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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강 엔프피, 우울이와 정답게 살고 있습니다

이별한 줄 알았던 우울이와의 재회

by 는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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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치료의 시작





우울증 치료를 시작한 건 3년 전부터였어요.

우울한 나날은 늘 있어왔고, 불안에 떠는 것은 일상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일을 계기로 눈물이 멈추지 않아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고 나서야

병원에 가봐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집에서 출발해 병원에 도착해서 접수를 하고, 한 시간이 넘는 대시시간을 거쳐 진료실로 들어서도,

눈물을 그치지 못하는 저를 보고 의사 선생님께서 놀란 얼굴로 티슈를 건네던 그날이 생생합니다.


내 정확한 병명은 '불안성 우울장애'래요..

치료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일상을 찾는 일에 파묻혔어요.

상담을 하고 약을 쓰면서 그저 일상을 찾기에 바빴죠.

그저 일상을 살아내고 보기에 바빴어요.

그 틈으로 불안들과 우울들은 지치지 않고 나를 덮쳐

나는 하루를 겨우 일을 하고 나서 나머지 시간에는 늘 우는 것으로 보냈습니다.


다행히도 나는 일을 하려는 의지는 강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병원에 목돈이 들어갈 줄 알았거든요

선생님을 계속 봐야 하니까 진료비가 없어서 선생님을 보러 가지 못하는 일은 생기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통곡부터 흐느낌까지 참 많이도 울면서 다양한 증상들을 겪었어요.

폭음, 폭식, 무기력, 불면, 부작용, 자살충동, 자해…

이제는 많이 알려진 우울증의 여러 증상들을 장황하게도 겪어내며

불안과 우울 속을 헤매고 또 헤맸습니다..


그때 나는 내가 바다에 잠겨있다고 생각했었어요.

그저 그런 바다에 보트도, 튜브도, 부표조차 없이 맨 몸으로 잠겨서는

자유형 같은 최소한의 수영방법조차 모르고,

본능적인 개헤엄조차 못 쳐서 허우적 대는 거라고.


그렇지만,

제대로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이를테면

나는 아무도 없는 심해에 가라앉아 있었어요.

살아있는 생명체뿐만 아니라 그 어떤 것도 없이

바다와 나만이 존재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정신없이 더 깊은 심해로, 심해로 끝없이 가라앉았어요.


나는 몰랐지만 사실 오랫동안 가라앉아 있었고, 오히려 점점 내려가기만 했어요.

그리고 그랬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치료를 시작하며 그걸 대면하게 되자

맞는 약을 찾고, 부작용을 겪어내면서 나오는 또 다른 반응들에 대응하느라 바빴어요

.

얼추 맞는 약을 찾고 그로 인한 변수에 반응하는 것에 적응할 무렵에는

수면 위로 올라오려 버둥거리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힘들었고,

연필을 들 기운조차도 없어 기록할 생각을 못했었죠.


서울을 떠나 이사 가게 되었어요.

11년을 살던 오피스텔을 정리하고 새 집으로 갈 준비를 하며 이사가 하나의 변곡점이 되기를 바랐어요.

모든 슬픔이나 아픔, 안 좋았던 모든 기억을 다 놓고 가기로 했습니다.


3년간 병원을 다니며 나는 많이 좋아졌고 1주일에 한 번씩 꼬박 뵙던 선생님께 안녕을 고했어요.

하루라도 선생님을 못 보면 죽을 것 같았었는데, 이젠 일주일 이상은 버틸 수 있었어요.

약이 없으면 한 시도 일상생활을 할 수 없었는데, 약 없이도 하루 정도는 별일 없어 보일 만큼은 되었죠.


선생님은 좋아져 가서 기쁘다며, 분명 괜찮을 거라고 하시면서도

혹시 조금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 새로운 병원을 찾아야 할 테니 처방전을,

찾는데 시간이 걸릴 수도 있으니 한 달분의 약을 처방해 주겠다고 하며

좋은 상태가 지속되면 상비약처럼 조정해 가며 먹으라고 얘기해 주셨어요.


너무 산뜻하고 예쁜 이별이었어요.

정말 후련하고 기뻤습니다.

그치지도 못하고 내 마음과 상관없이 몇 시간씩 우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괜찮았어요.


그렇게 이별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날들을 시작하기로 했죠.

불안해서 약을 담은 파우치를 어디나 가지고 다녔지만,

그래도, 어딘가요. 이게.

안 먹어도 버틸 수 있을 만큼의 기분을 가진 나날이 지속됐어요.

'괜찮은 것 같아'지는 것만 같았죠.

이대로 새로운 병원을 찾지 않아도 될지 몰라.

병원에 가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몰라.

희망도 품었어요.



.

.

하지만 아니었어요.


5개월 만에 서울로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그 사이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던 진료 날이 바뀌었고 허탕을 쳤지만 다음 여유가 있는 날을 기약하지 못하고 월차를 내고 그다음 날 바로.

정말 목이 메도록 선생님이 너무 보고 싶었거든요




상담을 끝내고 약을 조정받아 받아왔어요.


약은 줄어들지 않았고, 한 달분을 처방해 주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선생님 외의 선생님은 만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병원을 알아보지 않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쿡 찌르듯이 말씀하셨어요. 지금 우리 관계가 정상처럼 보이냐고.

선생님도 이런 제가 보기 싫은가 봐요. 내가 좋아하면 꼭 이렇게 끝나고 말아요.

내가 이상해서, 그래서, 경과를 체크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 2주 분만받겠다고 했습니다.

약 없이 살 수 없을 거란 희망은, 보통사람들처럼- 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은

당분간은 버려야 할 것 같았어요.


나는 다시 아침저녁으로 약을 먹게 되겠죠.

... 그리고 일부러 찾지 않고 있었던 새 병원도 찾아야겠지.



다만 기록을 좀 해보기로 했어요

지난 3년간 내가 느낀 무엇들은 우울이를 견뎌내는 데에만 바빠서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요.

아무리 복기를 해봐도 굴절되고 왜곡되어 정확히 어땠는지 알 수가 없더라고요.

좋아진 건지, 나빠진 건지,

어느 것이 맞는지조차 알 수가 없어요.

이제는.


그러므로, 기록만이 증빙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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