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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Apr 05. 2022

건강 음료 하나

전하는 따뜻한 마음


고혈압과 당뇨가 있던 80 할머니, 두통과 어지럼, 본태성 떨림으로 추적 관찰하던 분이다. 지팡이를 짚고 다니긴 했지만 혼자 오는데 전혀 무리가 없었고,  때마다 조심스레 속삭이며 주섬주섬 가방에서 윌을 꺼내 주셨다.  번도 빠짐없이 오늘 날짜로 구입한 것으로 보이는  하나. 처음에는 " 괜찮습니다, 환자분 드세요" 사양도 해보았지만 에헤이, ! 하는 표정으로 넣으라 손짓하시던 할머니. 어김없이 외래 날이면  하나를 꺼내 행여나 다른 사람들이 볼까  주변 눈치를 살펴 가며 챙겨주시고는, 시간   혼자 챙겨 먹으란다.  개도  개도  박스도 아닌  하나. 많이 부담스럽지도 않으면서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전달받을  있는 매개체였다.


난 따뜻함과 차가움 이분법으로 굳이 분류하자면, 차가운 사람이다. 시어머님도 어느 날 그랬다. 너는 사주가 차가워. 인턴, 레지던트를 거치면서도 다른 사람들은 지나가면 봉투가 턱턱 꽂혔다는데, 나는 끽해야 음료수나 과자류만 쌓여갔다. (김영란 법 이후 안됩니다, 오해 금지) 나의 온기는 환자에게 별로 전해지지 않나 보다 생각했다. 나는 나름 항상 공감하려 '노력'하는데, 전해지는 온기는 차가웠다. 손도 잡아 주고 정성을 다하는 의사도 있다. 많지는 않지만, 분명 있다. 나는 그렇지 못한 의사였다.


할머니는 윌을 건네주며, 본인의 건강을 챙겨주니 언제나 고맙다며, 손을 잡아주셨다. 내가 잡은  아니라 잡힌 셈이다. 따뜻했다. 나의 손은 항상 차가운데, 윌을 건네며 꼬옥- 손을 한번 잡아주는 거칠어진 손이, 따뜻했다. 내가 위로를 건네야 하는데 어르신들은 오히려 내게 위안이 되어준다.


언제부턴가 지팡이를 짚고 혼자 오던 할머니가 휠체어를 타고 오기 시작했다. 깡마른 체격의 사위가 휠체어를 태워 진료실에 들어오면서, 할머니의 인지가 최근 많이 나빠졌다고 했다. 간이 인지 검사를 해보니, 정말로 점수가 너무 떨어졌다.  정도는 아니었는데, 하며 급격한 인지 저하에 대한 감별 검사를 권했다.  와중에도 할머니는, 본인 거동이 힘들어 '' 챙겨 오지 못한 것에 오히려 미안해했다. 다른 기억력이나 인지는 현저히 떨어지면서, 수년간 챙겨   '' 잊지 않았다. 나는  없이도 매일 쾌변 하는 사람인데, 사실 필요성으로 따지자면 내겐 무용한 음료였는데. 문득 윌이 그리워졌다. 할머니의 건강을 대변하는 윌이었던 것이다.


움직임이 줄어 인지는 더욱 악화되고, 체격은 더 커져간다고 사위에게 전해 들었다. 거동이 힘든 인지 저하자나 파킨슨 환자의 경우 보호자가 대리 처방을 해가는 경우가 있다. 할머니는 이제 더 이상 내 외래로 오지 않는다. 내겐 무용했지만 따뜻했던 그 윌을 그리워하며, 보호자에게 대리처방을 했다. 나이와 상태를 고려했을 때, 예약된 날짜에 사위도 오지 않는 날이 온다면, 나는 너무 서글퍼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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