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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최늘샘 Mar 28. 2018

황교리 맥가이버

충남 보령시 웅천읍 황교리 석진골 이장님 이야기

시골은 도시보다 마뎌서 좋아요, 마뎌서. ‘마디다’라는 말 알아요?
시골에서는 돈이, 대도시에 살 때처럼 헤프지가 않아요.
돈이 마뎌요, 마뎌.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황교리 석진골 이장 황일연 님

  여든여섯 살 할머니가 원통모양의 농업용 방석을 허리에 매달고, 길가에 듬성듬성 자라난, “삶아도 먹고 고아도 먹는 잔대”를 캐고 있다. “아들, 며느리 안 보니까 와서 하지, 이런 거 하라는 자손들이 어디에 있겄어. 방에 들어 누웠다가 심심해서, 운동 삼아 나왔지...” 이렇게 선들선들한 말투의 할머니와, 할머니의 칠남매 중 넷째 아들 황일연 씨 부부가 석진골의 외딴 집에 살고 있다. 

  “돌림자 이름이에요. 제 사촌 중에는요, 사연이, 육연이만 없고 칠연이, 팔연이, 십연이까지 다 있어요.”


  아저씨는 스물다섯 살에 결혼을 한 뒤 곧 미국으로 건너가 몇 년간 ‘그야말로 이주노동자’ 생활을 했다. “대여섯 시간 차를 타고 가도 끝이 안 보이는 올랜도의 오렌지 농장”과 뉴욕의 거대한 물류창고, 야채가게에서 주로 일했다. 온종일 커다란 멕시코 수박 따위를 “깨지지 않게 가슴으로 받아 옮기는” 일을 계속하고 나면 골병이 날 지경이어서 퇴근 후엔 바로 집에 가서 쉬어야 했는데, 몸집이 워낙 큰데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많이 해서 에너지로 터질 듯한 백인 동료들은 매일같이 샤워를 하고 나면 향수를 칙칙 뿌리고 데이트를 하러가거나 나이트클럽으로 향했다. 똑같이 일을 하고서도 피곤한 기색 하나 없는 그들의 체력과 활력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에 5차까지 시험을 거쳐 “땡큐, 웰껌!” L호텔 영업부에 취직한 뒤 18년 동안 근무했다. 호텔 건설에 필요한 각종 자재를 관리하거나, 호텔을 지은 후 식음료 파트 등을 운영하는 일을 했다. 

  “고위층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많이 접했는데... 소주 마시고는 싸우고 말지만, 위스키 마시고는 사람을 죽여요.” 

  일을 하며 이런 저런 거친 일들을 많이 겪었다.         


   퇴직을 하고 몇 년 전 고향으로 귀농했다. 

  “시골은 도시보다 마뎌서 좋아요, 마뎌서. ‘마디다’라는 말 알아요? 마디다, 단단하다. 예를 들어서 불을 땔 때, 화력이 좋고, 퍽퍽 타지 않는, 천천-히 타는 나무를 ‘마디다’고 해요. 그 마딘 나무처럼 시골에서는 돈이, 대도시에 살 때처럼 헤프지가 않아요. 돈이 마뎌요, 마뎌. 음... 도시에 살 때는 한 달 생활비가 최소한 150만 원은 들었는데 여기서는 50만 원 가지고 충분해요.” 

  “자, 나무를 때니까 보일러 연료비도 안 들지, 아파트 관리비도 안 나가지, 물건도 덜 보니까 덜 사게 되지, 또 동무들도 멀리 있고... 돈 쓸 일이 적고 여러 가지가...”  


  “기계화가 다 됐다고 하는 시대지만 아직까지도 시골 농어촌은 이 뼛골이 아파야 되는 일들이 많아요.” 나무를 베다가 죽을 뻔한 적도 몇 번 있다. “조심해서 만반의 각오를 하고, 2톤쯤 되는 큰 나무에 다가가서 엔진 시동을 걸고 전기톱을 나무에 딱, 대는 순간, 그 큰 나무가 더 크게 느껴져요... 쓰러질 방향을 계산하고 손을 데도, 자연의 힘이란 건 입맛대로 되지가 않는 거죠. 도시에 살 때는 주변에 ‘Give your hands.’ 하면 도움을 줄 사람이 많지만 시골에는 사람이 없어요. 뭐, 산이 도와줍니까, 강이 도와줍니까?! 시골에서 살려면 맥가이버가 돼야 돼요, 맥가이버가.” 

  그렇게 일연 아저씨는 점점 황교리의 맥가이버가 되었다. 


  아저씨뿐만 아니라 도시에서 생활하다 시골에 내려와서 사는 사람들이 “무엇보다 큰 애로점(문제점)으로 드는 건 부부 관계의 조율이 되지 않는 점”이다. “지역문화, 동네 사람들과 섞이는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해소가 되는 편인데, 부부끼리 코드가 안 맞는 문제는 정말 해결이 어려워요."   


  “주변 부락민들이 너무 나이가 드시다 보니 할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떠밀려서” 아저씨가 황교리의 이장을 맡고 있다. “한 아파트에 통장이 두 명씩 있는” 도시와 다르게, 시골은 아저씨가 맡고 있는 부락만 해도 “땅덩어리로 치면 몇 십만 평”에 이른다. 


  “도시에서는 동네마다 주민자치센터가 옆에 있어서 가지고 일이 효율적으로 처리가 되는데, 여기서는 읍사무소가 이장들 손을 빌리지 않으면 행정이 마비가 돼요, 행정이... 올해에 내가 읍사무소를 통해 받아서 대형 트럭으로 마을에 운반한 비료만 해도, 2천 포대도 아니고 2만 포대예요, 2만 포대. 못자리하는 상토, 기본 비료, 논에 넣는 규산질 비료, 밭에 넣는 석회질 비료, 종류도 다양해요. 이러니 이장들 일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정말 먹을 복이 있는 걸까, 여행 중이라서 그런 걸까? 만나는 인연들마다 음식을 내주신다. 외딴 시골집이라 어쩌다 어쩌다가 먹는다는 삼겹살을 할머니와 이장님 부부와 넷이 한 식탁에 둘러앉아 먹었다. “첫 수라 향이 강한” 상큼한 민들레 잎과 머위로 쌈을 싸서 먹었다


  젊음이 좋은 건 경험하게 되는 일들을 “안 잊어버리는 것”이라며 “이 식탁도 못 잊을 거”하고 하신다. 앞으로 인생을 살다가 고기는 먹고 싶고 돈은 없을 때면, 황교리 외딴 시골집에 사는 맥가이버 아저씨 가족과 행운의 신이 열어준 삼겹살 파티를 떠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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