됩니다
항상 떠나는 마음이
기다림의 마음으로 가져서도 아니되는 것도
기다림의 마음이 곧
다시 떠나는 마음을 염려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2018.4.8 둔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