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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Sep 27. 2022

학회장에서


결국 내가 하지 못했던 것은 한 우물을 깊게 파고드는 것이었다.

이것저것 관심이 많은 아이, 라는 평가는 언니에게서도 들었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한 분야에 특별히 파고들어 아주 전문이 된 건 딱히 없지 않나 싶다. 내 이름으로 나온 논문이 아주 많은 것도 아니고 내가 40년간 이룬 업적이라는 게 과연 뭐가 있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들면서 스스로 위축되었다. 학회장에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왜 문득 이런 생각이 든 것일까.


어쭙잖게 글을 쓴답시고 지껄이고 있는 말들도 결국은 뭔가를 ‘생산’해 내는 작업인 셈인데 교수가 쓰는 논문도 어떤 면에서는 비슷하다고 느낀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떤 소재나 주제를 골라서 하고 싶은 말을 모으고 결론을 짓고 사진이나 인용자료를 찾는 과정을 거친다. 논문을 내기 위해서도 한 주제를 정해서 어떤 환자군을 어떻게 모을지 결정하여 윤리적인 문제는 없는지 살핀 후 결과를 내고 결론을 도출한다. 학회장에서 발표를 하기 위해서도 여러 논문을 모아서 자료를 정리하고 결론을 도출하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거쳐 청중들에게 지식과 자료를 제공한다.


만약 내가 대학에 남아 있었다면 지난 세월이 쌓이고 쌓여 지식이 견고해지고 훈련이 되어 저 정도 발표는 할 수 있었겠지. 같은 의사이지만 가끔은 정말 다른 길을 걷고 있구나 싶다. 전공의 때의 시선과 봉직의의 시선, 그리고 교수의 시선은 각기 다르다. 각자의 요구도 다르며 얻어가는 분야도 다를 것이며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도 모두 다르다. 내가 지난주 발표한 강의는 일반인 대상의 뇌졸중 강의였는데 아주 쉽고 간단한 내용이었다. 딱히 애써 준비할 것도 없었다. 같은 30분 강의이지만 이 강의는 가치가 있고 저 강의는 하찮은 종류의 것일까?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원하는 삶의 형태를 정하면 된다. 논문이 쌓이고 그에 대한 희열이 큰 사람이라면 대학에 남아 논문을 쓰고, 이어지는 다른 단점은 보람과 기쁨을 느끼는 일로 상쇄하면 된다. 자신이 원하던 삶의 방향대로 살아가면 될 일이다. 애초에 나는 글 쓰는 신경과 의사를 하고 싶었으니 그 길을 걷고 있을 뿐이다. 내가 했던 강의도 일반인 대상에 맞춰 그에 맞는 강의자료를 준비하고 전달하였으므로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이곳에서 순간 느꼈던 일종의 자괴감은 휘휘 날려버려도 괜찮지 않을까. 수년간 도대체 나는 뭘 한 거지? 생각했지만, 결국 세월의 흐름 속에 내가 할애한 시간의 비율이 달랐을 뿐이다. 글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유하는 데에 조금 더 시간을 할애하였을 뿐 내 역량이 모자라서는 아니다. 비교 자체가 불가하다.


왜 나는 깊이 있게 우물을 파지 못했나, 로 시작했지만 모두가 한 우물만 파야 하는 것은 아니니.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한다. 학회장 맨 뒤에 자리 잡고 앉아 엉뚱한 생각을 하며 불편해진 나의 마음은 이제야 비로소 편안해진다. 그들이 쌓아놓은 지식을 고맙게 받아들이고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가자. 환자를 위해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을 챙기고 트렌드를 알고 제공자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며 이 시간을 즐기자. 삶의 형태가 '깊지' 않을지는 몰라도, '얕고 넓게' 제공할 수 있는 나의 능력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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