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 돌아온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에는
-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 돌아온다
시. 갈대의 철학[蒹葭]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에는
떠나간 그 사람이 그립고 생각날 때
흘러가는 저 하늘 바라보며 뜬 구름 잡아보듯
가끔은 그대가 보고 싶어 질 때가 있습니다
우산을 쓴 듯 안 쓴듯한
매일반 일상적인 반복 속에서
이렇게 잔잔하게 내리는 빗속을 거닐 때는
우리들에 사랑의 속삭임을 시샘이라도 하듯이
저 비가 가져가게 될까 염려되기도 하고
천둥 호령 치며 날벼락 떨어지듯 내리치는
빗소리에 다시 놀라면
어느새 그 빗속에 그대와 나와의 숨은 사랑은
들켜버리고 말았습니다
조용한 자동차 안과 밖의 차이
마치 딴 세상처럼 다가왔다가 떠나가는
가랑비와 소낙비가 내릴 때처럼
우리들 사랑도 그 속에 함께 묻어가고
그 깊고 깊은 수렁의 나락은
마치 그대와 나의 사랑을 부채질하기에
충분히 타락된 천사였습니다
이렇게 소낙비가 내리는 날에는
청포도가 무릇 익어가고
나는 마냥 서슴없이
그대와 함께했던 그날을 회상하며
그 길 그 찻집 앞을 다시 서성이 곤합니다
혹시나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그 찻집 창가에 앉아서
그대가 예전에 좋아 즐겨 마셨던 케냐 커피를 마시면서
오늘은 그대가 없을 거라 여기면서도
이미 마음은 작정하여
그 카페를 머뭇거리지 않고 들어갔습니다
이 비가 그치고 난 후
내 마음은 더욱더 푸를 것이요
청포도가 익어갈 무렵에는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지난날 그대와의 사랑이 정점에 다다랐던
달콤한 언어의 도단을 가져다준 언약식에
나는 늘 그 거리를 아직도 배회하고 있을 거라
그 거리에 막연히
그대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저절로 벅차오르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집으로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먼산 바라보듯 넋을 잃고 바라보는 것이
어쩌면 그 소낙비 내리는 빗속을 거니는
연인들의 사랑이 부럽고 부끄러워 서도 아니며
마냥 떨어지는 빗방울에
내 눈에 흐르는 눈물 한 방울을 더 헤아릴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