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놓고 울 곳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약을 먹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동안에도
문득문득 가슴 아래가 아프거나 눈물을 참는 것처럼 목이 메었었어요.
지금도 그렇고.
또 가끔은 눈물이 나면서 멈추지 않을 때가 있어요.
혼자 살 때는 그래도 마음 놓고 울기라도 했지, 이제는 반려인에게 숨기기가 쉽지 않아요.
몇 시간씩 가슴 아래가 아프고 눈물이 나서 애써 웃기는 콘텐츠들을 보며 있다가
슬그머니 이불 밑으로 숨어 들어갑니다.
혼자 서 있었던 내가, 그렇지 않게 되면서 한동안은 공중을 부유했어요.
바뀐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것부터 시작해서 타인들이 나를 달라진 눈으로,
달라진 행동으로 다르게 대하는 것이 너무 이상했죠. 어색했어요.
저는 어리둥절하게 받아들이며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만 했던 것 같아요.
십년 넘게 살던 곳을 정리하고 환경을 바꾸게 되면서
여태까지 내가 딛고 서 있던 발 밑이 보였어요.
십년이라는 시간이 적지는 않아서 꽤 쌓인게 많더라고요.
발 밑 조차도 안 보이는 냄새나고 더러운 수렁일 때도 있었고,
빠져나가려 할 수록 깊게 감겨들어가는 늪일때도 있었고,
누구나가 각자의 모습으로 걷고 뛰는 속에 속할 수 있었던 산책로기도 했고
일상에 햇볕을 쬐며 늘어질 수 있는 양지바른 잔디밭이기도 했죠
많은 곳 들을 딛어 왔더라고요.
그 바닥을 확인하는 건 사람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세상 사람들이 그랬어요.
인륜지대사에는 이유가 있다고. 사람이 걸러지고 새로 보인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 애써 끝을 미뤄두었던 인연들에게 마음에서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들 말하는 이유를 붙여서요.
스쳐 지나가는 시절 인연을,
나를 버리고 간 사람들을 잊지 못해 병까지 들어버린
그런 나를 이상하게만 보고
괴로운 마음을 토로하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 외치기를 언젠가부터 그만두고
누구도 이해해주지 않아 혼자서만 앓아야 했던 마음을
버렸어요.
내내 붙잡고 있던 마음을 놓기로 했습니다.
통용되는 이유라고 생각하니 아주 위로가 되더라고요. 예상외로.
이제 조만간 나에게도 납득이 되지 않을까요.
서 있는 자리의 힘은 생각보다 크더라고요.
난 변한 게 없고 그저 위치가 약간 바뀌었을 뿐인데
정말 달라 보였어요.
나는 변한 게 없는데 주변이, 세상이 나를 정말
다르게 인식하고, 전혀 다르게 대하더라고요.
그리고 가장 크게 변한 또 하나.
울 자리가 없네요. 슬프게도.
한숨으로 밖에 꺼내놓지 못하고 꽁꽁 묶어놓은 우울이를 풀어놓고 울 곳이 없어서,
참 난처합니다.
이제 변한 주변과 (아직 적응이 되진 않았지만)
변한 내가 일상이 되니 이전의 감정들이 나를 덮쳐왔습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 꺠달았는데, 나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었어요.
무엇을 하든, 그게 무엇이든, 시나브로 물들어가는 그런
적응도, 자각도, 판단도 많이 느린 사람이요.
감정 역시 마찬가지면 좋았겠건만, 이상하게도 사람에게는 그러지 못했어요.
첫눈에 까진 아니어도 생각보다 빨리 마음에 담고 상대방이 좋아지는 데에 비해,
너무 천천히 멀어졌어요.
그리고 애석하게도 한번 누군가를 마음에 담으면 쉽게 실망하거나 싫어하지 못하고, 잊지도 못했죠.
어디에서 만난 모든 인간관계에서 말예요.
친구든, 직장동료든, 상사든.
며칠을 만났든, 몇 달을, 몇 년을, 몇 해를 함께했던지와 상관없이.
마음에 든 사람이라면 나가지를 않아요.
사람은 나에게 해일처럼 다가와 썰물처럼 갑니다.
밀물처럼 와서 썰물처럼 나가던가,
태풍처럼 소멸하기까지 가는 길을 중계당하면서 와서 가던가
일관성이나 있으면 오죽 좋을까요.
왜 사람은 그렇지 못해서
왜 나는 이리 고통받는지.
복기해 보자니 새 환경에 덜덜 떨다 다짜고짜 운전대를 잡고 병원으로 밟았던 날,
나를 한 번에 알아본 간호사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안타까운 얼굴을 했었네요.
간호사 선생님들이 "장 원장님(담당 의사 선생님) 안 계세요"라고 한 순간 다른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고,
선생님이 그만뒀다고, 영원히 없다고, 그렇게 들렸어요.
분명 '안 계세요' 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바보가 아닌데도 말예요.
안 계세요ㅡ하는 소리만 메아리치듯 들려서 멍청히 있다가 보니 다시 목소리가 들렸어요.
"멘붕 오셨네", "진료 있는 날인지 확인 전화 한 번 주고 오시지" "하긴 바뀐 적이 없는데… 당연히 계시다고 생각했겠지." "저희 병원이 건물을 이전하게 되면서 그 때 진료일 조정을…" 조금씩 들려오는 목소리에
어느새 어룽져진 눈에 데스크 한쪽에 놓여있는 진료시간표가 보였어요.
몇 개월이나 오지 않았으니 선생님에게는 잊혔을 텐데.
왜 나는 이렇게.
진료 보시는 날 오겠다고 얘기하고 나가다가 굳이 다시 들어가 진료시간표를 찍어 나왔어요.
마음이 왜곡시켜버릴까봐 머리도 못 믿겠어서 내 눈에 보일 증거로 삼으려고요.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길게 신호가 걸릴 때마다 찍은 사진을 봤죠.
진료시간표와, 휴대폰에 등록되어 있는 전화번호부에 지정 즐겨찾기 되어있는 선생님의 이름, 카톡 메인에 즐겨찾기 되어있는 선생님의 얼굴까지. 선생님은 여기 계셔. 여기에. 여기에. 여기 있어. 몇 번이고 되뇌고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습니다.
지난 몇 개월이 잠시였을 뿐.
난 다시 결국 이 자리네요.
우울이는...
나를 떠나간 것이 아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