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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May 27. 2022

혹시 당근이세요?

질문해도 나는 몰라

혹시 당근.. 맞나요?
아 네! 이 물건 맞으시죠?
네네, 그런데 이거 언제 사신 건가요?
아 저는 잘.. 와이프가 시켜서 나온 거라..
아 그러시군요, 저도 아내가..
(동질감의 눈빛을 주고받음)



아이가 지금은 다섯 살이 되었지만, 더 어렸을 때는 정말 많은 물건을 팔아치웠다. 미니멀리즘을 외치며 집에 있은 장난감, 책, 물품을 시기가 지났다 하면 잽싸게 팔아버리고는 하였는데, 급기야 새 물건을 살 때에도 중고나라나 당근 마켓에 그 물건을 검색해보고 어느 정도 가격선에서 팔리는지를 검색해보고는 새 물건의 가격 적정선을 보는 게 아니라 나중에 팔았을 때의 차액을 보고 물건을 살 지경이었다. 전공의 시절 같았으면 10만 원 이상 장난감 류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면, 둘째 때는 30만 원쯤 하는 용품이라도 15만 원에 되팔 수 있다면 그 가격을 15만 원이라고 단단히 착각하고 사는 것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한 번은 남편이 그랬다. 넌 물건을 어째 팔기 위해 사는 것 같다? 첫째 때 눈여겨봤지만 비싸서 마음속 깊숙이 숨겨 놓았던 그런 것들을 둘째 때 원 없이 사버리면서 최소한의 마음을 위안을 얻고자 합리화해왔다. 조금 비싸지만 나중에 다시 팔면 되지! 조금이라도 아이들이 시들해 질라 치면 이때다 하고 되팔아버리기 일쑤고, 일 년이 채 되지 않아 팔아치우는 부인을 보면서 도대체 이걸 왜 산건가 싶었을 것이다. 심지어 본인이 보기에는 아직까지 애들이 잘 가지고 노는 데 말이다! (항상 부인의 시각과 남편들의 시각은 관점 자체가 다른 것 같다.)


2년 전 최초 당근의 시작은 디데이 달력과 성장 카드였다. 이게 참, 있으면 가끔 사진 찍을 때 좋은데 없으면 또 아쉽고 사려니 왠지 좀 아까운, 그런 종류의 것이었는데 둘째 때는 그냥 샀다. 그러고 나서 200일이 지나자 별로 쓸 일도 없고 해서 거의 새것과 같은 상태로 버리자니 아깝고 공짜로 하자니 연락이 귀찮고 2천 원에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주자 싶어 올렸던 것인데, 역시나 내가 필요 없어진 뭔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존재했다. 기왕이면 기분 좋으시라고 이것저것 가격 상관 않고 관련 물건들을 함께 담아다가 내려놨다. 보통 출근길에 내어 놓고 비대면 거래를 주로 했다. 사기당하면 그냥 준 셈 치자 싶었다. 2년 동안 딱 한 번 까먹고 입금을 하지 않던 사람이 있었고, (그분도 죄송해하면서 다음 날 바로 입금을 해주셨다.)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물건을 나에게 판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사실 그건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산 나의 불찰이었다.


한창 당근 마켓에 빠져 있던 시절, 마음에 안 드는 굵직한 물건들을 다 팔아치우고 새 물건으로 온 집안을 도배했다. 또 팔면 되지 싶었다. 사고팔고 사고팔고를 반복하는데 물건은 줄어들지를 않는다. 자꾸 또 샀기 때문이겠지. 한참을 그렇게 사고팔기를 반복하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한 끝에 아이들이 제법 크고 나서야, 요즘에는 사고 팔일이 별로 없어졌다. (오늘 이케아 리클라이너를 팔아치운 건 비밀.) 쉿! 어차피 나 빼고 다 몰라. (말이 돼?)




언젠가 당근 마켓에 아이의 버버리 퀼팅 패딩을 싸게 올린 적이 있다.  해만 입긴 했지만, 사촌 언니부터 언니까지 입었던 거라 다소 사용감이 보여  딴에는 기존 가격 대비 정말 말도  되게 싸게 올렸다. 비대면 거래였지만, 분명 물건 확인  금액 입금하고 가져갔는데, 나중에 이염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고지하지 않았으니 환불해달라 그런다. 황당했다. 다시 돌려받고  올리고 약속 잡고  것을 생각하니 골치가 아파진다. 세탁비며 원래 가격을 생각하면 조금 아깝지만 그냥 줘버리고 내가  받는  나을  같다. 환불은 해줄게, 물건은 그냥  . 오기로 뱉은 말인데 속은 쓰렸다.  돈이면 애들 과자를 사줘도  번은 기분 좋을  있었는데 돈을 바닥에 패대기친 느낌이다. 비싼 물건 꽁으로 받고 본인도 기분이 나빴는지, 후기를 나쁘게 작성한  같았다. 그날 이후  화려한 프로필의 재거래희망률 100% 99% 낮아졌다. , 때문에, 내가 황당한 일을 겪었는데  평가가 까여야 했을까. 이후로는 거의 아이 옷은 팔지 않고 지인들에게 나눠준  같다.  상해버린 기분과, 약속 잡느라 소모한 에너지와, 물건에 트집 잡힐까 전전긍긍하는  조마조마한 마음까지 생각하면 그깟  푼으로  일이 아니었다. 기분 좋은 거래도 많았지만,   번의 거래로, 나의  당근 마켓은 (임시) 종결되었다.


당근 거래 썰을 검색 해보니 정말 다양하고 재밌는 게 많다. 한 여자가 지갑을 잃어버리고 지갑 찾아주신 분께 사례하겠다고 글을 올렸는데 어떤 사람에게 연락이 와서 대화를 나눴다. 심지어 같은 아파트에 있단다. 너무너무 감사해하며 어떻게 사례할까 했더니 맥주 3캔이면 된다네? 기쁜 마음에 설레발치는데 사진 한 장이 올라온다. 지갑을 들고 웃고 있는 아빠 사진이다. "딸, 집으로 와~" 사람들이 정말 재치 있다. 웃긴 이야기도, 황당한 이야기도, 진상 이야기도 많았지만 왠지 이 이야기가 제일 기억에 남았다.


가끔 낯선 동네에 길을 들어서면 남편이 문득 어, 전에 여기 당근 거래했던 곳 같은데! 한다. 한때 얼마나 많이 다녔으면 이 동네 저 동네 주차장 구조를 모두 파악하고 있는 남편이었다. 한국에 살면서 당근이세요?를 말해본 남편들이여, 칭찬합니다. 오늘도 지역 마켓의 활성화를 위해 제 한 몸 희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근 관계자 아닙니다.)


추신. 도대체 매너 온도 99도는 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 (브런치 구독자 1만 명은 도대체 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 와 비슷한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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