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의 세계
내가 맡던 아이들 중에 사실상 얼굴을 직접 대면해 보지 못하고 졸업시킨 학생이 있다.
때는 코로나의 절정으로 대규모 학생들이 등교하는 것이 조심스러웠던 시절. 수업도 학년별로 돌아가며 출석을 하였고 대부분 원격수업이 이루어지던 때였다. 이런 암울한 시기가 언제쯤 지나갈까 답답해하며 3월, 우리는 새 학기를 맞았고 나는 3학년 담임교사를 맡게 되었다.
이번에 올라오는 3학년들은 착하기로 소문나고 무난하기도 해서 어떤 반을 맡더라도 어려움은 없을 거예요. 다만 ‘김은아'라는 여학생이 있는데, 심리적인 어려움으로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전 학년부장 선생님으로부터 인수인계를 받은 3학년 부장 선생님은 여학생 중의 한 명을 지목하였고, 제비 뽑기로 고른 우리 6반 학생들의 명단을 훑어보다가 ‘김은아'라는 학생의 이름에 시선이 멈췄다. 재작년에 어느 건물 옥상에서 투신한 여고생으로 지역 뉴스가 떠들썩한 적이 있는데, 그의 동생이었던 것이다. 그 심리적 충격 및 여러 사정으로 그해 말부터 학교에 직접 나오지는 않았고, 작년에는 코로나 원년으로 원격수업 참여 및 체험학습 신청 등으로 겨우 진급했다고 하였다. 평소 일상적인 고민이 아닌 깊은 아픔을 지닌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서툴기만 한 나는, 앞으로 은아에게 어떻게 다가서야 할지 고민에 빠지며 개학식을 맞이했다. 역시나 첫날 은아는 출석하지 않았다. 어머님과 통화하니 어머님은 아직 은아가 학교에 다닐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미인정 결석이든 어떤 것이든 학교 규정에 맞게 처리하면 된다고 하셨다. 어머님과 함께 은아가 어떤 상황에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이야기도 할 겸 상담 날짜를 잡았다.
아이가 죽고 싶었다고만 했지, 진짜 죽어 버릴 줄은 몰랐어요.
담담하게 그 언니로부터 사정을 이야기하던 은아 엄마에게 묵직한 슬픔이 배어 나왔다. 은아는 그 일이 있은 다음에도 학교에 나왔다고 했다. 그런데 언니도 같은 학교 졸업생에다 지역이 좁다 보니 소문이 이미 파다하게 나 있었고 은아를 보며 주변 아이들이 쑥덕댔다.
괜찮다고도 괜찮지 않다고도 할 수 없는 나날이었어요. 은아가 풀이 죽으면 죽은 대로 아이들이 뭐라 하였고, 뭔가 활기를 띠면 활기를 띤 대로 저럴 수 있냐며 아이들의 말이 많았어요.
자존심이 셌던 은아는 아이들에게 어두운 모습을 들키기 싫었고, 오히려 외양적으로 꾸미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참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인스타그램 에스크를 통해 어떤 아이가 은아에게 익명의 메시지를 보냈다.
언니도 뒤진 년이 어디서 나대?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얼굴이 너무 화끈거리고 눈물이 났던 거 같다. 아이라고도 할 수 없는, 이 비열하고 참담한 말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어머님,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아니에요.
그 후 당시 담임 선생님을 통해 메시지를 보낸 학생을 수소문하였으나 아무도 나서지 않았고, 결국 경찰 조사를 통해 학생을 찾아내어 학교 징계와 형식적인 사과로 사건이 일단락되었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 생각만 하면 아직도 피가 거꾸로 솟을 정도로 화가 난다는 것, 아직도 낯선 번호로 전화가 오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 가슴이 꿍 내려앉는다는 것. 그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 있을까마는 나도 두 아이의 엄마로서 그 밑바닥에 있는 큰 슬픔을 어렴풋이 본 것 같기도 하다. 은아는 원격수업을 계속 출석할 수 있을 거 같다고 하시니, 지금 중학교 3학년이니 체험학습 및 유예되지 않을 만큼 결석을 하며 일단은 중학교에 적을 두기로 했다. 은아가 읽을 만한 책을 챙겨드리면서 그래도 은아가 학교에 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돕겠다고 하며 어머님을 배웅했다.
은아와 전화상담을 하면 생각보다 목소리가 밝았다. 고양이와 지내고 있으며 미용이나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다고 하였다. 근황 말고는 건넬 수 있는 말이 많지는 않았다. 은아하고는 이제 학교 일정이나 일상을 문자로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는데, 하루는 문자를 보내고 한참이 되어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이상해서 어머님께 연락을 드렸는데 항상 즉각적으로 전화를 받으시거나 답변을 하시는데 그러지 않아서 몹시 걱정되고 애가 탔다. 퇴근 후에도 줄기차게 연락을 하였더니 어머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큰애 기일이 다가와서 마음이 뒤숭숭하여 잠시 연락을 받지 않았다고.
이후 은아는 학업중단숙려제를 통해서 상담 선생님하고도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다. 상담 선생님에게 은아가 속에 있는 말을 많이 하느냐고 하니, 나와 대화할 때와 마찬가지로 평소 근황만 한다고 했다.
은아는 자기의 슬픔을 남에게 이야기하면 그게 그 사람한테 전이될까 봐 그게 더 슬프대요.
큰 상처를 안고도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은아. 은아는 가까스로 중학교를 졸업하여 방통고에 입학하기로 했다. 은아가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되었기를 진심으로 빌어본다. 학년 말에 어머님은 그동안 이것저것 신경 써 주셔서 고맙다고 커피 쿠폰을 보내오며 감사 인사를 전하셨다. 나는 어머님께 마음만 받겠다며 돌려보냈다. 큰아이 때문에 은아 말고 둘째였던 오빠도 고등학교를 퇴학한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님이 짊어지고 보듬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을지 조심스레 어머님도 힘을 내시라고 말씀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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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다는 것은 때때로 힘들고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힘겨울 때도 있으며 어떨 때는 주저앉고 싶을 때가 분명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고, 삶을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한다고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