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스트레스 관리
나는 아이가 마냥 놀고 싶어 하면 놀리는 것이 좋은 줄 알았다. 그런데 마냥 놀기만 하면 그 노는 것이 좋은 줄을 모르더라? 우리가 주중에 일을 하니까 주말에 노는 게 신이 나듯이, 아이들도 짜인 일정과 루틴이 있어야 휴식과 놀이 시간이 주어졌을 때 신날 수 있다. 루틴 없이 마냥 놀기만 하면, 본의 아니게 루틴이 생기거나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 스트레스가 오히려 커지는 듯했다. 그제야 나는 아이라고 해서 마냥 놀리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겠구나, 노는 데에도 완급 조절이 필요하겠구나 생각했다. 연애할 때도 하지 않았던 밀당을, 아이 놀이에 해야 하다니.
아이가 별생각 없을 때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끌어다가 이것저것 시켜버려야 한다는 엄마들이 있다. 어차피 결국은 스스로 싫다고 안 할 날이 올 테니, 군소리 안 할 때 일단 쑤셔 넣어 역량을 가늠해 보는 것이다. 하지만 스트레스 관리는 필수다. 중간중간 즐거운 요소들을 집어넣어 지루하지 않게 힘들지 않게 이끌어 가는 것이 엄마의 완급 조절력이며 밀당의 귀재로 거듭나야 아이는 멋도 모르고 즐겁게 (공부인 줄 미처 모른 채) 공부를 지속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완급 조절에 미숙한 인간이 바로 나라는 생각을 했다.
경험으로 비추어, 아이는 신나게 여행 다녀와서 원 없이 놀고 오면, 일기 쓰기나 학교 숙제를 하는데 징징대지 않고 비교적 수월하게, 빠른 속도로 해낸다. 하지만 월화 지나 수요일쯤 되면 저도 지치는지, 간단한 숙제 하나 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고 결국에는 누구 하나 성질이 나야 비로소 끝난다. 내 입은 '빨리!'라는 말을 백 번쯤 쏟아내고 눈에는 화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와중에, 아이의 눈에는 잠이 쏟아지고, 글씨는 개발새발, 실수 투성에, 집중력은 제로다. 안 하느니만 못하다. 아이의 컨디션에 맞춰서 적당히 과제를 교묘하게 수행케 하는 기술이 없어서 항상 나는 힘이 든다.
다른 집 엄마들은 어찌나 잘하는지.(비교는 금물인데!) 아이의 컨디션을 봐가며 영어 수학 논술 과학 학원 스케줄을 잡고 사이사이에 놀기도 하고 심지어 운동도 샥샥 잘하고 주말에는 놀러 가는 것도 수준급으로 다닌다! 게다가 학원 숙제에 과외까지 하기에 학교 숙제는 도대체 언제 하냐고 물었더니, "학교 숙제야, 별 거 없잖아요?" 한다. 털썩. (진심 존경한다.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지?) 나? 학교만 보내지. 그 별 거 없다는 학교 숙제만 다 하고 보내기도 버거운데 뭘 더 해. 그래도 아이가 체크리스트 ('해야 할 일 목록'의 완화된 표현)를 주에 2-3번 정도는 엄마 퇴근 전에 스스로 해두는데 , 나는 그게 아주 대견하다. 엄마가 관리 못해주면 스스로 해야지, 암.
아이는 체력에 맞지 않게 너무 신나게 놀아도 나중에 지쳐서 아무것도 못 한다. 아이의 체력은 날 닮아 굳세지 못하여 이내 지쳐버린다. 적당히 잘 놀고 나서 하는 숙제는 나름 즐겁게 해내던 경험을 떠올리며 실컷 놀렸는데 너무 놀아버려서 체력이 모자랄 지경이 되면 이것도 망한 거다. 적절한 완급 조절 끝에 기분도 좋고 체력도 좋고 오늘은 미리 숙제를 다 해놓고 엄마의 퇴근을 기다렸다면, 이날은 베스트. 매일이 베스트 라면 참으로 좋겠지만, 학교에서의 컨디션도 잘 모르고 아이의 스트레스가 무엇인지 본인도 모르는데 엄마인 내가 알아채어 미리 제거해주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하지만 아이가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것들을 기억해 목록들을 쌓아가다 보면, 본인도 엄마도 모르게 쌓여간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 버릴 목록이 동시에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아이의 기쁨과 행복에 대해 기록하고 알아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엄마로서 많이 미숙하지만, 그 노력들이 쌓이다 보면 어느 날 아이에게도 큰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