뱁새가 황새 좇는 격일지라도
지금까지 진료실 안팎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에 대해 쓰면서, 하고많은 과 중에 왜 하필이면 신경과를 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은 듯하다. 내가 신경과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던 이유가 혹시 궁금할, (몇 안 되는) 독자들을 위해 정리해본다.
1. 인체 중에서도 '뇌'가 가장 궁금했다.
인간의 뇌는 신기한 게 많고, 알려지지 않은 것이 많고, 알아야 할 것도 많은, 알면 알수록 무궁무진한 신세계 같아서, 공부해보면 (어렵지만) 재밌을 것 같았다. 뇌의 영역을 다루는 과로는, 신경과, 신경외과, 그리고 정신건강의학과 정도라고 생각했고, 학생이나 인턴일 때만 해도 정확히 이 세 과가 무슨 차이인지 잘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신경과와 정신건강의학과는 기질적인 이상의 유무로 생각하면 되고, 신경과와 신경외과는 내과적으로 치료하냐, 외과적인 시술이나 수술이 필요한 질환이냐로 분류된다. 신경내과(=신경과)/신경외과인 셈이다. 내과/외과처럼 도려내고 잘라내고 시술하는 게 있다면 외과계에 속한다. 증상을 열거하면 좀 더 이해가 빠를 수 있는데, 두통, 어지럼, 손발 저림, 편마비, 근력 저하, 인지 저하, 보행 이상, 경련 등이 주로 신경과에 내원하게 되고, 질환으로 보자면 편두통, 뇌경색, 다발성 신경병증, 신경마비, 치매, 파킨슨병, 뇌전증 등이 있겠다. 이런 병 가운데서도 수술이나 시술의 접근이 필요한 경우에는 신경외과로 가기도 한다. 정신건강의학과에는 기질적인 문제라기보다는 마음과 보이지 않는 신경전달물질 등에 치중된 질환을 본다. 우울증, 불안장애, 양극성 장애, 조현병, 중독 등이 있다.
2. 다른 과에 비해 체계적이다.
복통이 있다고 해서 이런 복통은 상행 대장, 저런 복통은 하행 대장, 이런 식으로 증상에 따라 해부학적인 위치를 정확히 가늠하기는 어렵다. 피검사와 CT 결과가 이렇고 저렇고 해서 진단이 되는 게 대부분이고 경험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는 그저 보고 딱 진단할 수 있어 명쾌한 면이 있지만 찾아내는 재미가 없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내 성적이 피안성을 할 만큼 좋지 못했다. 신경과는 우측 운동 실조와 편마비가 있으면서 발음이 어눌하면 좌측의 기저핵이나 뇌교 등의 해부학적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고, 증상과 해부학적 지식이 이어지면서 급성/아급성/만성 등에 따라 질환들을 감별해나가는 '과정'이 멋있어 보였다. 현실 의사와 괴리는 있지만 미드 "하우스"처럼 진단 맞추고 퍼즐 하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3.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가 결정타.
의학계의 시인, 올리버 색스가 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라는 책을 읽고, 신경과를 해야겠다고 최종적으로 마음먹었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임상 증례집에 가까운 책이다. 읽으면서 와 나도 이런 멋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나도 언젠가는 이 사람처럼 책을 하나 써야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다. 인생의 버킷 리스트에 한 줄이 채워진 순간이었다. 다시 읽어보니 굉장히 전문적이고 신경과 질환과 정신과 질환이 혼재되어 있었지만, 과 선택에 결정적 계기가 되어준 책임은 분명하다. 신경과 지원 동기를 밝힐 때에도 어김없이 등장했고, 브런치 작가 등단 때도 인용한 책이 바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이다.
그렇게 하여 4년간 수련의 세월이 더해져, 나는 신경과 전문의가 되었다. 신경과 의학 에세이를 모아 놓은 매거진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연재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올리버 색스를 흉내 내는 것이, 뱁새가 황새 좇는 격일지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