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차원을 발화하는 자

제9화 격리된 진동

by 늘람

세계는 어느새 파동의 새로운 질서에 휩싸여 있었다. 유럽과 아시아, 남미의 주요 도시들에서는 시간의 겹침 현상이 보고되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고대 언어로 된 문자들이 허공에 떠올라 빛을 발하거나, 역사 속에서 사라진 인물들이 거리를 배회하는 일들이 목격되었다. 전 세계 과학자들은 밤낮으로 이어지는 회의 끝에 이 현상을 '차원 공명현상(Interdimensional Resonance)'이라 명명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정의를 내리는 순간에도 내면의 불안을 감출 수 없었다. 이것은 단순히 새로운 과학적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인류가 수세기 동안 확고하게 믿어온 '현실'이라는 개념의 기초가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이 현상을 설명하려 했지만, 그들의 표정에는 이미 패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특히 '서울-제네바 파동 축선'으로 명명된 지역에서는 시간의 밀도가 조수처럼 오르내리며, 인간의 감각으로도 지각 가능한 특이한 진동 주파수를 방출하고 있었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하루에도 두세 번씩 자신의 감각을 의심하는 일이 잦아졌다. 어제를 다시 사는 듯한 데자뷰를 경험하는 사람,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의 기억으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 태어난 적 없는 자식의 목소리를 귓가에서 듣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그들은 이제 확신하게 되었다. 세계는 더 이상 시간과 공간이 단일한 선형으로 흐르는 곳이 아니었다.

"여기서부터는 차원의 위상지형도가 필요해. 이건 우리가 기존의 도구로 예측할 수 없는 방정식이야."

린은 창백한 손끝으로 홀로그램 디스플레이에 떠오른 차원 간섭 지도의 복잡한 곡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우주적 확장의 기운이 스며들어 있었다. 마치 한 인간의 목소리가 아닌, 더 넓은 무언가가 그녀를 통해 말하는 듯했다.

엘레나는 지도의 오른편에서 주파수 분석과 뇌파 데이터를 집중적으로 대조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피로에 충혈되어 있었지만, 그 안에는 발견의 빛이 살아 있었다. 그녀는 지난 72시간 동안 린의 뇌파 패턴이 도시 전체의 위상 진동과 기이하게 동기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너는 지금... 도시와 함께 진동하고 있어, 린." 엘레나가 숨을 죽이며 말했다.

"그래. 내 감각이 이 도시와 공명하고 있어. 단순한 동조가 아니야... 내가 이 현상을 유도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린은 무표정한 얼굴로 모니터의 파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손끝은 마치 보이지 않는 현을 튕기듯 미세하게 떨렸고, 가끔은 자신의 심장박동과 호흡이 도시의 전자기 진동과 정확히 동일한 주기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에 그녀 자신도 전율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공생이었다.

국제연합 산하 위기대응기구 'CATA(Chaos Anomaly Tracking Authority)'는 결국 린을 제네바 본부로 소환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수학자와 물리학자, 윤리학자, 정치 전략가들로 구성된 특별위원회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협의가 아닌, 통제를 위한 자리였다. 회의실의 원형 테이블은 마치 심문대처럼 느껴졌다.

CATA의 핵심 책임자 중 한 명인 마리아 포르테 박사는 차가운 강철같은 눈빛으로 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박사님, 우리는 당신이 이 현상의 중심에 있으며, 어떤 형태로든 이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현실은 더 이상 인간이 설계하고 예측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닙니다. 우리는 질서를 지켜야만 합니다."

린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들을 마주 보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마치 별빛을 담은 듯 깊고 넓었다.

"그 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게 아니라, 새롭게 재구성되고 있는 겁니다. 이건 존재 그 자체의 발화예요. 마치 우주가 스스로의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 같은 거죠. 이건 멈출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마치... 꽃이 피어나는 과정을 억지로 멈추려는 것과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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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결'과 '시간의 흐름'을 따라, 조용히 스며드는 이야기를 씁니다. 늘 머무르며 흐르는 글로 만나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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