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차라리 자기애적 인격장애가 낫겠어요

나르시시즘 환자가 부러워요

by 는개

우리 각자의 성격은 자기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거라고 쇼펜하우어는 말했었어요.


어릴 때부터 저는 아빠 판박이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어요. 엄마는 자주 "너는 어쩜 그런 것까지 네 아빠냐"라고 하셨죠.


저와 다르게 여동생은 엄마를 많이 닮았는데,

여동생과 저는 외나무다리의 끝과 끝에 있는 것 마냥

성격이 전혀 달라요.


쇼펜하우어의 말에 따라 어떻게 생각하면,

나는 내 성격을 내가 원해서 가지게 된 게 아니에요.


아주 발랄한 엔프피.

한 번도 다른 결과가 나온 적이 없는 극강의 엔프피.


사람을 좋아하는 것도

멋대로 기대하고 멋대로 상처받는 것도

내가 원해서 그런 것이 아닌데 왜

나는 그것들로 인해 괴로워야 할까요.


기대하지 말자고 수 백번이나 다짐하고

기대에게서 버티려고 하는데 왜

매번 무너져 괴로운 거죠..?


내가 생각하고 생각대로 행동하는 모든 일들이

유전적 성격에 기인하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사실은, 자유의지란 없고

자신이 생각하고 행동했던 모든 순간들을

자유의지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자신을 사랑하라고 수많은 책들로 주입한다고 해서

나는 조금이라도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걸까요?


타고난 성격과 적성, 그리고

겪어왔던, 겪고 있는, 앞으로 겪을 무수한 사건들과

거기에 따라 겪게 될 감정들 역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럴진대

지금 내가 나를 사랑하려고

기를 쓰고 있는 모든 노력들이

소용이 있어지긴 하는 걸까 싶더라고요.


차라리 자기애적 인격장애가 낫겠다고 생각한 게

몇천 번은 되는 것 같아요.


그들은 물론 그들 나름대로 고충이 있겠죠.

나르시시즘이 좋은 건 아니란 걸 분명히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남들에게 꼴같잖을지는 몰라도

내가 나를 못 낫다고 생각하며 겸손을 가장해

위선을 떠는 것보다는 백번 낫겠다 싶어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요.


그런 의미에서

자기 자신을 좋아하며 자화상까지 그린

예술가들을 보면 너무 대단해 보여요.


아마 전

죽을 때까지 램브란트처럼 자화상을 집착하듯 그릴 순 없을 거예요. 평생에 걸쳐 자화상만 80점 넘게 그렸다던 램브란트의 자화상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파산한 뒤에 그렸다는 늙고 아주 고독해 보이는 노인이었던 모습이었어요.


예술가에게 작품으로 남긴다는 것은 모두

세상에 보이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있어요.


나는 가장 예뻤다고 말을 들었던 날의 사진조차도

예뻐 보이지 않는 것 투성이던데.


그는 모두에게 버림받고 빈털터리가 되어

세상에 혼자 남았던 본인의 인생에서도

가장 초라하고 독거노인이 된 자신의 모습도 사랑해서

불특정 다수가 봐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던걸까요?


참…

어떻게 해야 그런 마음이 드는 건지,

그 마음 이해하고 싶어요.

간절히.

너무.


keyword
이전 03화내가 이상한 걸까, 우울이가 나를 이상하게 만드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