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를 찌르는 소리의 통각

고요와 소음 사이, 얇은 막 위에서

by 는개




세상은 변함이 없는데, 나도 세상에 서 있고 싶은데.

이제는 제 몸이 세상을 거부하기 시작했어요.


어느 순간부터 소리 조각들이 제 귀를 시끄럽게 하기 시작했어요. 하다못해 맑고 청량한 물방울 소리조차 저를 멸시하는 것만 같았고, 어디서든 날카로운 소리들이 침범해 왔어요. 그 소리들은 표면의 파동이 아니라 제 안쪽을 긁어대는 것처럼 느껴졌죠.


시끄러움을 피해 숨으려 바다 밑으로,

더 깊이 아래로아래로 향했어요.

물만이 전부인 곳으로요.


이윽고 소리가 괴롭히지 않는 곳에 도달했을 때, 그곳은 정말 잔잔했어요.

어떠한 파장도 일지 않는, 은둔하듯 숨어들기 좋은 심해였죠.









맵찔이인 저는 매운맛을 못 견뎌요. 혀에 닿는 매운 자극이 혀 전체로 퍼져 먹는 순간부터 한참 동안 고통으로 남듯, 소리의 자극도 제 안에 오래 머물렀어요. 매운맛이 남기는 잔향처럼, 날카로운 소리들은 귀에 박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어느새 그 고통은 소리 자체가 되어 제 귀를 파고들었어요. 그래서 귀마개를 끼고 헤드폰을 써도 소리는 귀를 할퀴어 왔어요.


소리는 살갗을 타고 뼈를 울렸고, 결국 제가 숨 쉬는 방식까지 바꿔 놓았어요.

숨을 들이쉴 때마다 혀끝에 닿는 물방울처럼 작고 날카로운 자극이 반복됐어요. 그 자극은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제 몸의 리듬을 흔드는 어떤 것이었어요. 숨을 고르는 일조차 조심스러워졌고, 호흡은 얇아졌어요.







초등학생 정도의 여자아이가 심해 속 .png


저는 아무것도 대처하지 못한 채로, 그저 피해서 숨었어요.

심해의 가장자리, 해저와 물이 만나는 곳에 쪼그리고 앉아 손끝으로 차가운 물을 더듬었어요. 손끝에 전해지는 차가움이 현실의 경계처럼 느껴졌고, 먼 해저의 윤곽을 붙잡으려 애썼지만 시선은 자꾸 안쪽으로 말려 들어갔어요. 밖을 향하던 시선이 점점 제 안으로 접히는 걸 느꼈어요.


물방울 하나가 떨어질 때마다 그 소리는 오래도록 울렸고, 저는 그 울림을 피할 수 없었어요. 소리는 잔물결처럼 제 안에서 번져 나갔고, 그 번짐은 때로는 기억의 파편을 흔들어 놓았어요. 어쩌면 어떤 소리는 오래 전의 상처를 건드리는 손가락 같았고, 어떤 소리는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불안의 메아리였어요.


시간이 흘러도 달라진 건 없었어요.

표면 아래의 잔잔한 소음은 사라지지 않았고,

저는 그 상태 그대로 어찌할 줄 모르고 웅크리고만 있어요.


도망쳐 왔지만 도망친 곳에서도 소리는 저를 따라왔고, 저는 그 소리와 함께 앉아 있을 뿐이에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채로, 저는 그 자리에 머물러 고요와 소음 사이에 놓인 얇은 막을 손끝으로 느끼고 있어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고, 저는 그 상태 그대로 어찌할 줄 모르는 채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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