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 수용소
수용소(收容所) : 많은 사람을 집단적으로 한 곳에 가두거나 모아 넣는 곳.
내가 느끼기에, 조리원이라는 곳은 마치 산모 수용소 같은 곳이었다. 자발적으로 가두어졌고, 외출이 가능하다는 차이는 있지만, 일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각각의 방에 산모들을 모아 넣고, 삼시 세끼 별별 종류의 미역국과 함께 각종 영양 식품을 시시때때로 제공한다. 짬짬이 불러 요가도 시키고 스트레칭도 시키고 산모들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시키기도 한다. 수유 콜을 받고 산모들은 수유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아이들을 먹이고, 우는 아이를 달래고, 자는 아이 깨워가며, 서로에게 의지하며 여러 육아 팁도 얻는다.
첫째는 전문의 시험을 앞두고 태어났기 때문에(참고 글 : 내 힘으로 애를 낳을 거야) 사람들이 조리원 생활이 천국이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1주일만 있다 가면 후회한다고 하는 건지, 왜 2주 꼬박 다 채워 안마받고 몸조리 잘하고 나와야 한다는 건지, 새벽 수유 콜은 왜 받지 말고 밤에는 그냥 자라고 하는 건지 잘 체감하지 못했다. 그저 내가 시험을 치러 갈 동안 아이를 봐줄 신생아실 간호사 선생님들이 있어 고마웠을 따름이다.
조리원이 천국이라는 것은, 첫째가 세상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조금 이해했다. 천사 같던 내 아이도 집에 가면 변신하는구나! 아이가 잠이 들어도 나는 조금도 쉴 수가 없었다. 몸은 고단한데 집안일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자는 동안 함께 자보려 하면 아이는 이내 깨 울곤 하였다. 아이를 홀로 돌보는 것이 힘들어서 조리원이 천국이라고 하나보다 생각했다. 그리고 둘째 때에야 비로소 제대로 체감할 수 있었다. 사람들 말대로 정말, 조리원은 천국이었다.
"산모님, 아기 배고프다고 우네요~ 수유하러 오세요." 아침에 수유 콜이 오면 모닝 수유를 하고 샤워를 한다. 아침 식사 방송이 울리면 산모들은 식당으로 향하고 방 번호를 체크하여 아침 식사를 삼삼오오 하게 된다. 며칠에 태어난 누구 엄마와 안면을 트고 친해지기 시작한다. 밥을 먹는 건지 수다를 먹는 건지 모두가 신이 나서 제왕 절개파, 자연 분만파 또는 조리원 1주파, 2주파 나뉘어 임신과 출산과 수유에 대한 썰을 푼다. 수다로 스트레스를 풀기라도 하려는 듯, 공감하고 이해받고 위로받는 시간을 보낸다. 밥을 먹다가도, 수유를 하다가도, 심지어 치킨 배달을 시켜 와서 야밤의 식당에서도! 이런 식으로 조금씩 오다가다 친밀도가 상승한 산모들끼리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조리원 동기 모임이라는 것도 생기고 그랬다. 수유실에서 민낯과 함께 서로의 가슴을 깐 채 수유를 하며 만난 사람들이라 1-2주의 짧은 만남이긴 했지만, 어쩌면 남자들의 군대 동기와도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라고도 생각해 보았다.
생각보다 조리원은 바쁜 곳이었다. 안마 시간표를 짜고, 산후 요가 프로그램을 놓치지 않고 듣기 위해서 아이의 수유 텀도 조절하고, 중간중간 이뤄지는 아기 모빌 만들기 체험, 각종 산모들 대상으로 하는 강의 등이 포진해 있어 챙겨 들으려면 왠지 모르게 바빴다. 주에 한번 모자 동실하는 날이면, 아기와 단둘이 방에서 지내야 했고, 매일이 각종 행사와 스케줄로 채워졌고, 문병 오는 사람들 맞이하느라, 시시때때로 수유 가느라, 오롯이 나의 휴식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나면 남편에게 부탁해서 빌려온 책을 나 홀로 조용히 읽을 수 있었는데, 난 그게 너무나 좋았다. 전후로 1년 통틀어 가장 다독했던 시기가 바로 조리원 2주간의 기간이 아니었나 한다. 쏙쏙 읽히고, 술술 책장이 넘어가던 때였다. 조리원 침대에 등을 기대고 앉아, 베개를 딱 다리에 올리고, 그 위에 책을 올린 채 독서하는 시간이 참으로 좋았다.
조리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싫고, 모유량이 적어 수유실에 가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어 조리원 자체를 가지 않는 사람들도 보았다. 아이가 아파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있어 유축만 하고 직접 수유는 하지 못해 슬퍼하던 엄마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분은 계속 수유실을 들락날락하며 다른 아기들도 구경하고 수다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던 분이었다. 아들만 넷을 낳고 수유를 하는데, 머리 뒤에서 후광이 비치며 눈이 부시던 산모도 있었다. 다들 나름의 방식으로 조리원을 경험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경험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해외 출산 산모도 있을 것이다. 조리원이라는 곳이, 한국의 특수한 문화이기도 하므로, 신기하게 여기는 외국인들도 많다.
조리원을 경험했든 아니든, 그 경험에 공감하든 아니든, 엄마라면 누구나 아이가 신생아인 시절을 겪는다. 아이와 홀로 단둘이 있는 시간들을 겪고, 또 위기 상황에 부딪히기도 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처음인데, 절대적으로 나에게 의존하는 아기를 돌보는 그 일이, 어느 누구에게도 결코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두 번째로 겪는 일일지라도, 첫째와 함께 돌보아야 하는 둘째의 일상은, 이 역시 처음이라, 또 다른 어려움이 잇따르기 마련이다. 이 세상 모든 엄마들에게 경외감을 가지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 모든 처음을 무사히,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었음에도 그녀들은 해냈다. 그리고, 누구나 쉬이 하는 그런 과정이 아니었음을 나는 안다. 그러니 그녀들이여, 스스로를 귀히 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