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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 아이 2

중학생의 세계

by 요롱 Mar 21. 2025

생각해 보면 민건이는 집에서 모델링할 사람도 물어볼 사람도 없었던 것 같다. 혼자 독백 같은 문자를 보내오거나, 가장 기본적이지만 접해본 적이 없는 단어의 뜻을 물어오기도 했다.   

  

선생님, 하복 언제까지 구입해요? 여기 왔는데 위에 옷 할 거냐고 묻는데요.

선생님 저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대요.

선생님 열 시에 자는 거면 적당한 거죠.

선생님, 수련회 때 입는 잠옷은 어떤 건가요?  

   

어떤 날은 새벽, 어떤 날은 하루의 일과 끝에 오는 민건이의 소소한 문자는-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엄마 모드가 되어서 친절하고 천천히 하나하나 답변해 주었다. 교실에서 민건이는 대체로 말이 없었는데, 가끔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와 위클래스에서 받은 초콜릿을 주기도 하고, 가방 속에 있는 초코파이를 교무실 선생님들에게 나눠주고 가기도 했다. 하루는 운동화 끈을 묶을 줄 모른다며 찾아와서 운동화 끈을 묶어 주었는데, 항상 묶어 줄 수는 없어서 위클래스에 있는 운동화 끈 매는 도구(중학생 중에서도 운동화 끈을 매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어서 상담실에 구비해 놓고 있었다!)를 빌려와 가르쳐 주었다.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배우는 줄 알았던 운동화 끈 매는 일이 사실은 체득하기가 무척 어렵고 생각보다 설명과 가르치기도 쉽지 않았음을 그때 알았다. 그런 결핍된 환경이 민건이를 느린 아이로 만들었겠지.  

   

중학생들은 아직 인격의 성숙이 진행되는 단계라 자신이 생각하기에 조금 모자라거나 느린 아이,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이는 아이를 놀리는 일이 일상이다. 그러나 민건이를 놀리는 아이는 없었다. 민건이는 교실에서 있는 듯 없는 듯 다른 친구들에게 조그만 일로도 해가 되지 않는, 무해한 아이였던 것이다! 실로 민건이는 건강검진을 위해 인근 보건소로 이동하는 일이 있었는데 차비가 없다는 친구에게 선뜻 자신의 돈을 내어주며 ‘빌려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준다'라고 말했다.(혹시나 상습적으로 민건이한테 돈을 빌릴까 봐 담임이 대신 빌려주기는 했지만) 그리고 민건이를 만만하게 보았던 같은 반 동규가 민건이의 국어책을 가져가 자신의 것인 양 한 적이 있었다. 민건이는 항상 책을 학교에 두기 때문에 없어질 리가 없었고, 가끔 동규는 남의 책을 가져가는 일이 있기 때문에 동규의 국어책을 살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표지 위에 자그마하게 ‘김민건'이라고 쓰여 있었다. 민건이도 그것이 자신의 책인 걸 알고 돌려받았다. 동규가 남의 것을 자신의 것처럼 여기는 무신경함을 지도할 필요가 있어 학생부에 알렸고, 학생부장 선생님이 그 사안을 조사했다. 그런데 민건이가 동규가 자신의 책을 가져간 것이 아니라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당황하여 민건이를 불러 왜 그렇게 말했냐고 물었었더니 동규가 벌 받는 게 싫어서 거짓말을 했다고 했다.     


9월에 1박 2일의 인성수련회가 있던 날. 민건이는 준비물이나 모이는 시간 등을 하교 후에 문자로 다시 묻긴 했지만, 무사히 수련회 장소로 출발할 수 있었다. 수련회 일정이 진행되는데, 수거한 핸드폰 중에서 끈질기게 자꾸 전화 오는 게 있어 받았더니 민건이 할아버지였다.     


민건이 수련회 왔어요! 내.일. 오.후.에야 집에 가요!     


큰 소리로 여러 번 말했지만, 할아버지가 전달하는 말을 못 알아들어서 그러셨는지 전화는 2~3시간을 주기기로 계속 왔다. 민건이를 불러 할아버지에게 전화하라고 했지만, 밤에도 몇 번인가 전화가 왔던 것 같다. 이런저런 일상을 겪으며 민건이는 1학년을 수료하게 되었고, 2월에 민건이로부터 할아버지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잘 듣지 못하더라도 할아버지가 집에서는 민건이를 대변해 주었는데 걱정이다고 생각하며 2학년 새 학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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