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지 모르지
어느 순간부터 생각했어요.
내 감정이 보통의 것이 아니라고.
감정에 휘둘려 행동하면 할수록 나는 누군가를 잃었어요. 그 상실감이 너무나도 싫어 나를 감추기 시작했죠.
내 안의 우울이를 인정하고 우울이가 나타나면 쫓아내고 무작정 누르려는 것이 아니라 오면 온대로 같이 있기로 결심한 때부터 어떻게든 비슷한 생각을 찾고, 비슷한 사고를 하는 이들을 찾았어요.
우울증 치료자들의 카페라던가 게시판이라던가 블로그라던가..... 내가 했던 생각과 했던 행동이 조금이라도 의구심이 들면 검색창에 검색했어요. 정상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위해서요. 여러 사례들을 보고 두-세 개 이상이 있으면 안심을 하는 나날이 계속되었죠. 어떻게든 찾아서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근거를 붙이고 행동했습니다. '정상 - 비정상'을 나누는 건지 우울이를 증상으로 취급하고 병증을 알아보려 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어떻게든 이상해 보이지 않도록, 세상에 감춰지도록 노력했어요.
시중에 돌아다니는 어떤 검사지로도 한 번도 다르게 나온 적이 없는 명랑쾌활한 극강 엔프피인 제가,
제가 아닌 모습이 되었어요.
어떤 모습인지 저는 잘 모릅니다.
검색한 행동들만 했으니까 어디 보편적으로 있기는 하는 모습일거에요.
그런데 그 뒤로 사람을 잃는 일이 없었어요.
아니, 그냥 제 마음대로 그렇다고 생각하는지도 몰라요.
어떻게 보면 '진짜 나'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너무 오래 많이 하고 살다 보니까 왜곡되게 생각하고 세상을 어룽지게 보는 거죠.
예전이었으면 이런 얘기, 누군가와 술 마시면서 했을 텐데. 생각이 여물기도 전에 쏟아내고, 아니다 종류의 대답들을 들으며 자기 합리화하거나 술로 저 멀리 이런 생각을 밀어내버렸을 텐데. 내게 온 우울이를 내버려 두니 방울방울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조금은, 아주 조금은 그 생각들을 가져가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우울이가 있어주는 느낌이었어요.
고독과 지독한 외로움으로 사람을 사지 끝까지 몰아낸다는 우울이에게서 혼자가 아님을 느꼈다니.
참 아이러니하고 이상해요. 이런 생각조차도 전부 왜곡이고 정상적인 사고가 아닌지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