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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최늘샘 Mar 28. 2018

세월 낚는 강태공들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강태공 이야기

나도 젊을 때 자네처럼 무전여행을 다닌 적이 있어.
충청도로 전라도로, 전국으로 많이 돌아 다녔지.
그때가 제일 좋았던 것 같애.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낚시인 박금철 님

  2박 3일 일정으로 익산에서 자가용을 몰고 곰의 강, 웅천으로 낚시를 나온 박금철 아저씨를 만났다. 아직 날이 차서 밤에는 텐트 안에 가스난로를 피워야 잠을 잘 수 있다고 한다. 내일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낚시를 하다가 알게 된 친구에게 “오늘 들어오겠다는 전화가 와서, 같이 낚시를 더 하다가 모레, 글피나” 나갈 것 같다.         


  D시멘트에서 사무직으로 평생 일하다가 몇 해 전에 정년퇴직을 했다. 

  “아직 일을 할 나이는 되는데 딱히 새롭게 할 일도 없고, 연금으로 한몇 십만 원 돈 나오는 것이 있으니까 이제 이렇게 낚시나 다니고, 쉬려고 해... 버는 건 정해져 있는데 요즘 계속 물가가 엄청 오르잖아. 물가가 좀 안정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 딸이 앞으로 좀 잘 살면 좋겠고.”  


  “나도 젊을 때 자네처럼 무전여행을 다닌 적이 있어. 충청도로 전라도로, 전국으로 많이 돌아 다녔지. 그때가 제일 좋았던 것 같애.” 

  젊은 시절 여행의 기억을 평생의 가장 좋았던 기억이라고 말씀해주셔서 왠지 발걸음에 기운이 실렸다. 돈이 없거나, 여비가 넉넉하지 않으면서도 무작정 일상을 떠나 길 위를 걷고, 새로운 세상과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 그걸 방랑벽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까. 


  젊을 때 무전여행으로 전국을 떠돌았던 청년이, 60대가 된 지금, 청년 시절과 비슷한 마음으로 전국 각지의 강과 바다에 낚싯줄을 드리우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다시 세상을 여행하고, 만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낚시를 해본 경험이 적고 낚시의 맛을 느껴본 적이 없지만 한국에서나 외국에서나 공통된 그 모습, 홀로 고요히 앉아 ‘세월아 네월아’ 시간을 보내는 모습들을 보면, 낚시가 참 잔잔하고 독특한, 어떻게 보면 심오하기도 한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를 마친 금철 아저씨는 발끝에서 허리까지 올라오는 긴 장화를 신고 물살에 빠지지 않게 엉금엉금 강으로 걸어 들어가 각목과 합판을 잇대어 만든 발판 위에 낚시 의자를 놓고 앉아 다시 낚시를 시작했다. 부사호로 흘러가는 곰의 강 위에 홀로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아저씨는 하루 종일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소황교를 건너 웅천읍에서 서천군으로 넘어갔다. 강변 군데군데 멀찍이 떨어져 자리를 잡고서 홀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미끼를 물어 잠잠하던 낚싯대를 흔들어줄 물고기를 기다리며, 강태공*들은 저마다의 세월을 물결 위에 띄워 보냈다. 부사방조제 너머 서쪽 바다로 서서히 해가 지고 있었고 물새들도 서둘러 집을 찾아가는 듯했다. 

  해가 지면, 잘 곳을 찾아야 한다. 나그네를 맞아줄 곳을 찾지 못하고 춘장대 해변을 지났을 땐 이미 밤이 되었다. 대규모 관광지여서 숙박업소는 흔했으나 가격이 비싸고 에누리도 없었다. 종일 걸어다닌 피로한 몸을 편히 쉬고 싶었지만 여행을 끝까지 이어가려면 모텔이나 민박집에 묶기가 어려웠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딸기우유를 사먹고 힘을 내어, 또 계속 걸어 나갔다. 깜깜해진 밤거리를 배회하는 큰 개들이 갑자기 달려들까봐 무서워지고, 더 못 걸을 만큼 다리가 아파올 때쯤, 구원처럼 한 가족을 만났다.


*강태공(姜太公, 기원전 1156년~기원전 1017년). 본명은 강자아(姜子牙). 전설에 따르면 주(周)나라 문왕 희창이 강자아를 얻은 뒤 이는 선조 태공께서 간절히 바라던 인물이라 하여 태공망(太公望) 또는 강태공이라 불렀다고 한다. 희창의 아들 희발(무왕)을 도와 상나라의 주(紂)왕을 토벌하여 주가 상을 물리치는데 절대적인 공을 세운 정치와 군사의 전문가였다. 그 공으로 제(齊, 지금의 산둥성) 지역에 책봉되어 제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섣불리 정치에 나서지 않고 웨이수이(渭水) 강에 낚싯대를 드리운 채 희창이 자신을 조정으로 불러주기를 기다렸다. 그는 때를 기다리며 부패한 상나라를 무너뜨릴 책략을 치밀하게 구상했고, 결국 상·주교체라는 변혁을 끌어냈다. ‘낚시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쓰인다. 


* <남한사람들>은 다섯 번째 여행지 서천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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