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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 Sep 23. 2021

'플라스틱 없이 장보기'를 용기 낼 수 있는 기회

소비 지원금을 대하는 또 다른 자세


1. 지난주 아이 고모 생일 겸 거의 3개월 만에 시댁 식구들을 만났다. 코로나로 서로 조심조심하다 큰 결심하고 만난 날.

내가 수육용 고기를 사 가기로 했었기에 가는 길에 대형 마트에 들러 장을 봤다.


이것저것 고르는데 맛있겠다는 생각은 잠시, 이미 마음 한편은 불편함이 몰려온다.


2. 매주 도수치료받으러 병원을 간다. 병원이 집에서 한 시간 반은 걸리기에 끝나면 좀 쉬었다 가고 싶어지는 날이 있다. 이날도 그러고 싶어서 있던 쿠폰도 쓸 겸 한 체인 카페에 들어갔다.


 조금 후 호출이 와 받아온 쟁반을 보며 얼른 먹고 싶다는 생각은 잠시, 쟁반에 당연한 듯 놓인 일회용기와 빨대에, 순간 아차! 싶었다. 코로나 여파로 매장에서도 별도의 언지가 없으면 일회용 컵에 나간다는 카운터의 공지 그를 뒤늦게 본 '내 탓'이었다.




제로웨이스트,

매일 실패하고 매일 고민한다.


 블로그를 시작하고, 플라스틱 쓰레기에 관한 글들을 쓰고, 관련 책과 강의들을 자꾸 접하면서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 평범하고 당연했던 일상들이 더 이상 그렇게 다가오지 않는 프로불편러가 되어버렸다.

또 한편으로는 제로웨이스트라는 운동이, 어찌 보면 모든 게 소비로 시작해 소비로 귀결되는 요즘을 살아가는 한 개인이, 쓰레기를 만들어내지 않고 살겠다고 선언하는 건, 어찌 보면 '내 집에만 쓰레기 될 만한 걸 들이지 않으면 돼.'라는 일종의 자기만족에서 그치는 일 인걸까 싶기도 했다.


그만큼 지난 몇 개월 간 제로웨이스트에 대한 관심이 불러일으킨 그 파급력이 얼마나 큰 지,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과 소비습관, 인간관계까지 송두리째 흔들리는 나를 보게 되었다.




그렇다고 나는 환경운동가도 아니고 활동가도 아니다. 이를 해결하자고 연대활동에 적극적이거나 능한 사람도 아니며, 지금 누리고 있는 편리함 또한 모두 놓을 수는 없다. 매월 환경단체에서 오는 소식지에 담긴 다양한 환경에 대한 쟁점 기사들을 모두 다 정독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 가능한 삶'과 '윤리소비'와 같은 난제들에 내가 하는 작은 실천들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면.. 하는 바람들이 커지고, 그로 인해 나도 어딘가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라는 걸 느끼고 싶은가 보다.





빈 샐러드 통을 들고 동네 정육점에 들르다.



 엊그제 저녁 찬거리가 떨어져 신랑에게 아이를 맡기고, 혼자 장을 보러 마트로 갔다. 우리 동네는 시장을 가려면 버스를 타고 15~20분은 가야 하고, 이마트와 한살림 매장은 버스로 10분 거리, 걸어서 10분 거리에는 홈플 익스프레스가 있다. 시장이 코 앞이면 정말 자주 갈 수 있을 텐데라는 아쉬움을 마음 한편에 지닌 채 홈플 익스프레스로 향했다.



근데 이날, 무슨 결심이었는지 아동 돌봄 쿠폰도 쓸 겸 갑자기 고기는 동네 정유점에서 사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이때다 싶어 빈 샐러드 통을 들고나가 보았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자칭 동네 탐방 겸, 한번 들른 적이 있었던 정육점. 그 이후로는 한 번도 들르지 않았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장을 보면서 고기만 정육점에 가서 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항상 보면 손님이 있더라..





매장에 들어서자 두 부부 사장님이 반겨 주신다.

내가 조심스럽고 조금은 부끄럽게,

"계산하고 이 통에 고기를 담아갈 수 있을까요? 얼마나 들어갈까요?" 여쭈었더니,

황당하다는 듯 웃으셨다. 이런 사람은 처음이라면서..


"그건 나도 모르지. 넣어봐야 알지."


멋쩍어진 나는,

"그렇죠? 제가 처음이죠?ㅎㅎ"


그러곤 나도 이유가 있다는 듯 한껏 장 봐 온 장바구니를 가리키면서,

"요즘 플라스틱 쓰레기 좀 줄여보려고 하거든요. 장 봐서 음식 하면 쓰레기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요.

보쌈용 고기 한 400g 이면 들어가지 않을까요?"라고 했다.


웃으시며 그러라고 하신다.

그러고는, 환경에 관심이 많으냐며 목살, 삼겹살이 좋은지 물어봐주시고, 기름 많은 부위가 좋으냐 적은 게 좋으냐 물어봐주시며 탁탁 잘라 무게를 잰 후 흔쾌히 샐러드 통에 담아주셨다.




 한, 450그람 정도 되었을까? 조금 더 담았어도 될 거 같았다. 여사장님이 아 그거 챙겨줘야지 하시며 월계수 잎도 넣어주셨다. 돼지고기는 너무 삶으면 맛없다고, 어떻게 삶으면 좋은지 친절히 레시피까지 알려주셨다.




생각보다 기분이 좋았다.

아마도, 내가 유난스러워 보였을 진 모르지만 이상한 사람으로 보시지 않고 흔쾌히 요구를 받아주셔서였던 거 같다.

고기 하나 사는 짧은 시간 동안에 이런저런 대화가 오갔다. 마트에서는 일방적으로 포장되어 있는 고기를 내가 보고 골라오기에 그런저런 대화가 필요가 없다. 그런 비대면 쇼핑에 더 익숙해져 있는 내게, 애써 샐러드 통에 담아 온 고기 한 덩이로 오랜만에 시장에서 장 본 듯한 기분을 느꼈다면 좀 과장일까?  



 이 후로 어제오늘, 비록 코로나 장기 사태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각종 지원금들이지만 이번 기회로 동네 괜찮은 슈퍼, 동네 괜찮은 정육점, 동네 괜찮은 과일가게도 찾아보고 생각만 하고 있던 용기나 주머니 챙겨가서 알맹이만 사 오는 #용기내 장보기를 해보는 좋은 기회이겠네 싶었다. 오고 가는 대화와 인심은 덤이다.



 이번 기회에 제로웨이스트 장보기 맛집을 평소 조금은 환경문제에 관심 있어하는 동네 친구에게 슬쩍 공유해줘야겠다.



작년 재난소득 첫 지원 때 떠오른 생각과 느낌들을 써두었던 글입니다. 따라서 지금의 제 개인적 경험과 상황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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