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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야옹 Oct 09. 2020

혐오표현을 없애는 방법

홍성수 <말이 칼이 될 때> 요약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혐오표현에 대한 개념 정의는 아래와 같다.

"차별, 적의 또는 폭력의 선동이 될 민족적, 인종적 또는 종교적 증오의 고취" 
"반유대주의, 제노포비아, 인종적 증오를 확산시키거나 선동하거나 고취하거나 정당화하는 모든 형태의 표현 또는 소수자, 이주자, 이주 기원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공격적인 민족주의, 자민족중심주의, 차별, 적대 등에 의해 표현되는 불관용에 근거한 다른 형태의 증오"

여기서 우리는 혐오표현이 '차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혐오표현은 소수자를 사회에서 배제하고 차별하는 효과를 낳는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남성이나 기독교도와 같은 다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은 성립하기 어렵다. 소수자들처럼 차별받아온 과거와 차별받고 있는 현재와 차별받을 가능성이 있는 미래라는 맥락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혐오표현은 대개의 경우 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혐오표현과 같은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 "남학생들은 매일 스마트폰으로 스포츠카나 구경한다. 그래서 불행한 거다"라고 말하거나 비장애인에게 "장애가 없는 사람들은 밖에 나오지 발고 집에 처박혀 있어"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특별히 남성이나 비장애인에게 위협이 된다거나 차별을 조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특정 지역이나 공동체 단위에서 남성들이나 기독교도가 소수자로서 억압받고 있다면 남혐이나 개독은 끔찍한 혐오표현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말을 믈어야 한다는 것, 그건 당사자가 아니면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이다. 그런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면, 과연 존엄하고 평등한 시민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고 할 수 있을까? 소수자에게 표현의 자유는 자신의 인권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적 가치다. 생존권, 평등권, 참정권, 노동권 등 모든 권리의 실현을 위해 소수자는 자신의 권리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다른 권리의 실현을 위한 전제조건인 것이다. 


그래서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 총량이 증가하는 것은 언제든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혐오표현에 대한 개입은 혐오표현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보다는 더 많은 표현이 혐오표현을 격퇴시킬 수 있도록 표현의 자유를 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즉 희생자와 그 지지자들에게 혐오표현행위에 대응하게 하는 실질적 제도적 교육적 지원을 함으로써 희생자들로 하여금 혐오표현행위의 '침묵하게 만드는 효과'에 도전하게 하고 혐오표현 화자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법이 발화자 차원에만 머무른다는 것도 문제다. 혐오표현의 원인에는 복잡한 정치 사회 경제적 배경이 깔려 있어서 이런 것들을 도외시한 채 혐오표현의 발화자만 처벌하는 것은 진정한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범죄를 낳은 것은 사회인데 처벌받는 것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된다는 문제다. 금지와 처벌로 인해 겉으로는 법규제가 성공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수면 아래에 있는 혐오와 차별은 언제든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다만 대항표현에 너무 많은 환상을 갖는 것은 금물이다. 대항표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혐오표현이 개인의 사적 실천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당사자 개인의 대응은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거나 피해를 줄이는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결국에는 집단적, 조직적 대응이 문제 해결에 더욱 중요하다. 그렇게 함께 혐오표현에 대응함으로써 피해자가 아니라 발화자를 고립시키는 것이 대항표현의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일본의 카운터 운동이나 서울대의 현수막 복원은 대항표현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낸 사례였다. 


어느 연구에 따르면 혐오표현에 대한 대응을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폭력이나 차별로 보복당할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한다. 법과 제도가 이러한 보복행위를 철저하게 규제해야 대항표현의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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