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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티피컬레이디 Oct 14. 2022

이혼율 80% 아스퍼거 결혼, 아스퍼거 커플의 어려움

 앞선 글에서 고기능 자폐스펙트럼, 아스퍼거 증후군의 핵심적인 특징으로 '마음이론'의 결핍, Mind-blindness, 거울 뉴런의 비활성화를 이야기했습니다. 지능이나 다른 발달에서도 많이 기능이 떨어지는 중증 자폐와 달리, 고기능 자폐스펙트럼, 아스퍼거 증후군의 경우에는 지능이 평균 이상이기 때문에 '고기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고기능'이라는 표현 때문에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사람들은 천재처럼 지능이 뛰어난 것처럼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특정 분야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아스퍼거들도 있지만 모든 경우에 해당 되는 것은 아니고, '고기능'이라는 말은 사회적 발달을 제외한 다른 부분에서는 자폐스펙트럼 선상에서 볼 때 상위에 있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들은 학습된 사회적 적응 기술들을 통해 성인이 된 이후에는 좀 특이하고 사회성이 떨어지는 면이 있나 싶지만, 단순히 내성적이거나 순진하게 보일 수 있을 뿐, 자폐나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이라고까지 비치지는 않습니다. 특히 지금 성인인 아스피들의 경우, 성장 과정에서 본인의 상태에 대해서 진단을 받고 파악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아스퍼거는 1994년이 되어서야 미국에서 진단 기준이 세워지고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본인이나 가족들도 성격이 특이하다, 고집이 세다, 자기중심적이다 정도로만 생각을 할 뿐 발달장애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는 성격이나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뇌신경학적인 발달의 문제입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 개인의 차는 있을지언정, 본질적으로 상대방의 입장, 자신과 타인의 감정과 정서적 필요를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전형적으로 발달이 된 뇌를 가진 사람이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능력, 즉, 자신과 타인의 감정이나 필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상대방에게 공감을 하기 위한 뇌의 특정 부분이 충분히 발달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뉴로다이버스 커플에서 정형인 연인이나 배우자에게 이는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장기적이고 친밀한 관계는 서로 간의 정신적 교감과 공감, 이해를 본질적인 요소로 합니다. 하지만, 그 본질적인 부분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관계를 점점 성숙하게 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뇌신경학적으로 발달에 문제가 없는 두 사람이 만난다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 문제들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관계가 지속되지 못하는 경우는 슬프지만 흔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실상 성인 아스피의 정신적인 성숙도는 개인차는 있겠지만 정형인 배우자에 비해서 훨씬 뒤쳐져 있습니다. 


 사회 생활이 가능한 수준이면 연인이나 배우자와의 관계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일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분이라면요. 하지만 우리는 직장 동료들과 휴식 시간에 커피를 마시며 나누는 잡담에서 상대방의 진심어린 공감을 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십 대시절대 여러 명이 어울리던 집단에서의 우정은 같이 스티커 사진을 찍고, 학원을 가고 노래방을 가고, 게임을 하는 등 동년배 간의 어울림의 의미가 큽니다. 그중 아주 가까워지는 몇몇을 제외한다면 그룹의 모든 친구들에게 내 마음 속 깊은 내면의 상처나 생각에 대한 공감을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연인이나 배우자에게 우리가 기대하는 바는 다릅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고 완벽하지 않은 나와 상대방의 모습 모두를 포용하는 관계에서 진정으로 사랑을 주고 받는다고 느낍니다. 그러한 관계에서 살아갈 힘을 얻고 강해지고 성숙해지는 것이죠. 하지만 사실상 아스피 배우자 혹은 연인에게서 이러한 기대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아스피들도 인간 관계나 사랑에 대한 필요와 욕구가 있습니다. 하지만 정형인에 비해 그에 대한 욕구의 정도, 인식과 성숙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깊어지는 관계에 대해 같은 선상에서 이해하고 느끼기 어려운 것이지요. 


 그래서 뉴로 다이버스 관계가 진정한 공감과 소통을 결여하고 있는 경우에도 정형이 배우자에 비해 둘 사이의 관계의 문제들에 대해  불만을 느끼지 않고 문제의식도 느끼지  경우가 많습니다오히려 아스피는 깊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에서 많은 피로와 부담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감정을 나누는 대화를 하거나, 상대방에게 공감해 주어야 하는 상황에서 불편함과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을 훨씬 많이 필요로 하고 정형인 배우자가 원하는 만큼 많은 것들을 함께 하려 하지 않으며 관계를 성숙하게 발전하는 것에 큰 흥미를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공감과 소통에 대한 어려움과 온도 차이. 뉴로다이버스 커플이 마주하는 어려움은 너무나 본질적입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뉴로다이버스 부부 즉, 아스퍼거 결혼의 80%가 이혼을 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뉴로 다이버스 커플은 두 사람의 사이의 문제의 원인이 한 쪽 배우자의 뇌신경학적인 발달장애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현재 성인이 된 세대가 어린 시절에는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한 인식이 없었고, 그러한 개념을 알지 못하고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소통과 대화가 불가능한데 원인을 알지 못하니 갈등은 점점 더 깊어지고, 일반적인 부부/커플 상담은 뉴로다이버스 커플에게는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정형인들 사이의 소통방식은 뉴로다이버스 커플에게는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죠. 뉴로다이버스 커플 특유의 문제와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이해가 있는 전문가만이 도움이 되는 조언과 상담을 제공할 수 있지만, 문제는 많은 커플들이 원인도 정확히 파악을 못 하는 경우가 많고, 설령 알게 되어 진단을 받는다고 해도 도움을 구할 전문가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비극의 원인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선택해서 아스피 또는 정형인으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의 필요와 욕구는 모두 존중받아야 합니다. 수많은 자료들과 연구들은 자폐 스펙트럼의 특징에 대해, 그리고 그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해주어야 할지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정형인 배우자가 상대방의 다름을 이해하고 포용하기 위한 방법들을 제시합니다. 정형인의 기준에 맞춰진 사회 환경에서 정형인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적용되지 않는 소수인 아스피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을 맞습니다. 그래야 그들을 오해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스피 배우자의 다름이 존중받아야 하고, 그의 필요가 충족되어야 하는 것만큼, 정형인 배우자의 정서적 필요와 다름(자폐 스펙트럼과 비교하여 다르다는 의미에서) 역시 존중받아야 마땅합니다. 사회 일반적으로 볼 때 아스피들은 소수이고 이해 받아야 할 존재이지만, 두 사람 사이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이러한 역학 관계가 그대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마음이론이 없는 아스피의 경우, 상대방의 필요와 욕구에 대해 자연스러운 파악이 어렵고 서로 존중과 배려가 기본이 되어야 하는 연인, 부부 관계에서 아스피가 생각하는 존중과 배려는 정형인이 생각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스피 배우자는 악의 없이 자신의 기준대로 상대방을 대하는 것이지만 정형인 배우자는 충분히 공감, 존중, 사랑, 배려 받지 못하고, 정서적인 교류도 부족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 그 발달 장애의 핵심인 아스피 배우자가 이러한 정형인 배우자들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것은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나아가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학계와 전문가분들은 실제 관계에서 정형인 배우자가 이미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에너지를 쏟고 있는지를 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를 더 할 기회가 있겠지만,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사람과 결혼하는 정형인 배우자는 공감 능력과 상대방을 보살피는 성향이 평균 이상인 경우가 많습니다. 정형인 배우자는 이렇게 불균형한 관계를 바로잡기 위해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너무나 많은 힘을 쏟지만 그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함으로 인해 우울증, 불안, 번아웃 증후군 등 수많은 정신적 아픔을 겪게 됩니다. 


 반면, 아스피 배우자는 상대적으로 덜 영향을 받으며 큰 타격 없이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형인 배우자들이 겪게 되는 트라우마와 우울증공황장애불안 등을 비롯한 모든 정신적 상처에 대한 논의,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마땅히 받아야 하는 도움들에 대한 연구와 논의는 여전히 아쉬운 수준입니다. 제가 사는 호주는 국민들의 정신 건강과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더 선진화되었다 할 수 있지만, 실질적인 지원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가령, 제가 개인적으로 우울증을 겪고 있다면 일 년에 10회까지 개인 상담에 대한 지원금(영주권자와 시민권자 대상)은 가능하지만, 커플 상담은 이러한 혜택이 없습니다.  배우자가 고기능 자폐로 진단을 받는 경우 그 가족 구성원에 대한 추가적인 지원이나 혜택도 전무한 상황입니다.

 국내에서는 사실 성인 아스퍼거에 대한 인식도 상대적으로 낮고 뉴로다이버스 커플, 그리고 나아가 가족구성원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나 알려진 바가 별로 없는 실정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최근에는 아스퍼거 남편/부인을 둔 배우자들의 온라인 모임도 있고,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할 공간들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정보나 자료가 부족하고, 나아가 실질적인 도움이나 지원도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요. 전문적으로 뉴로다이버스 커플의 상담이 가능한 상담사도 (조심스럽지만) 많지 않으리라 추측해 봅니다. 추후에 뉴로 다이버스 커플에게 일반적인 결혼상담이 어떻게 독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제 경험과 함께 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 스스로도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해외 자료들에서도 실제로 아스퍼거 결혼을 '계란판 위를 걷는 것 같다 (walking on eggshells)'고 표현을 합니다) 결혼 생활을 아직 유지하고 있고 그 결론에 대해서는 아직도 정확한 답을 찾아가고 있는 과정에 있습니다. 특히 국내의 경우, 원인도 모르고 해결되지 않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이 더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더 많이 제 개인적인 경험과 스스로 공부하면서 알게 된 정보와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해외 자료들을 좀 더 이 공간을 통해 공유하고 뉴로다이버스 커플에 대한 인식 고양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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