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이 낮은 채로, 우울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
우울증 치료에서 빠지지 않는 건,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는 거예요. 하지만
...... 아무리 해도 자존감은 높아지지 않아요.
내 눈에 나는 전혀 예쁘지 않아요.
남들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세상에 모든 것들은 전부 예뻐서
나를 바라져 버리게 만들어버리죠.
살이 찌는 것을 그리 걱정하면서도
의지박약 하게 술을 줄이지 못하고
어렵거나 따분하더라도 양질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면서도
정신을 차려보면 꼭 재밌기만 한, 이제는 배울 게 없거나 몇 십 번이나 읽어서
구절구절 외우고 있어 굳이 읽지 않아도 될 책만 또 보고 있어요.
작가가 되기 위해 선택한 생업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글을 쓰자고 몇 번이나 다짐하지만
쓰려고 마음먹었던 글은 제대로 한 줄도 쓰지 못해요.
되지도 않는 꿈을 오랫동안 포기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는 미진한 마음도 싫고,
그러면서 공모전 때마다 모르는 사이 기대하고 상상하는 내가 지긋지긋하게 싫어요.
자존감이라는 건 높아지기는커녕 생겨지지조차도 않는데
대체 그 수많은 에세이 저자들은 어떻게 가지게 되었다는 걸까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혹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마음 말이에요.
얻은 것이라곤,
그저 '자존감을 가지려면 이렇게 하면 된다' 같은 문구가 시키는 대로
...... 행동을 '흉내'만 내는 것뿐.
그 마저도 그때뿐이에요.
겨우 그 정도죠.
나는 결국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그대로의 나일뿐.
나를 사랑하라는,
그렇고 그런 에세이를 커피 마시듯
끼니를 잇는 시간을 아껴서까지 읽어대도,
소용이 없어요.
몇 년동안을 그 마저도 그때뿐 이더라고요.
자기 전에 책을 보며 나를 사랑하자, 주문처럼 중얼거리며 잠들고도
눈을 뜨면 알람을 끄기 위해 휴대폰을 집어 든 손이 보이면
너무 싫어서 역겨워 토할 것만 같았어요.
내가 너무 혐오하는,
무의식 중 불안에 물어뜯어 피딱지로 엉망인 손가락부터 보이면
그럼,
또,
다시,
원점이 되죠.
.
.
.
이렇게 노력해도 안 되는데,
너무 안 돼서, 이런 내가 너무 싫어서 결국 다시 우울해지고,
약을 삼키고 진정되길 기다립니다.
그래도 그동안 이런 내 모습을 몇 번이나 보였었죠.
함께 있던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고 불편하게 해서
몇 번이나 즐거운 순간들을 망치곤 했었는데
타인에게 들키지 않기 위한 대체방법은 알게 돼서
누군가에게 감출 수는 있게 됐으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인 걸까요?
누군가는
감추지 않고 드러내도 되지 않느냐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그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에요.
우울증이나 공황장애가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건 맞아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거나 이해한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돼요. 절대.
누구나 대외적으로는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를 원하잖아요?
실제는 그렇지 않더라도 타인이 보기에 좋은 쪽으로 포장된 대답을 의례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요. 또, 실성 진실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하더라도 실제로 본인이 겪어보고, 이상을 느끼고, '증상'임을 인식하고 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지 않는 이상 알고 있는 건 드라마나 영화, 인터넷 기사 등의 매체를 통해 알고 있는 일종의 '지식'뿐이죠.
알고 있는 '지식'과 진정한 '실제'는 다르다는 걸.
알잖아요.
그나마 공황장애라면 상대적으로 나은 것 같아요.
밖으로 보이는 모습이 식은땀을 흘리거나, 숨 막혀하며 가슴을 움켜쥐고 숨을 몰아쉰다거나 갑자기 쓰러져 빨리 119를 불러야 할 심장질환 의심환자인 것 같은 그런 일부 신체적인 증상들은 [보편적으로 심각하게 아파 보이는] 증상이잖아요? 그래서 거기에 대한 주변의 대응이 빨리 병원에 이송해야 할 중증병환 환자처럼 보이니까 진짜 환자(진짜 환자가 맞지만)처럼 보이니까요.
하지만 우울증은 자신의 주변 사람이 바로 알아차리기가 힘들어요.
감정이 자신도 모르게 태도나 말로 나와요. 함께 있는 타인의 입장에서 일단 기분이 상하거나 어리둥절하는 등 상대방이 느낀 감정이 섞이기 때문에 본인의 기분이 변해서 다르게 느끼게 된 것이 아닌가, 하고 [자체검열]을 하고 괜히 자신의 언짢아진 기분이 자신만의 것이고, 혹은 또 다른 타인이 눈치챈다고 해도 모두가 같이 있는 분위기를 해칠 수 있으니 [참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아요.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린다고 해도 욕설 같은,
실질적으로 바로 반박하고 화를 낼 만할 모욕을 느끼지 않는 이상 괜한 트러블이나 문제를 일으키고 싶어 하지 않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히스테릭하다거나 오늘 기분이 좀 안 좋은가 다운되어 보이네, 정도로 무마하며 자신의 기분을 가볍게 인식하고 지나쳐요.
뭐, 그런 일이 지속 반복되면 혹시 하고 알아차릴 수도 있지만, 그것도 대부분은 산후 증후군이나 갱년기 정도예요. 하지만 그건 증상을 알아서가 아니라 전후 상황으로 짐작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서인 경우가 많죠. 산후 증후군은 '출산'을 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갱년기'는 특정 연령대 전후로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완경'때문에 사춘기처럼 엄마들에게 온다며 어버이날 선물로 쏟아져 나오는 건강식품 홍보물을 알게 모르게 많이 접하고 있어서. 그래서 의심해 볼 수 있어 상황을 판단해 보고 혹시나 싶어 얘기를 꺼내보는 정도죠.
그렇기 때문에 결국 우울증은
밝혔다가 마음이 다치는 일이 발생해요.
특히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누구나 그런 날이 있다며 상대방이 가볍게 치부하거나 그 자리에서는 내색을 하지 않거나 위로한대도 자신의 기분 하나 조절하지 '못'하고 옆 사람에게 '민폐 끼치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더라고요. 아니라고 해도 그런 일을 겪으면 그 이후로는 일을 하다가 무심코 연결시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전혀 상관없이 업무적인 대화를 하고 있을 뿐인데 우울증과 결부시켜 일이 잘못되거나 문제로만 보는 것이 아닌, '너'의 예민함이나 '너'의 우울함으로 그렇게 생각하거나 느낀 것이 아니냐는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아요.
전,
가족도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가족이 알아차린 건 우울증이 한참 심할 무렵 자해를 해서 상처가 눈에 보였을 때였어요. 상태가 안 좋아 약속을 취소하고 싶었지만, 몇 주전부터 얘기하고 서로 시간을 조율한 터라 어쩔 수 없었죠. 대충 갈무리하고 나갔는데, 걱정대로 역시 좀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 같았어요. 그러다 입고 있던 셔츠에서 내 가족이 피가 배어 나오는 걸 발견한 거예요. 순간 별 거 아니라며 감추려 하는 내 팔은 잡아 걷혔어요. 대충 대일밴드로 붙여 놓은 자해 흔적을 보고 놀라 굳더니 일언반구 없이 그대로 나가 약과 붕대를 사 왔죠. 그리고는 처치를 해 주더니 한참만에 입을 열었어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혹시 필요하다면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힘들면 연락해 달라고. 직장동료나 지인 같은 보통의 사람들이 보일 수 있는 반응. 그게 최선이었어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는 가족이라고, 가족에겐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다고 너무 많은 책들이 말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하지만 몇 주전에 약속을 하고 시간을 서로 조율해서 만난 동생에게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사랑하는 내 가족인 그 아이는 그 아이대로 본인의 삶이 걱정도 많고 힘드니까. 거기에 보태줄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언니인걸요. 내가 동생이었다면 그랬던 대로 또 말을 안 했겠죠. 부러 너무 부풀려 걱정할 테니까.
그 이후로 우리의 연락 횟수는 줄었고, 나 역시 부러 연락하지 않았어요.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는데 생긴 당황스러움과 누구도 원하지 않은 불편함.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마음은 지속되고, 그로 인해 상대는 나를 피해요. 아무리 언론매체에서, 주변에서 떠들어댄다 해도 결국 남의 얘기죠.
발가벗겨진 상처를 가감 없이 본 이후 내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모르겠어하던 내 가족은, 자신의 속을 숨기고 난감한 얼굴로 위로의 말을 건네더니 이후에는 애써 내 앞에서 웃었어요. 그 모든 것을 깨닫자 마음이 찢어지게 아팠어요. 너무나도 아파 울었어요.
들킨 나를 탓하고
탓하고
탓하고.
약을 과하게 먹고 일도 못했고,
며칠을 울었던 것 같아요.
그 이후 타인과 함께 하는 일이라면 아무리 중요했던 약속도 깨고, 어떤 이익이 되는 일도 거절했어요.
내가 감출 수 있는 상태가 안되면 아무리 커다란 프로젝트도 거절하고 숨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애인과, 가장 친한 친구 한 명, 직속 상사 한 명 외에는 내 입으로 얘기한 적이 없어. 동생에게는 들켰고, 직속상사에게는 어쩔 수 없이 밝혔죠. 다른 팀이었지만 나와 오래 알았고, 같이 일하게 되면서 나를 많이 알고 있지 않으면 안 되니까.
솔직히 언급한 세 사람도 사실은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가늠이 되지는 않아요. 얼마나 진심으로 알까, 얼마나 공감하고 있을까, 싶다가도 생각해요.
난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건 아니니, 그 세 사람은 그래도 가족이지만 정 반대 성향을 가져서 많은 걸 설명해야 하는 동생보다 얼마나 이해할까 생각했다가도 어떻게든 애인이니까, 단짝이니까, 내가 잘해야 자신의 승진에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직속상사니까 더 이해해주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 이후로 나는 아침저녁으로 약을 늘리고 상비약을 늘 가지고 다니며 최대한 감추려 노력하며 살아요. 애인에게도 다 말하지 않았어요. 어떻게든 감추려고 철저히 노력했고, 눈치가 빠른 애인이 알아챈 것을 알아채도 모른 척했죠.
그런데 그렇게 그렇게 버티며 나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이젠 애인이 반려인이 되었고, 법적 가족이 되니 숨기는 게 더 힘들어졌어요
어떻게든 감춰야 하니까
안 되는 줄은 알지만 술을 먹고도 수면제를 먹거나
조금이라도 다른 기분이 들면 과다하게 안정제를 계속 삼키며 버텼어요.
그러다 약을 먹게 된 이후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낮은 자존감이 근원적 원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이 우울.
이 우울이 뿌리 박힌 내 마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의 결과가 결국은 극복이 아니라면.
사회인으로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몇 년의 노력이
결국 보통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흉내뿐인 것이라면.
그나마 나아진다는 상태가 결국 가지치기밖에 안 되는 거면,
그 수많은 마음을 위로하는 책들이 그때뿐이고
딱히 소용이 없는 거라면.
이렇게 계속 살게 될 거라면.
그럼
자존감이 낮은 채로, 우울하지 않을 수는 없는 걸까.
아무리 나를 좋게 생각해보려 해도
그래 지지 않는 걸.
나도 나를 좋아하고 싶지 않아서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니까요.
나도 나를 어여쁘게 보고 싶지 않아서 어여쁘게 보지 않는 것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 자존감이라는 거,
돈 주고라도 사 오고 싶어요.
안고 있을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비싼
명품 가방정도로 비싸다면,
빚이 지긋지긋해 무조건 일시불만을 고집하는 내가
십 년 할부로라도 살 마음이 있으니
어디 안 팔려나요.
이 자존감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혹시 파는 데가 있으면 꼭 알려주세요.
팔고 싶으시면 꼭 제게 팔아주시면 안 될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