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도 아빠의 안부는 부지런히 배달된다
여느 날처럼 퇴근길에 전화를 건다. 통화연결음이 두세 번 만에 끊기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퇴근하는 중인지 묻는 아빠의 첫인사. 수화기 너머로 보통 담담한 목소리가 들리지만, 때때로 조금씩 달라진다. 그 미세한 차이를 감지할 때면 아빠의 건강이 걱정되기도 하고, 엄마와 다투셨는지, 아니면 너무 오랜만에 전화했나 짐작해본다. 퇴근 중이라고 답하는 아들은 그다음 찾아올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곧장 식사하셨는지 묻는다. 아직 식사시간이 아닌 걸 알면서도 매번 같은 물음을 반복한다. 이제 곧 먹어야지, 너도 잘 챙겨 먹으라는 아빠의 자동반사적인 대답이 돌아온다. 그 이상의 덧말도 농담도 일체 없이. 종내 바닥난 말 항아리에서 더 이상 꺼낼 게 없자 멋쩍은 아빠는 서둘러 끊으려 한다.
아침에도 아빠의 안부는 부지런히 배달된다. 이른 아침, 아들이 눈 뜨기도 전에 도착하는 아빠의 카톡. 좋은 하루 보내라는 메시지에는 갖가지 이모티콘이 붙어 있다. 수화기로 전해지는 무표정한 아빠의 말소리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메시지. 발단은 아빠의 노인대학 스마트폰 수업 과제였다. 착실하게 과제를 수행한 학생의 첫 작품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무척이나 난감했다. 이제는 그것도 무뎌졌는지 아들은 태연하게 답을 보낸다. 더 이상의 물음도 대답도 없다. 그저 간밤에 별일 없었는지, 아침에 잘 일어났는지, 출근은 잘했는지, 아침은 잘 챙겨 먹었는지. 묻지 않아도 아침께 주고받은 한마디의 안부로 충분하다. 언제부터 시작된 지 기억나지 않는 아빠의 안부는 어느새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아빠가 사라졌다. 아빠가 집에 오지 않았다는 엄마의 연락을 받았다.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연락이 없었다. 전활 걸면 통화 연결음만이 이어졌다. 어느새 연결음마저 끊기고, 핸드폰이 꺼져 있다는 음성만 들렸다. 오전에 분명히 산책 나가신다고 했는데. 혹시 산책하다가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갑자기 쓰러지셨으면 어떡하지, 아니면 갑자기 친구와의 약속이 생긴 건가. 아빠의 안부가 너무도 궁금했다. 불안한 마음에 발만 동동 구르다가 점점 눈 앞이 캄캄해졌다. 아빠와 오전에 나눈 전화통화가 못내 마음에 걸렸다.
이번 주는 올라오는지 묻는 아빠의 말에 못 간다고 했다. 지방에서 일하느라 주말이 되어야 본가에 간다. 매번 올라가던 집에 한동안 가지 않았다. 매번 갈 때마다 반복되는 잔소리가 싫었고, 아빠와 함께 있어도 딱히 무엇을 하는 것도 아니어서 따분했다. 철없는 아들은 바쁜 일정을 핑계 대기 바빴다. 얼굴도 비치지 않는 아들에게 아빠는 서운하다고 말했다. 마주 앉아서 이야기할 시간이 없다고, 집에도 자주 안 오냐며. 그런 말을 하는 아빠가 생경해서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아빠는 먼저 전화를 끊었다.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아빠가 무사 귀가했다는 엄마의 메시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조금 먼 곳까지 산책을 다녀왔고, 핸드폰 배터리가 다 되어서 연락할 수 없었다고. 이유는 그것뿐이었으나 서운한 감정으로 깊게 그늘졌을 아빠의 얼굴이 그려졌다. 본인의 감정을 드러내는 게 익숙하지 않은 아빠였다. 갑자기 터져 나온 아빠의 서툰 감정이 마음에 걸렸고, 얹힌 듯 속이 답답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금요일 오후 반차를 내고, 집으로 향했다. 엄마가 부산 이모 집에 놀러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혼자 저녁 먹을 아빠가 떠올랐다. 오랜만에 아빠와 단둘이 밥 먹기로 마음먹고 새해 첫 휴가를 냈다. 한 겨울인데 여름 모자를 쓰고 다니는 아빠가 생각났다. 집으로 가는 길에 겨울 모자 하나를 골랐다. 아빠는 요 앞에 새로 생긴 감자탕 집에 가자 했다. 가격표를 방금 뗀 겨울 모자를 쓴 아빠와 아들이 집 문을 나섰다.
언제부터인지 아빠는 서운하다, 미안하다는 말을 종종 한다. 안으로 꼭꼭 숨기기 바빠 도통 알 수 없던 아빠의 마음이 조금씩 삐져나온다. 마주 앉아 감자탕을 먹은 이후에도 집에 가는 날은 여전히 손에 꼽는다. 그럼에도 아침과 저녁의 안부는 꼬박꼬박 묻는다. 물론 아빠의 화려한 이모티콘, 자동반사적인 물음과 대답, 금세 바닥나는 말항아리는 여전하다.
퇴근하는 차 안에서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 너머로 익숙한 집 안의 풍경이 그려졌다. 시끌벅적한 티브이 소리가 흐르고, 부지런히 뛰노는 조카의 발소리가 울리고, 저 멀리 부엌에서 툭탁대는 소리가 들린다. 언젠가부터 엄마는 두 살배기 조카에게 전화기를 건넸다. 전화기를 주지 않으면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삼촌 목소리가 들리자 조카는 울음을 뚝 그치고 혼자 신나서 웅얼웅얼 댔다. 대화가 통할리 없는 조카에게 삼촌은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삼촌이야, 오늘은 즐겁게 놀았니, 삼촌도 잘 보내고 이제 퇴근하는 길이야, 배고프진 않니, 아픈 덴 없지, 할머니랑 뭐 하고 놀았어,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해주었니, 낮잠은 잘 잤겠지, 엄마는 언제 오신대. 알아듣지 못해도 좋다. 뻔한 대답이어도 괜찮다. 서로의 안녕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것이 안부일까. 그것이 책임감일 수도, 사랑일 수도, 배려일 수도 있겠다 싶다.
뻔한 대답이어도 괜찮다.
서로의 안녕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것이 안부일까.
그것이 책임감일 수도, 사랑일 수도, 배려일 수도 있겠다 싶다.
<아빠의 말풍선>, 일곱 번째 이야기
글 / 나무늘보
그림 / 조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