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은 간단하다.
저점에서 사고, 고점에서 팔면 수익이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라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하지만 막상 매매를 앞두고 있는 늘보나무에게 저점은 지하로 가는 입구 같고, 고점은 이제 막 출발한 엘리베이터처럼 보인다.
차트는 말없이 그를 시험한다.
지금이 진짜 바닥일까? 아니면 지하문이 열릴까?
이제 벼랑 끝일까? 아니면 지금보다 더 오를까?
뉴스를 뒤지고, 호가창을 들여다보고, 차트를 분석하고, AI에게 물어본다. 정보에서 합리적인 근거를 찾고, 결국 스스로 이성적인 판단을 내렸다고 믿는다. 하지만 대부분은 공포와 조급함에 휘둘린 선택이었다.
바닥이라 생각했던 그곳 아래에 구덩이는 깊었고, 고점이라 여긴 종목은 지치지 않고 오르더라.
늘보나무는 손실을 회피하고 싶어 하고, 이익은 빨리 확정 짓고 싶어 한다. 이 단순한 심리가 단순한 수익 공식을 복잡하게 만든다. 물론 그도 안다. 모든 상승은 눌림을 동반하고, 모든 하락은 반등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걸. 하지만 늘보나무의 심리적 고점과 저점은 차트보다 빠르게, 더 극적으로 출렁인다.
인지상정일까. 사람들은 투자 경험이 쌓이다 보면 결국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아라.”
늘보나무에게는 무릎은 긴 바지에 가려져 안 보이고, 어깨는 두꺼운 패딩 속에 묻혀 헷갈린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차트를 보고 있는 걸까, 감정을 따라가고 있는 걸까.
그리고 소심하게 주문을 외운다.
“여기가… 무릎이야.”
“이 정도면… 어깨겠지.”
그 후 버튼을 누른다. 이번에도 수익일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건 내 다리였고, 내 어깨였으니까.
그래, 오늘도 나름 괜찮은 착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