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주차_상쾌한 기운을 당신의 두 손에
지난 주말 행복했던 "I"의 모임이 있었고, 시간은 순식간에 점프하여 월요일이 되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일이 역시나 어색한 아침. 선물 받은 맛다시로 양껏 비벼놓고 남겨둔 비빔밥 한 그릇을 꺼내고.
비빔밥을 살짝 데우고, 도가니탕도 푹 끓여지도록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명이나물장아찌와 어묵볶음과 배추김치를 꺼내고, 사과 한쪽을 깎아 내고, 오렌지주스도 하나 꺼냈다.
잔뜩 흐린 하늘 아래 서둘러 출근하는데 손수건 깜빡한 게 생각나고.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고,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흐르는 오늘 아침. 긴팔 소매를 걷어붙이고 오늘도 오늘의 기록을 남겨 본다.(22.06.13)
어제는 본가에서 가구 버리는 일을 도와드렸다. 무조건 버리자는 아빠와 이걸 왜 버리냐는 엄마 사이에 팽팽한 신경전이 있었고, 땀 흘리며 둘 사이를 오가며 중재해야 했다. 중국음식을 사이좋게 나눠 먹으며 마무리했다. 문 앞까지 나와 고맙다며 손 흔드는 엄마에게 나도 손 인사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엄마에게 잔소리를 너무 늘어놓은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고. 다음엔 조금 줄여야지 생각하던 밤이 지나고, 또다시 찾아온 아침에.
강낭콩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냉장고에 해동시킨 치킨수프를 데우고, 명이나물장아찌와 어묵볶음과 배추김치를 꺼내고, 그릭요거트 하나와 아몬드우유를 준비했다.
오늘따라 하늘도 나무도 더욱 푸르게 보이는 아침. 전엔 몰랐던 동네목욕탕이 집 가까이에 있단 걸 알게 되고, 오늘은 깨끗하다고 말하는 미세먼지 신호등도 발견하고, 지하철 안에 큰 무대 공간이 있는 것도 보았다. 그동안 잘 안다고 생각했던 출근길이었는데 너무 앞만 보고 걸었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 아마도 분주하던 내 마음에 한 스푼의 여유가 생겼나 싶고.(22.06.14)
어제는 평소보다 일찍 잠들었고, 역시나 평소보다 이른 아침에 눈이 뜨였다. 그동안 몸을 조금은 혹사시켰나 싶으면서도 다시 돌아온 일상의 리듬에 안정감을 느끼며 주방으로 가서.
차돌깍두기볶음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훈제오리 한 팩을 데우고, 배추김치와 깻잎장아찌와 명이나물장아찌를 꺼내고, 유리잔에 아몬드우유를 따랐다.
비가 올 줄 알아서 우산을 챙겼으나 막상 밖에 나오니 비가 오지 않고. 허나 몇 걸음 못 가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에 얼른 우산을 펴고. 오랜만에 내리는 비를 보니 속이 시원한 아침의 출근길.(22.06.15)
이번 주부터 마음먹고 점심 운동을 시작했고, 저녁에는 집에서 운동하기로 했으나 집에 오자마자 씻고 밥 먹고 곧장 누워버리는 나를 보고는 아, 한결같은 사람.. 잠깐 잠들었다가 일어나 설거지를 하고, 빨래 널고 제대로 눕고 나니 순식간에 아침이 오고.
어제 안친 밥을 그릇에 담고, 콩비지찌개를 한소끔 끓여 내고, 오이소박이와 명이나물장아찌와 배추김치와 김을 꺼내고, 아몬드우유를 컵에 따랐다.
자도 자도 피곤한 요즘. 몸이 건강해야 조금을 자도 피로가 풀린다는데 몸 여기저기에 나타난 이상신호가 느껴지고. 이제는 하나씩 꺼야 하는데, 아직은 생각만 하고 있다. 오늘부터는 조금 더 몸을 움직여 보기로 다짐해보는 비 오는 출근길.(22.06.16)
어제는 오랜만에 대학 친구를 만났고, 소주 없이 곱창을 먹고, 2차로 커피를 마시면서도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부쩍 성숙해진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나 스스로도 많이 달라졌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물론 급격히 체중이 불어난 게 가장 큰 변화였지만. 그리고 아침밥 먹는 생활이 익숙해진 것도 큰 변화였고, 오늘도 나는 냉장고 문을 열고.
냉동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어제 반절 남겨둔 콩비지찌개를 데우고, 비엔나소시지와 오이소박이와 배추김치를 꺼내고, 아몬드우유도 컵에 따랐다.
어느새 이번 달 기록모임 마지막 기록의 시간이 되었다. 즐겁게 기록을 하던 마음에서 어느 순간에는 형식적으로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쌓인 기록들은 성실하게 피드를 채웠고 또 일상의 그라데이션을 만들었다. 덧없이 흐르는 시간을 붙잡아 두고 평소엔 몰랐던 나의 색깔을 점점 진하게 만들었고, 어떤 부분은 점차 옅어지게 했다. 기록모임은 오늘 부로 잠시 안녕을 고하지만, 오프모임에서의 반가운 만남은 조금은 무뎌진 내 마음을 부드럽게 했고 첫 마음을 다시금 불러일으켰다. 이제는 혼자 애써보다가 게을러지는 순간이 오면 지체 없이 다시 찾아올 곳이 있어 든든하다.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샘솟는 이 아침, 하늘은 잔뜩 흐리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어 상쾌한 기운을 당신의 두 손에.(22.06.17)
그동안 잘 안다고 생각했던
출근길이었는데
너무 앞만 보고 걸었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
아마도 분주하던
내 마음에
한 스푼의 여유가 생겼나 싶고.
글, 사진 / 나무늘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