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강박 바라보기
나는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완벽주의자다. 엄청 대충 살아가는 것 같으면서도 또 일부분 강박적으로 살아간다. 퍼즐 한 조각이 빠져 있으면 그 조각을 찾아야만 하고, 핸드폰 어플은 굉장히 정리가 잘 되어 있는 편이다. 앞사람 등에 실이라도 있으면 떼주어야 하고 주변 물건들은 항상 제 자리가 정해져 있어 그 자리 그곳에 있어야 하며, 핸드폰 어플에 숫자 1이라도 뜨면 그때그때 확인해서 없애야 하고, 카톡 여러 창에 걸쳐 떠 있는 알람들이 싫어서 관리가 잘 되거나 읽어보지 못하는 단톡방은 정리해버리곤 한다. 알림까지 울려버리면 바로 확인을 해야 하니 삶이 피곤해져 버리기에 거의 대부분의 어플에 알림 설정을 꺼놓고 심지어 카카오톡도 알림 없이 무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인이 빠른 편이다.) 내가 보고 싶을 때 보고, 확인하고, 빨간 숫자들을 없애 나간다.
쓰고 보니 굉장히 괴짜 같다.
알림 그거 좀 울리면 어때서.
즉각 확인 좀 안 하면 어때서.
숫자 1 좀 떠 있으면 어때서.
지메일을 주로 쓰는데 한 번은 어플에 오류가 났던 모양이다. 분명 메일을 모두 확인하고 정리하고 지워서 새 메일은 없게 만들어 놓았는데도 동그란 알림 20이라는 숫자가 없어지질 않았다. 분명 새로고침을 해봤는데도 사라지지 않는 숫자 20. 너무 괴로웠다. 가끔 껐다 켜서 확인해보면 없어지기도 하니까 심지어 전원을 껐다가 켜보기까지 했다. 그런 수고스러움 끝에도 남아 있던 숫자 20. 신경 쓰지 말아야지, 자꾸 보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핸드폰을 볼 때마다 거슬렸다. 한참 뒤에서야 업데이트 후에 없어지긴 했지만, 볼 때마다 새로고침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생각했다. 이거 강박이구나.
공부 좀 했다 하는 의대생이라면 어느 정도의 완벽주의와 강박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최근 우연히 <어린 완벽주의자>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대한민국 최상위권 학생들은 왜 행복하지 못한가?'를 부제로 한, 5년간 1000건이 넘는 의대생 심리 상담을 진행한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이었다. 주변에서 흔히 보는 유형들과 나의 완벽주의적 성향을 공감하면서 재밌게 술술 읽어냈다. 몇 가지 공감하는 부분들을 인용해 보겠다.
목표 그 자체보다는 '목표를 대하는 태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라톤에 비유하면, 결승점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묵묵히 달려가는 사람은 좋은 완벽주의자지만 결승점까지 남은 거리를 계속 확인하며 힘들어하는 사람은 나쁜 완벽주의자다. 좋은 완벽주의자는 현재를 꿈에 가까워지는 '과정'으로 인식하는 반면, 나쁜 완벽주의자는 꿈에 미치지 못한 '상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전자는 과정을 즐기려 노력하고, 후자는 상태를 확인하려 한다.
우리나라 최상위권 학생들 대부분이 완벽주의 성향을 갖고 있다 했는데, 역으로 이들 부모님 중 자신이 완벽주의자라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내 경험상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저는 애를 그렇게 쪼거나 간섭하지 않아요. 그냥 애가 알아서 열심히 하더라고요."라고 말한다. '나는 압박을 준 적이 없는데 아이가 알아서 열심히 하더라'는 이 말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 아이가 완벽주의 성향을 보임에도 자신은 결코 완벽주의자가 아니라 생각한다면 대단한 착각이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도 이런 용기가 필요하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 아쉬움'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려도, 잊을 수 있는 용기를 내야 한다. 삶의 단점에 집중하기보다는 장점에 만족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그런 태도로 자녀를 대함으로써 자녀 또한 자신의 삶을 그렇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은 돈도 명예도 아닌,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다.
사랑하지만 집착하지 않는 것, 사랑하지만 강요하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나라 부모 자식 관계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 자식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보완하면 더 발전할 수 있는지 부모 눈에는 너무 잘 보인다. 그래서 자식이 잘됐으면 하는 마음에,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자꾸만 간섭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사랑을 빙자한 폭력'인 것이다.
요즘 인터넷상에 '꼰대가 되지 않는 법'이란 글이 많이 떠돈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지만 결국 '지적하고 싶을 때 지적하지 마라. 조언하고 싶을 때 조언하지 마라.'로 요약할 수 있다. 좋은 부모가 되는 방법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조금 느리더라도 아이 스스로 세상을 탐험해 나갈 수 있게 기다려주는 것이야말로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배려 아닐까?
지금 고민하는 문제에 정답은 없습니다. 좋은 선택과 나쁜 선택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본인 선택에 믿음을 가지면 그것이 정답이 되는 겁니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사람에게는 후회가 없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세요.
바람직한 길보다 행복한 길을 가라. 옳은 일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라. 이것이 가장 단순한 행복의 비결이다. 세상에는 정답이 없다. 그러니 내가 고른 것이 오답일까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나의 감정과 욕구에 부합하는 것, 다시 말해 나의 마음을 채워주는 것이 곧 정답이다. 확실한 것이라곤 없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내 마음뿐이다. 생각을 멈추고 감정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완벽주의 극복을 위한 가장 가치 있는 첫걸음이다.
완벽주의자는 자기 확신이 부족하다. 원래 확신이 부족할수록 객관적 데이터에 집착하는 법, 그래서 완벽주의자는 타인의 평가에 무척이나 민감하다. 항상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남이 자신의 결점이나 실수를 발견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만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굳게 믿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고, 관심이 없기에 나를 제대로 평가할 수도 없다. 나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다. 결점이 있고 실수를 해도, 내가 괜찮다고 생각하면 괜찮은 것이다. 사랑에 이유가 필요하지 않듯, 자기 확신에도 근거가 필요 없다. 남의눈을 의식하지 말고 자신을 믿어라. 거울에 비춰보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나다. 유명한 성경 구절처럼. "보지 않고도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이퀼리브리엄 Equilibrium'이란 영어 단어에는 두 가지 뜻이 존재한다. '물질이나 에너지가 균형을 이룬 상태'를 지칭하는 동시에 '마음의 평화'라는 뜻도 갖고 있다. 말하자면, 완벽주의자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이퀼리브리엄을 유지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에도 이퀼리브리엄을 만들려 하는 사람들이다. 아쉽게도 이런 시도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인간은 언제나 변하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도 항상 달라지기 때문이다. 세상은 돌고 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아무리 소란해도, 세상의 디스이퀼리브리엄 Disequilibrium 속에서도 마음의 이퀼리브리엄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행복의 비결이다. 그러니 관계를 계산하지 말자. 인간은 관계없이는 행복할 수 없는 동물이다. 그래서 관계에서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절대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 계산하지 말고 느껴라. 관계란 주고받는 것(Give & Take)이 아니라, 함께 있는 것(Being together)이다.
압박감의 기저에는 완벽주의가 있다. 완벽주의자는 상황을 통제하려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항상 주변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굳이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될 일에 책임감을 느끼는 경우가 흔하다. 책임감은 다른 말로 죄책감이다. 상황을 해결하는 게 나의 '책임'이라면, 상황을 해결하지 못한 것은 나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책임을 다하지 못한 잘못, 그것이 죄책감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 책임이 나에게 있다면, 분위기가 어색한 것은 나의 잘못이다. 바로 이 죄책감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어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될 상황에 뛰어들게 만드는 것이다.
완벽주의자들은 '하면 좋은 일'을 '해야 하는 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모였을 때 분위기를 좋게 만든다면 참 좋은 일이고,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는 것 역시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꼭 해야 하는 일', 즉 의무는 아니다. 그저 즐겁게 하면 될 일에 쓸데없는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인생의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완벽주의의 핵심이 '당위성에 대한 숭배'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당위성이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을 뜻하는 만큼, 완벽주의자들은 세상 모든 일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해야 하는 일을 앞두고 마음이 무겁고, 행여나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할까 노심초사한다. 즐거워야 할 일상이 책임감에 억눌려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완벽주의자가 갖고 있는 잘못된 믿음은 '완벽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완전하고 흠 있는 존재인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 완벽이란 지향점에 비하면 나는 항상 부족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데, 인지치료 이론에서는 이렇게 스스로 '결함 있는 존재'라 느끼는 것을 '결핍감'이라 부른다. 이 결핍감이 우울, 불안, 강박을 포함한 대부분의 정신과적 질환을 유발한다는 것이 인지치료 이론의 주장이다. 따라서 '완벽해야 인정받는다'는 믿음을 버리는 것, 그럼으로써 결핍감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인지 치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당신이 완벽하지 않아도 좋아할 사람은 좋아하고, 당신이 완벽해도 싫어할 사람은 싫어한다. 완벽해지기 위해 노력할 시간에 자신을 사랑하고 인생을 즐겨라. 그것이 완벽주의 극복의 첫걸음이다.
상실과 결핍은 대상을 필수로 보느냐 옵션으로 보느냐가 결정한다. 필수적인 것이 없어지면 결핍이지만, 옵션이 사라진 건 상실이다. 필수와 옵션의 차이는 값어치나 효용성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값지고 쓸모 있어도 '온전한 나'를 만드는 부속품이 아니면, 옵션인 것이다.
나는 '위기일수록 본질에 집중하라'는 격언을 완벽주의자들에게 꼭 해주고 싶다. 매사에 너무 힘이 들고 지친다면 한 번쯤 멈춰 서서 내 앞에 놓인 일의 본질이 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때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로 구분하는 것은 일의 본질을 판단하는 데 좋은 기준이 도리 수 있다. 하고 싶은 일이라면 즐거움에 집중하고, 해야 하는 일이라면 효율성에 집중하라.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순 없다. 삶에서 불필요한 생각들을 쳐내고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요즘 유행하는 '심플 라이프'의 핵심이 아닐까?
특히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구분하라는 것과, '상실'과 '결핍'을 '필수'와 '옵션'으로 비유한 것이 좋았다. 하고 싶은 일은 '즐거움'에 집중하고, 해야 하는 일은 '효율성'에 집중할 것. 아이에게도 알려주면 도움이 되는 말인 듯하다. 기왕 완벽주의자임을 인정(강조하건대, 일부분에 한해서다)한 김에, '좋은' 완벽주의자로 거듭나면서, 행복을 찾기 위해 '나에게 집중'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완벽주의자가 행복해지기 위한 첫걸음으로, 이 글과 인용이 도움되길 바라면서 이만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