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어린이 날이 크리스마스 만큼이나 기대되는 하루였다.
어떤 선물을 받을지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이것 저것 사고 싶은 걸 적어두곤 했다.
그때 사고 싶은 것들을 줄줄이 적어가며 그렇게 어른이 되고 싶어했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그런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그렇게 부럽다.
크고 보니 5월은 최고 지출의 달.
감사함으로 삶을 버텨온 내가 조금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뭐 그리 감사한 게 많은지.
어릴 때와는 다른 리스트를 적어내려간다.
어른들은 말이 없어 내가 그들이 되어 상상까지 해야 한다.
그들이 무얼 원할지 상상한 것들을 적어내고 나면, 가계부를 작성한다.
우리 부모님도 그러셨으리라 생각하니 쓴 웃음이 지어졌다.
그렇게 부모 마음을 생각하다 보니 그들의 어린 시절도 궁금해졌다.
우리 부모님은 어린 시절 어떤 꿈을 가지고 있었을까.
우리 부모님은 어린 시절 어떤 선물을 받고 싶었을까.
어린 시절 나를 보던 부모님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이 원하던 것들을 나에게 해줬던 건 아닐까.
가장 기억에 남는 한 해가 있다.
내가 9살 때.
그 해 나는 매일 매일 나는 9살이 좋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내가 만났던 선생님도, 학급 친구들도, 우리 가족들도 최고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싫어하는 비가 내리더라도, 나름 운치 있다며 즐길 만큼 모든 게 좋아 보이던 때였다.
그때가 얼마나 좋았는지, 나는 몇년 간 가장 좋아하는 숫자가 9였다.
9살 어린이 날은 특히 기억에 남는 날이기도 하다.
그날 아침 아빠는 일어나자마자 우리 삼 남매를 데리고 마트로 향했다.
당시 닌텐도 Wii가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열기가 굉장했을 때였는데,
아빠는 Wii 전시장 앞에서 이것저것 살펴보더니 본체부터 부속품, CD까지 잔뜩 담아버렸다.
거기에 닌텐도, 무선 헬리콥터까지 담아 계산했다.
퇴근한 엄마는 기절초풍. 단단히 화가 나서 아무 말도 안 했다.
내가 9살의 어린이 날을 특별히 기억하는 까닭은,
아빠가 많은 것들을 사준 것이 자랑스러워서 그런 게 아니다.
겨우 9년 산 인생, 살면서 아빠가 그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봤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날 신나서 게임기를 연결하고, 헬기를 조종하던 아빠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는 우리에게 선물한다는 핑계로 그것들을 산 것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학교가 너무나도 싫었다던 아빠, 커서도 삼촌과 함께 게임을 하는 아빠.
어쩌면 어릴 때 못 했던 것들을 완전한 자유를 얻고서 풀어내는 것이려나.
그런 어릴 적 소망이 이렇게 우리와 함께 풀어져 나갔다는 걸 생각하니,
고단하게 가정을 지켜온 부모님이 진심으로 대견스럽다.
가정의 존재는 그들의 선택이었다 한들,
가정의 행복은 그들의 책임으로 이루어진 것이었기에.
나의 행복했던 나날들은 그들이 있어 가능했던 것이기에.
그 은혜가 나도 몰래 마음에 나려, 미움조차 죄책감으로 만들었나.
5월 가정의 달, 그 무게가 조금 버거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저 삶이 무겁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도, 나의 부모도, 나의 조부모도 모두가 부모의 눈에는 그저 어린 아이일 터.
그러니 어린이 날은 4세~13세의 아동뿐 아니라, 우리의 어린 시절도 함께 기억하고 기념하며,
이날만큼이라도 순수함 가득한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
나도, 여러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