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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May 30. 2022

사람들의 시선은 언제나 위로 향해 있다

feat. climbing




아이들에게는 오름 본능이 있다. 사진마다 소파의 맨 꼭대기에 앉아 있고, 침대 머리맡에 올라가고, 계단장을 올라가기 일쑤이며, 2층 침대를 사랑하고, 언덕이 보이면 뛰어 올라가 본다. 오르기 본능이라는 게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문 타기를 하는 아이들도 있고 하여간 올라가는 것을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클라임 파크라는 곳에 가보았다. 가건물 같은 곳에 있는 다소 허름한 곳이었지만 아이들 놀기에 최적의 공간이었다. 자, 지금부터 원 없이 올라가거라!



이미지 출처 : pixabay



대부분의 아이들이 오르기 욕구가 있듯 어른들의 시선도 대부분은 위를 향한다고 느낀다. 자기와 유사한 환경의 사람들을 보면서 본인이 부족한 것에 주로 시선을 두기 마련이다. 나보다 못한 것을 보며 자기만족에 빠지는 일보다는 나보다 잘난 것을 보면서 자괴감에 빠지는 일이 더 흔한 것 같다.

 



가방을 예로 들어 보자. 대학생이 되었더니 너도 나도 엠씨엠 빈폴 등의 가방을 메고 다닌다. 그래서 쌈지를 메고 다니던 그녀도 빈폴을 하나 마련했다 치자. 그런데 한두   프라다를 메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그러면 일반적인 아이들이 사용하는 가방을 가지고 있지만 이제는 성에 차지 않는다. 프라다가 갖고 싶어 진다. 그리고 그것을 가진 소수의 아이들만 쏙쏙 눈에 들어오게 되고 급기야 나만 빼고  가지고 있는 가방 같아져 버린다.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 되어버렸다.


알바를 열심히 해서 돈을 모았다. 드디어 그녀에게도 프라다 면가방이 생겼다. 하지만 루이비통과 구찌를 가죽으로 들고 다니는 몇 명이 보인다? 예뻐 보인다. 자기만 없는 그 가방이 가지고 싶다. 자신의 가방이 보잘것없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구찌와 루이뷔통을 향한 WANT는 쉬이 없어지질 않는다. 생일과 기념일을 빌미로 남자 친구에게 선물을 받아낸다. 차를 가진 남자 친구를 사귀는 것은 기동성 면에서 편리할 뿐만 아니라 금전적으로도 유리하다. 허영은 날이 갈수록 커져간다.


직장을 구하고 사회인이 된다. 버는 수입은 얼마 없는데 이제는 샤넬이나 에르메스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대학생 때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존재조차 당시에는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고 넘을 수 없는 벽을 허물 시도조차 못했을 것이다.


몇만 원에 만족할 수 있었던 것은 몇 만이 쉬이 느껴질 때쯤 몇십이 되고, 이내 곧 몇 백이 되고, 몇 천이 되어간다. 사람들은 높은 곳만 자꾸 바라보며 나만 없다는 결핍을 느끼고 만족을 하지 못하며 쉬이 불행을 느끼게 된다. 어디 가방뿐이랴, 목걸이도 팔찌도 옷도 마찬가지다. 물질로는 결코 충분한 만족감을 느낄 수 없다.




예시는 차고 넘친다. 집을 예로 들어보자. 둘이서 사는 신혼집, 20평이면 엄청 넓다. 점점 물건이 들어차면서 아이가 생기고 집이 점점 좁게 느껴지면서 국민 평수 30평은 되어야지 생각한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국평 아파트를 샀다. 이내 아이는 둘이 되고 40평은 되어야 발 디딜 틈이 생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집이 답답해 보이고 더 나은 집, 더 넓은 집, 더 신축인 집을 찾아 헤매게 된다. 그렇게 자꾸 높은 곳을 바라보며 일에 매진한다. 2억이면 행복할 수 있었는데 행복의 기준은 4억이 되고 10억이 되고 20억이 된다. 많이 벌어야 해! 많이 빌려서라도 가져야 해! 그렇게 행복은 점차 멀어져 간다. 점점~


이미지 출처 : pixabay



차도 마찬가지다. 경차 하나로도 충분히 행복했던 사회 초년생은 대리가 되고 과장이 되고 차장이 되면서 더 좋은 차로 갈아탄다. 차가, 사람의 직위를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 외제차를 사고 더 비싼 차를 원한다. 이제 더는 더 좋은 것을 찾기 어렵지 않을까 싶은 순간에도 더 비싸고 더 높은 무엇인가는 존재하기 마련이고 끝없이 더 높은 것을 원하게 된다.


따라서 물질적인 것에 ‘이걸 가지면 행복해질 거야’ 따위의 생각은 접는 것이 낫다. 내가 현재 가진 것으로도 행복할 수 없다면 다른 그 어떤 것으로도 만족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가지는 순간 찰나의 기쁨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궁극의 만족은 느낄 수 없다.


환경도 마찬가지다. 집단에 따라 대단함의 정도는 달라진다. 누군가에게는 나 역시 대단한 알파걸이지만 일부 집단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기도 하다. 예를 들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봤을 때 내가 그림을 좀 그린다 치자. 하지만 그림 관련 인스타그램 피드만 봐도 내 그림은 하찮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당장 때려치우고 그만둬야 할까? 저 높은 곳을 향해 내가 갈 수 없다면 지금 당장 꿈을 접으면 되는 걸까? 그렇지 않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내게 맞게 발전해 나가면 된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고 자꾸만 높은 곳만 바라보며 그것을 목표로만 삼으면 끝없이 새로운 높은 곳이 나타나므로 결코 만족할 수 없게 된다. 어제의 나보다 나은 오늘의 나를 보며 그 성장에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나만의 과녁판을 만들고 그 과녁판에 집중해서 화살을 쏴야지, 애먼 남의 과녁판에 계속해서 쏘아봐야 내 점수는 올라가지 않는다. 목표를 세우고, 물질적인 것에 목표를 세우는 것이 아닌, 성장의 과정에 집중을 하자. 이것이 바로 아이들과 함께 클라이밍을 하면서 든 나의 생각의 결말이다. (반도 못 올라간 내 저질 체력은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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