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치마’의 hollywood를 듣다가

가을 조아름 2019 일곱 번째

by 피츠로이 Fitzroy


호주로 도망쳐 온 것이 너무 기뻤다.
내가 아는 사람들, 싫은 사람 힘든 사람 아픈 사람 그런데 버릴 수 없는 사람에게서 멀어지고 나니 비로소 내가 보였다. 남을 신경 쓰고 사느라 나를 돌보지 못했었다.
자유가, 그리고 매일이 너무 행복했다. 나를 좋아해 줄 사람도 나를 싫어할 사람도 없는 이곳이 사랑스러웠다.


마리화나를 권유하는 남자와 데이트를 하고, 펍에서 맥주를 마시다 키스를 하고, 그의 집에 가고, 그의 기타 연주를 들었다.
한국식당에서 비싼 소주를 사주고, 밤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를 찾아가 선물을 주고, 그의 전 여자 친구가 남기고 간 털모자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그의 기타 연주를 들었다.


그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항상 더 가 있었다. 학교를 잘 안 나갔고, 술을 더 많이 마셨고, 마리화나를 더 많이 폈다. 언젠가 나에게 자기는 그렇게 착한 사람이 아니라고도 했다.


그는 떠났고, 떠나는 이유를 내가 어딘가에 끄적인 글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처음으로 내가 쓴 글 때문에 누군가가 상처 받을 수 있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글 쓰기를 좋아하게 된 지금의 나에게도 무언가 쓰는 것을 주저하게 되는 강력한 이유가 되고 있다.


그의 자유분방함과 제멋대로인 행동과 우울한 기질은 그를 잠시나마 좋아했던 나에겐 큰 괴로움이었지만,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걸 찾아 이 먼 나라까지 왔는지도 모른다. 자유와 삐뚤어짐을 같은 거라고 착각했던 나의 29살에는.


그 때문에 ‘라디오 헤드’를 많이 들었다. 지금 ‘검정치마’를 듣는 데 그가 생각난다. 몽롱함이 그와 닮았네. 음악을 하고 싶지만 못했던 그와, 타락하고 싶지만 너무 겁이 많았던 나의, 유리막처럼 얇고 불완전했던 관계를 닮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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