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텅 빈 방

나의 텅 빈 방 안에 우두커니 서 있었을 당신을 조용히 떠올려 본다

by 나무늘보

내 나이 스물넷. 머리를 빡빡 밀고 느지막이 군인 아저씨가 되었다. 포병이었던 학 선배의 무용담, 치무병 친척동생의 군 병원 후일담, 소대장으로 복무했던 아빠의 분투기지 드문드문 들어온 이야기가 전부였던 '군대'라는 추상어가 위압적인 조교 앞에서 구체어로 변하는 순간, 머리가 아득해졌다. 배웅 아빠와 엄마, 매형의 얼굴과 표정, 함께 먹었던 음식, 내게 건넸을 말들은 어딘가로 날아가 버리고, 그저 유난히 맑았던 푸른 가을 하늘만이 기억 속에 남았다. 애써 더듬어 보아도 그날의 순간들은 쉬이 떠오르지 않는다. 낯섦에 대한 두려움과 긴장 탓이었는지, 누구든 해야 했고 또 누군가는 했던 일이니 당연한 일이라는 자기 암시 탓이었을까. 정신없이 이어지는 입소 절차에서 받았던 압박감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매형에게는 십여 년 전, 아빠에게는 사십여 년 전의 순간이었다. 그때 당신이 그랬듯, 나도 길쭉한 더플백 하나를 받아 들었다. 더플백도, 군복 색깔도, 조교 목소리도 당신의 그때와는 사뭇 다르지만, 스물 언저리 사내의 떨리는 마음만큼은 당신도 나와 같지 않았을까. 내가 누구이고, 여기가 어디인지 생각할 틈도 없이 분주한 신고식을 치렀다. 더플백을 앞으로 메고, 크게 벌린 입 속으로 보급품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내 것이라 부여받은 관물대 앞에서 첫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입소할 때 입고 온 옷가지와 신발을 박스 안에 차곡차곡 담았다. 검은색 유성매직으로 집주소를 또박또박 적었다. 익숙하게 써 내려간 주소를 무심코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문득 나도 박스처럼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올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박스 윗면의 검은색 글자처럼 깜깜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마지막 유서와도 같은 박스를 머리맡에 두고 첫 밤을 맞았다. 딱딱한 평상 위에 누워 잠들기 전까지 한동안 천장을 뚫어질 듯 바라보았다. 행여 뚫릴 리 없는 천장은 미동 없이 캄캄했고 또, 빈틈없이 막막했다.


첫날의 떨림도 잠시, 며칠 만에 적응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밥때 되면 심히 배고프고, 조교의 말 한마디에 온 신경이 곤두섰고, 아침이면 알람 없이도 눈이 절로 뜨였다. 그리고 주말이 오면, 편지의 주인을 찾는 이름들 속에 내 이름도 있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받은 한 통의 편지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당시 훈련소에서는 손편지와 더불어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오는 편지글도 인쇄해서 개별적으로 전달해주었다. 이십 평생 받아 본 적 없던 아빠의 편지를 받아 본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서너 장 되어 보이는 편지였고, 허연 공간에는 글자들이 빼곡히 들어 차 있었다.


"너의 텅 빈 방"으로 운을 뗀 편지의 문투는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무심한 듯 쓰인 글자 너머로, 거실에 놓인 컴퓨터 앞에 앉았을 아빠가 그려졌다. 손가락으로 키보드의 자음 하나 모음 하나 꾹꾹 누르고 있는 당신의 애씀이 보이는 듯했다. 꽤 시간이 흐른 지금, 아빠가 쓴 편지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다만, 텅 빈 내 방 문을 열고 들어가서 "네가 앉았던 의자에 앉아 보고", "네가 누웠던 침상을 한 번 쓸어 본다"로 기억되는 아빠의 고백을 어렴풋이 떠올려 본다.





내가 없는 방에 들어간 아빠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당신도 처음 느꼈을 미묘한 감정들이 차올랐을 것이고, 괜히 이곳저곳을 눈으로 손으로 쓰다듬다가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지 않았을까.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어떤 감정들을 조용히 삼킨 후에 내 방을 나왔을지 모른다. 또다시 북받치는 마음 둘 곳 없어 하릴없이 컴퓨터 앞에 앉는다. 끝내 말로는 풀지 못한 마음을 키보드 자판 앞에서 천천히 두드려 본다. 천천히 새겨지는 글자들은 흰 바탕에 고스란히 담긴다. "쓸쓸하고", "허전하다"라고 써 본다. 인쇄된 편지 위에 놓인 당신의 형용사가 낯설게 들어온다. 공연히 먹먹해진 나는 제 가슴 한 구석 텅 빈 방에 서 본다. 방문 틈으로 "쓸쓸"하고 "허전"한 바람이 천천히 스며든다. 컴퓨터 모니터에 아렴풋하게 비쳤을 아빠의 낯선 얼굴이 문득 궁금해진다.


얼마 못 가 연평도 포격이 있었다. 혹시 전쟁이 일어나는 건 아닌가 걱정되던 겨울이었다. 그 해에 나는 이등병이 되었다. 군기 바짝 든 막내의 하루하루는 덧없이 흘렀고, 이따금씩 떠올리던 내 방의 풍경마저 아득해지던 때에 첫 면회가 잡혔다. 수화기 너머의 엄마는 먹고 싶은 게 무엇인지 내게 물었고,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엄마의 된장찌개"라고 말했다. 그 흔한 피자도, 치킨도, 족발도, 햄버거도 아니고. 그 단어 하나만으로도 뱃속이 뜨끈해지는 것만 같았고 행복했다. 그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토요일 아침, 행정실 방송에서 내 이름이 불리었다. 설레는 마음 안고 내무실 밖으로 나왔다. 자연스럽게 내 시선은 먼 길 달려왔을 엄마와 아빠의 얼굴이 아닌, 당신의 손에 들린 것으로 향했다. 양손 가득 무겁게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그때 나를 보던 당신은 가장 먼저 무엇을 보았을까 상상해본다. 물어보나 마나 아들의 얼굴이지 않았을까, 아니면 가슴팍에 쓰인 아들의 이름이었을까, 혹여 상처라도 있을까 싶어 보았을 아들의 손이었을까. 어느 곳에 시선을 두었든지, 아들의 존재를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당신의 두 눈에 담았을 것이다. 어쩌면 선임이 다려 준 빳빳한 전투모와 군복으로 시선이 갔을지도 모른다. 제 몸에 맞지 않는 옷이 어딘가 어설픈 아들이 안쓰러워 걱정되는 마음에 속울음을 왈칵 쏟았던 건 아닐까. 아니면, 까맣게 탄 얼굴에 바짝 든 군기가 제법 군인 같아 보여 흐뭇한 기분이 들었을까.


테이블 위에 엄마 마음이 한가득 담긴 밥상이 놓였다. 엄마는 가져온 음식을 꺼내랴 이것저것 내게 물어보랴 바빴고, 아빠는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 이따금 내게 무엇을 묻기도 했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보온병에 담긴 따끈한 된장찌개 냄새와 보온 통에서 꺼낸 정갈한 밑반찬들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송송 썬 두부, 감자, 양파, 애호박, 팽이버섯, 표고버섯이 많이도 보이던 동그란 된장찌개의 얼굴은 아직도 내 마음에 진하게 남아 있다. 그때 그 모양과 맛 너머에 숨어버린 엄마와 아빠의 시간이 보이는 듯하다. 꼭두새벽부터 된장찌개를 끓이고 밑반찬을 담았을 엄마, 날 이것저것 고심하며 장을 보아주고 엄마 옆에서 이것저것 더 챙기라고 채근했을 아빠가 보인다.


된장찌개가 담 보온병의 온기는 아직 그대로인데, 면회시간은 금세 달아났다. 위병소를 벗어나는 엄마와 아빠를 향해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그 자리에 멈춰 선 나는 점점 멀어지는 뒷모습을 잠시나마 지켜보았다. 한동안 다시 보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자, 서늘한 기운이 내 가슴 한 구석 텅 빈 방으로 파고들었다. 언제 이렇게 당신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본 적이 있었을까. 내무반으로 되돌아 가는 발걸음이 내내 무거웠고,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당신의 뒷모습이 잔상처럼 남아 꽤 오랫동안 내 눈 앞에 아른거렸고, 그때마다 코끝이 시큰해지곤 했다.




박스 위 캄캄하게 쓰인 주소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왔고, 어느새 두 해가 지나 있었다. 선임이 사 준 전역모는 사이즈가 작아 머리에 걸친 채였고, 전역 마크를 박은 옷은 빳빳하게 주름이 잡혀 있었다. 누가 봐도 전역하는 군인이었고, 전역하는 누구든 걸었을 위병소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면회가 끝나고 막사로 돌아가기 싫어 한참 동안 서 있었던 그 자리는 어느새, 휴가 복귀하던 날에는 집보다 익숙한 부대로 느긋하게 걸어 들어가는 길로 변했다. 이제는 또 다른 낯선 기분으로 전역하는 누구나 멈추어 섰을 자리에 나도 섰고, 정든 막사와 연병장을 돌아보았다. 낯섦과 익숙함의 순간들이 뒤섞인 그 자리에서 나 또한 잠시 멈추어 섰다.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와 전역모를 벗었다. 낯선 공기가 흘렀고, 며칠 후에 다시 부대로 복귀해야 할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엄습했다. 정신을 차리고, 텅 빈 내 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정리왕 아빠의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이따금씩 내 방에 들어와 물건의 위치를 바꾸느라 분주한 모습이 그려졌다.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난 뒤 헛헛한 마음을 어찌할 줄 몰라 허둥댔을 아빠가 보이는 듯했다. 낯섦과 익숙함의 감정이 단순히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한 장의 사진, 그 사각 테두리 너머에는 늘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 카메라를 들던 누군가가 있었고, 사진을 찍는 그 옆에서 나와 누군가를 지켜보던 이도 있었을 것이다. 수많은 나의 첫 순간들을 누구보다 많이 보았을 사람, 누구보다 특별하게 담았을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빠였다.


나의 첫 순간을 지켜보는 아빠에게도 그 순간이 당신의 첫 순간이었을 것이다. 스물 언저리의 당신이 이미 경험한 군대일지라도, 그런 당신을 닮은 또 하나의 당신을 군대에 보내는 심정은 처음이었을 테니까. 누구보다 그 기분을 잘 알기에, 누구보다 나를 오랫동안 보아왔기에 느꼈을 '쓸쓸함' 아니면 '허전함'이었을까. 그저 나를 보내고 난 뒤, 나의 텅 빈 방 안에 우두커니 서 있었을 당신을 조용히 떠올려 본다.



그저 나를 보내고 난 뒤,
나의 텅 빈 방 안에 우두커니 서 있었을
당신을 조용히 떠올려 본다.




<아빠의 말풍선>, 여덟 번째 이야기




글 / 나무늘보
그림 / 조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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