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우울이와] 특별편 02 – 끝내 읽고 남긴 기록
이 글은
이해하거나 해석하려 하지 않으면서
떠나지 못한 장면 하나를 붙잡고 쓴 글입니다.
감상문이자 상상에 기반한 2차 창작물이며,
그 어떤 의도도 없음을 밝힙니다.
조심히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천사는 구름 위에 누워 있었지만,
눈을 감고도 쉬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늘은 스스로 목숨을 놓았으나, 육체의 숨이 끊어졌는데도 여전히 몸에 묶여 있는 아이의 영혼을 거두러 왔다. 사실 일반적으로 천사가 맡을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세계에는 늘 예상 밖의 경우가 생기고, 그런 경우는 보통 가장 지쳐 있는 쪽에게 맡겨진다.
그땐, 다른 일에 지원 나갔다가 돌아온 직후였다.
해야 하는 일은 언제나 많고, 피로는 언제나 조금씩 쌓인다. 인간이 아니니 다치지는 않지만, 오래 지켜본 것들이 쌓여 몸이 닳아진다. 그리고 천사는 인간보다 회복이 훨씬 오래 걸린다.
“천사님…”
말 끝을 흐리는 목소리.
날개를 달고 있고, 인간 세계에서 말하는 천사의 이미지와 비슷하다고
예전에 들은 적이 있다며 아이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가요?.......
많이... 바쁘시죠…?”
아이는 가고 싶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고, 천사는 그 얼굴을 여러 번 본 적이 있었다.
살아 있는 얼굴이 아닌,
아직 떠나지 못한 얼굴.
“내가 인간이냐. 먹고살려고 일하면서 살게.”
난 인간이 아니라 회복이 느려.
피곤하니까 너 좀 거기 기다리고 있어.
그러자 아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잔뜩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럼… 엄마한테 갔다 오면 안 돼요?”
“잠깐이면 되는데....”
아, 피곤해.
인간들은 천사를 착한 존재로 생각한다.
그리고 착한 존재는 늘 희생해야 한다고 믿는다.
천사는 그런 믿음이 제일 피곤했다.
천사라는 건 그저,
하나의 종족일 뿐인데도.
특히 이런 꼬마들이 착한 천사님, 들어주세요, 라며 두 손 모아 간절히 부탁하는 얼굴을 들이밀 때면 정말 피곤해졌다.
결국 천사는 아이의 손목에 빨간 실을 묶어 주곤,
드러누우며 손을 휘휘 움직였다.
“그거 당겨지면 그때 와.”
“5분이면 돼요! 금방 갔다 올게요!”
금방 환해져 쌩, 하고 가는 뒷모습을 보았다.
내 하루가 네 하루랑 같지 않아요.
천사는 심드렁한 얼굴로 구름 위에 누웠다.
“엄마 얼굴만 잠깐 보고 올게요!”
아, 진짜 너무 피곤해.
유난히 못 떠나는 인간들이 있다.
죽은 인간의 한이나 염원 때문이기도 하고,
산 자와 탯줄이 이어져 있듯 보이지 않는 끈으로
붙들려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 아이가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이 정도 힘밖에 없는 작은 아이가 갈 수 있는 범위는
대충 가늠이 됐다.
매여 있는 데 기운을 뺏겨서
본래 발휘할 수 있는 힘이 낮아져 있었고,
그 덕분에 내 손가락 하나로도 통제가 가능했다.
실은 늘어났다 줄어들었다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건 아이가 어딘가에 멈춰 있다는 뜻이었다.
한 장소에서,
무언가를 오래 바라보고 있다는 신호.
실을 따라가 보니 한 절에 닿아 있었다.
아이의 엄마가 그곳에 있었다.
템플스테이를 하는 곳,
마음수련 프로그램이 진행 중인 자리로 보였다.
아이는 절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넘지 않기로 한 듯한 자세였다.
안과 밖의 경계에 서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듯, 엄마가 있는 쪽만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은 무척 작았다.
절 안에는 향 냄새가 가득했다. 그 냄새는 이 땅에서만 몇 천 년인데도, 늘 슬픔과 잘 섞였다.
인간들은 왜인지 모르게 슬픔을 향과 함께 태운다. 보이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인지, 더 오래 남기기 위해서인지는 천사도 아직 알지 못했다.
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 하셔도 됩니다. 진행자의 말이 끝나자 여자는 쏟아내듯 울기 시작했다.
무거운 그 울음은 멈추지 않는 사람의 말보다 안쪽에서 천천히 밀려 나오는 그런 울음.
숨이 막혀서 터져 나오는 게 아니라, 먼저 몸에서 빠져나온 울음이었다.
아이는 여자를 보며 같이 울었다.
여자가 “미안해”라는 말을 반복할수록 아이의 울음은 더 조용해졌다.
자기 때문에 울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천사는 아이의 옆에 앉았다. 구름 위에서처럼 편한 자세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이와 같은 높이가 되고 싶었다.
“어느 나라 말 중에 ‘SIN’이라는 단어가 있어. 지금은 ‘죄’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원래는 ‘존재한다’는, 그냥 ‘있다’라는 의미였다. 있다는 것.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 누군가의 안에 남아 있다는 것. 그게 원래의 'SIN'의 뜻이었어. 너희 나라에서는 그 발음이 '하늘의 신'을 가리키기도 하고, ‘믿음’이라는 뜻으로도 쓰이지."
아이의 울음의 진동이 잠시 멈췄지만 얼굴의 눈물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아이가 쳐다보는 게 느껴졌지만 천사는 보지 않았다.
“저 여자는 지금,
죄를 말하고 있는 게 아니야. 존재를 말하고 있어.
네가 있었다는 걸. 그리고 그 사실이, 자기에게 너무 크다는 걸.”
절 안에서 여자는 자신의 가슴을 눌러 잡고 있었다.
마치 뭔가가 아직 거기 남아 있는 것처럼.
“인간들은 자주, 그래서 자기가 느끼는 존재의 무게를 죄라고 부르는 거야.
너무 무거워서. 그렇게 부르지 않으면. 견딜 수 없거든.”
아이는 여자를 보며 눈을 떼지 않았다.
여자의 입이 ‘미안해’라는 말을 만들 때마다 아이의 가슴이 그 모양으로 접혔다 펴졌다.
아이는 그 말을 벌로 듣는 듯했다.
천사는 그것이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건 인간들의 특징 중 하나였다. 존재나 생각은 믿는 쪽으로 더 세게 기울어져 버리고, 사랑받았던 존재들은 늘 사랑의 실패를 항상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아이는 손을 들어 엄마 쪽으로 뻗고 싶어 했다.
실이 조금 더 길어졌다. 그리고 천사는 당기거나 저지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아이의 마음은 조금만 더 붙어 있으려는 움직임이었기 때문에.
여태까지 본 인간의 패턴으로 생각해보면,
붙어 있고 싶다는 건, 살아 있고 싶다는 뜻이 아니었다.
원하는 인간의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고 싶다는 뜻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어떤 존재는 그것만으로도 이미 너무 아프다.
여자의 울음은 이제 다르게 바뀌어 있었다.
쏟아내는 울음이 아니라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는 울음이었다.
아이의 손목에 묶인 빨간 실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이번에는 당겨지는 쪽이 아니라, 느슨해지는 쪽이었다.
아이에게선 잠시 잦아들었던 슬픔이 흘러나왔으나, 울음은 더 이상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눈 안에 고여 있었다. 그때, 무언가 큰 것이 안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난 것처럼 아이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갔다.
“천사님. 엄마는… 저를 보낸 걸까요?”
천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편이 인간에게 더 안전한 질문들이 있다는 걸
너무 오래 보아왔기 때문이다.
이제 그만해도 된다는 진행자의 목소리가 들렸고, 여자는 고개를 들었다.
눈은 부어 있었고 숨은 고르지 않았지만 분명히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아이는 그 얼굴을 오래 바라보다가 아주 작게 종알거렸다.
어떤 말인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틀림없이 어디엔가 닿았을 것이다.
천사와 아이는 이윽고, 구름 위로 돌아왔다.
아이는 다시 가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계속 있다 온 곳을 쳐다보았다.
천사는 다시 누웠다. 아, 정말로 피곤했다.
인간들은 누군가를 잃고 나면 ‘보내야 한다’는 말을 배운다.
하지만 천사는 안다.
보내는 일보다 남아 있는 일이 훨씬 오래 걸린다는 것을.
아직 눈을 떼지 못하는 아이를 보며 천사는 말했다.
피곤하니까, 조금만 더 이대로 있자.
네-에-, 천사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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