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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Oct 25. 2022

기억이 조금씩 사라져 갈 때면 두려움이 엄습한다


1.

월요일 오전 진료  환자가 * 하나를 건넸다. "선생님 많이는   왔고예, 이거 하나 드시고 일하시이소." ", 감사합니다." 하고 나도 모르게 홀랑 마셨던가 보다. 오후에 월요병인지, 유독 피곤해서 *스가 생각나던 참에, 아까 두었던 자리에서 음료를 찾는데  자리에 음료가 없는  아닌가. 이게 없어졌다면, 누가 훔쳐가지 않고서야 내가 마셔서 버렸다는 소린데, 도통 생각이 나질 않는 거다.  정신이 번쩍 드는 맛을 내가 기억을  한다고? 말이 ? 쓰레기통을 뒤졌다. , 그때의 충격이란. 예쁘게 버려져 있던 *  통이라니.


2.

가끔, 처방을 하는데 약 이름이 순간 기억이 안 날 때가 있다. 병원에 들어와 있는 모든 약을 다 기억할 수는 없기에 성분명으로 검색을 하기도 하고, 약속 처방을 다시 뒤적거리기도 한다. 가끔, 아주 가끔, 순간적으로 이도 저도 생각이 안 날 때가 있는데, 최근 일을 많이 벌여서인지 뇌에 과부하가 걸린냥 빈도가 잦아졌다.


-늙어가고 있구나.


일상 기억을 잘 못하는 편이다. 어디에 언제 누구와 갔는지 잘 모르고, 지독한 길치에, 누가 누구랑 뭐 했다 이런 기억은 정말 잘 못한다. 엄마가 일상 기억력이 아주 좋은 편이라, 내 친구의 특성이나 이름을, 한두 번만 스치듯 말해줘도 기억해 내셨다. 그래서 난 내가 말한 것도 까먹고 엄마한테 내 친구에 대해 물어보곤 했다. 그런 나인데, 희한하게도 고교 시절 1학년 때 반 아이들 번호순으로 외워 보라고 하면 줄줄 읊었고, 아직도 (20년 넘었다!) 어쩌면 2/3 이상 맞출 수 있다. 중학교 때 내 번호도 1321, 2929, 3838이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지만 (작았던 키가 점점 자라났음을 짐작할 수 있음), 여하튼 대부분의 일상 속의 일들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다. 어쩌면, 내가 '숫자'에 강한가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딱히 그런 것도 아닌 듯하고. 일상을 잘 기억하지 못해서 생긴 버릇은, 언제나 어딘가에 조금씩 기록하고 저장해둔다는 것이었다. 나의 비루한 기억력을 믿지 못한 채, 내가 쓴 글을 내가 검색하는 거지.


-그래, 뭐, 난 원래 일상 기억을 잘 못하니까.


그렇게 넘길 수도 있는 문제였다. 평소에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우울할 틈도 없던 나인데, 갑자기, 문득, 어떤 두려움이 엄습했다. 내 기억이 조금씩 사라지면 어쩌지? 새하얗게 기억들이 없어지고 나면, 나는 과연 나일 수 있을까?


이러한 물음에서 비롯된 영화는 많다. <메멘토> <이터널 선샤인> <첫 키스만 50번째> 등등. 기억이 사라진 채 살아가야 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나를 전부 잃어버리기 전에 세상에서 사라져야겠다는 것이었다. 메멘토처럼 복수를 위해 기록하려는 마음도, 영화처럼 매일 잊고 다시 사랑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사라지는 방법으로는 희석하지 않은 염화칼륨을 이용해야지. 혈관통이 있을 수 있으니 진통주사를 미리 맞아야겠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렸다.


-요즘, 무리했구나. 쉬어야겠다.


장기적인 계획과 아이디어 남발로 머리가 많이 복잡하고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넘쳐나는 정보와 쏟아지는 생각들로 그릇이 넘실대고 있었다. 무엇을 위함인가. 나만의 어떤 것들을 만들어 세상에 내보이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에 나오면 잘 내보여야지 하는 마음에서 몇 가지 일을 벌였다. 하지만 그것이 나오기도 전에 일파만파 다른 일만 늘어난 느낌이다. 정작 중요한 알맹이는 없으면서 뭔가 본질에서 벗어난 느낌. (이미 누군가 지적했다, 본질을 잃지 말라고.) 행복해지려고 시작했고,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살아가고 싶었을 뿐인데. 조금 비워낼 필요가 있다.


해서, 주 2회 연재를 조금 쉬어갈까 합니다. 시끌시끌하던 사람이 반응이 없다고 서운해하시지 말기예요 =)


모두에게 평온함이 깃들기를 바라며,

뉴로그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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