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곱슬머리앤 Jan 15. 2023

여전히 떨리는 것들로 채워낸 옷장 앞에 선


 통굽과 큰 운동화, 힙합바지가 유행이었던 세기말, 세상의 모든 힘듦과 기쁨이 내 것인 양 날이 선 채로 밀레니엄 십대를 보내고 있던 나는 무슨 일로 엄마와 함께 쇼핑을 하러 갔다. 쇼핑은 엄마보다 친구와, 백화점보다는 안양 1번가 지하상가가 더 좋았던 18살. 힐보다는 운동화가 어울리는 나이였는데 굳이 힐이 사고 싶다며 엄마를 대동하고 나선, 날 선 날이었다. 엄마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뭉툭한 앞코와 그 뒤를 높게 받쳐주는 통굽이 있는 힐을 고른 나를 한번 흘기지도 않고, 잔소리도 없이 사주셨다. 그런 엄마가 평소와는 사뭇 달라 낯설었지만 그냥 내 손에 들어온 그 구두가 좋고 신기했다.

 집에 와 그 구두를 신어보았다. 땅에서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이러다 발목이 꺾여서는 나자빠지는 건 아닌가, 친구들에게 웃음거리가 되려나 싶은 걱정이 있었지만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은 착용감에, 당당해지는 기분까지 드니 안심이었다. 유행 좀 하는 십대가 된 듯했는지 어깨까지 으쓱하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고, 허겁지겁 먹어치운 라면처럼 허기가 채워지자 구두를 향한 애정은 금방 꺼졌다. 지나고 보니 나에게 그 구두는 선망의 대상, 일탈의 도구였다. 더 어릴 적 엄마의 뾰족구두를 신고 똑똑 소리를 내며 끌고 다녔던 그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던, 그냥 한번 신어보고 싶었던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일탈의 출구가 되어주었던 내 첫 힐은 신발장 깊은 곳으로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으며, 엄마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런 나를 웃으며 두었고, 그 구두는 그렇게 잊혀졌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어느덧 내 나이가 그때의 엄마 나이와 엇비슷해졌다. 출산과 동시에 전업주부로 전향하면서 여러 가지가 적응의 연속이었지만, 의외의 곳에서 문제는 터졌다. 바로 옷장이었다. 출산 후 다행히 몸무게는 예전으로 돌아왔지만 어딘가 달라진 체형과 옷맵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아찔했던 골반이 아닌 갑툭튀가 된 어질 한 골반, 작아도 제법 봉긋해 존재감 발휘하던 윗가슴은 아이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느라 푹푹 꺼져갔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달라진 몸뚱이로 옷장 앞에서 멍하니 있는 날이 많아졌다. 짧은 미니스커트, 높은 힐, 허리가 잘록한 원피스, 장식이 많이 달린 니트나 단추가 많은 블라우스보다는 후다닥 입을 수 있고, 입으면 편하면서 단정한 그런 옷이 더 많이 필요했다. 그러다 어쩌다 자유부인이 되어 밖에 나갈 이유를 만들면 막상 입고 나갈 옷들이 없어 꼭 남의 옷장인 듯 한참을 그 앞을 서성였다. 옷장의 옷과 가방은 그대로인데, 내가 바뀐 것이다. 아니 내 취향은 그대로인데 자의 반 혹은 타의 반으로 그 취향을 바꾸어야 했다. 비로소 엄마가 되고 나니 취향이 보였다. 명품 옷과 가방은 없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나를 표현하는 걸 정말 사랑했던 사람이었구나.'라는 걸.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육아의 늪에 옷장의 카오스라는 예상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육아의 세계에선 무엇을 입을 것인지 선택할 시간과 기다림은 사치였다. 나는 한동안 눈앞에 보이는 무릎 나온 레깅스을 한 몸처럼, 그리고 가방이 아닌 아기띠와 유모차로 나의 패션을 완성시켜야만 했다.


 그렇게 출산 이전의 나와 이별하기 위해 옷과 가방, 신발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옷장의 카오스 앞에서 방향을 잃기 일쑤였다. 방향을 잡기 위해 필요한 '그 기준'들이 뭘까 찾느라 예상했던 것 보다 정리하는 시간은 길어졌다.

 변해버린 나이, 상황, 몸매와 내가 가진 개성, 분위기, 취향을 적절히 배합해 오랫동안 나와 한 몸이 되어줄 것들을 찾는 '안목'이 필요해졌다. 불혹의 문턱을 넘고 나니 명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짝퉁도 진짜일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우아하고 교양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걸 깨닫는 데까지 든 기회비용들.. 무수히 많은 시간과 후회, 그때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물흐물해진 텅 빈 지갑. 아무도 못 보게 가방 안주머니 속에 쏘옥 넣어두고 싶다. 그렇다 보니 예전처럼 그리 많은 옷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즉 개수는 많지 않아도 오래 입을 수 있으면서 언제 입어도 누추하지 않을 수 있는 옷과 액세서리들을 잘 선별해서 고르고 가꿔가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옷이나 신발, 가방 등을 사는 게 큰 과업이 되었다. 그러다가 타이밍을 놓쳐서 그냥 안 사고 지나간 일도 종종 생겼다. 때로는 빈티지 옷과 가방을 사기도 한다. 좋은 원단으로 잘 가꿔진 것들은 세월이 지나도 빛을 발한다. 빈티지와 중고에 대한 편견은 그렇게 사라졌다. 신중하게 고른 것들은 이상하게도 옷장에 머무는 시간이 길었다. 그런 정성이 아까워서일까. 반면 예쁜데 싸기까지 하니 별 고민 없이 사들인 것들은 늘 정리리스트의 1순위가 되곤 했다.



 친정 엄마의 옷장엔 엄마의 오뜨꾸띄르, 빨간 체크 투피스가 있다. 더운 여름 시원하게 입고 다닐 외출복이 필요했던 그녀는 브랜드의 아끼던 블라우스를 조각조각 뜯어 내 본을 만들었다. 그리고 원단시장에서 직접 실크원단을 골랐다. 어릴적 바지를 치마로 만들어 외할머니한테 혼이 났던 그녀의 고사리 손을 이젠 부라더 미싱이 대신해주었다. 그녀는 신명나게 옷 한 벌을 완성했다. 아끼던 블라우스는 그렇게 엄마의 손으로 재탄생했고, 같은 원단으로 당시 유행하던 하이웨이스트 항아리치마를 취향껏 만들었다. 그 옷을 입고 직장에 다니던 엄마의 모습이 참 좋았었다.


 어느날 엄마가 꺼내 보여 준 그 옷을 사진으로 남겼다. 비록 세월 낡아진, 요즘 같은 세련미는 없만 엄마가 가장 빛났던 30대 초반의 열정과 에너지그대로였다.  블라우스를 보며 좋은 재료와 정성으로 만든 물건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느꼈다. 그 물건이 내게 오기까지의 스토리와 함께 입고 쓰고 신었던 추억이 그 물건의 가치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 그 투피스는 은퇴해서 엄마의 옷장에서 쉬고 있지만, 조금 수선만 한다면 더운청바지에 툭 걸쳐도 손색없을 것 같은 아쉬움이 스친다. 현역으로 다시 복직할 수 없는지 한번 제안해볼까?

 

 자본주의의 축복 중 하나는 비교적 좋은 것들을 많은 사람들이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는 거다. 때문에 나 같은 사람도 따뜻하고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말' 좋은 물건들은 살 수가 없다. 사실 너무 비싸서 그 실체를 가까이해 본 적이 없기에 그것들이 얼마나 좋은지 진짜 명품인지 비교할 수도 판단할 수도 없다. 하지만, 내가 살 수 있는 것들 중에 적당히 고가의 물건들도 빛을 쐬어주고 곁을 줘가며 입고 쓴다면 그것도 곧 명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늘을 둥둥 떠다니고 싶었던 18그 구두는 이제 더 이상 없지만 그 이후로도 나의 허기진 욕망을 숱하게 채워줬던 그 구두들을 애도한다. 그리고 내가 엄마의 나이가 되어 옷장을 열었을 때를 상상해 본다. 그때는 7년 전의 나보다는 조금은 덜 서성이기를 바란다. 엄마의 오뜨꾸띄르 같은 옷은 가질 수 없겠지만, 나만의 명품이 될 것들을 부단히 찾는 일 또한 옷을 짓는 일만큼 의미 있을 것 같다. 애써 애도하며 찾아낸 그 공간을 한동안은 지켜주는 여유를 찾아야겠다. 그렇게 비워둔 공간에 진짜 가 숨쉴 수 있게 말이다. 

 여전히 떨리는 것들로 채워 옷장앞에  멋쟁이 할머니를 꿈꾼다.


 


 



 


 




이전 05화 반려 텀블러를 키우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