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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 Nov 21. 2022

버려진 우유팩에도 스타일이 있다.




 


 매주 화요일은 우리집 아파트 재활용 쓰레기 분리 배출일이다. 어느 주에는 별로 없어서 그다음 주에 버릴 때도 있지만, 자주 그러지는 못하고 보통은 어김없이 모아 둔 쓰레기들을 바리바리 들고 재활용 쓰레기장으로 향한다.




 그러다 최근 유독 잘 버리려고 노력한 것들이 있는데 바로 택배박스와 우유팩이다. 박스에 테이프와 라벨을 떼어내는 것과 우유팩을 씻고 펴말리는 거다. 그러다 보니 요령도 생겼다. 특히 택배박스의 테이프를 떼어 버리는 일이 일이 되지 않도록 나만의 2가지 버릇이 생겼다. 먼저는 택배가 오면 받은 즉시 박스를 분해하는 거다. 나중에 버릴 때 하려면 귀찮아지고 진짜 집안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지간하면 테이프를 가위나 칼로 자르지 않으면서도 조금 더 쉽게 떼어내려는 거다. 가위로 잘라내는 순간 나중에 버릴 때 더 번거로워지기 때문이다. 바로 테이프 여밈 부분과 박스 모서리 부분을 안으로 눌러서 쭉 떼어내면 가위가 없어도 말끔히 떼어낼 수 있다. 그러면 훨씬 손쉽게 말끔하게 보관 부피도 줄일 수 있고 나중에 선별처리장에 갔을 때 손도 줄여준다. 물론 테이프로 2중 3중 크로스로 덧댄 경우는, 참을인 여러 번 새겨야 하지만.


 그런데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면서 참을인 자를 열 번은 되뇌어야 하는 경우는 따로 있다. 바로 아이가 유치원에서 만들어 온 장난감이나 작품들을 다시 분해해 버려야 할 때다. 분리배출 난이도 최고난도를 자랑하며 등급을 매긴다면 아마 "재활용 어려움" 수준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중간에 홱 짚어 던지고 싶을 때도 있지만 최대한 참는다.




잠시 너의 휴대폰이어서 햄볶았어


 화를 부르지 않는 분리배출을 위해 아이와 약속을 했다. 일주일 동안 쌓인 작품들은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날인 화요일에는 몰아서 치우기로 하고, 스스로 분해해서 재료별로 버려보기로 작심을 받아놓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는 결코 자신의 작품을 먼저 버리려 하지도 않고, 아이 입장에서는 애초에 불공정한 약속이기에 화요일이 지나도 만들기 쓰레기는 방 한편에 쌓여간다.


결국 나는 분리하는데 몇십 분씩 걸리기도 하는 이 수제 장난감들을 일반 쓰레기에 버리기로 한다. 그런데 유독 그러지 못하는 게 있었으니, 그건 바로 우유갑이었다. 아이가 한 땀 한 땀 테이프와 장식들로 만들어 낸 종이팩 오뜨꾸띄르들은 일주일의 짧은 생을 보내고 새로 입었던 옷을 벗고는 두 번째 삶을 위한 준비를 마친다.


 



 비록 요로코롬 행색은 초라해졌지만, 휴지와 키친타월과, 종이로 다시 쓰일 수 있으니 형태가 구겨져도 찢어져도 괜찮다.

 그렇게 분해한 우유팩은 가까운 동주민센터나 한살림 매장, 요즘은 동네 제로 웨이스트 샵으로 간다. 그리고 또 다른 종류의 종이팩인 안에 은박으로 코팅된 테트라팩도 같이 모아간다.




 어느 날 인스타에서 아주 인상 깊은 움직임들을 보았었다. 경남 창원에서 엄마들 몇 명이 의기투합해 종이팩이 온전히 재활용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시에 여러 차례 건의하고, 아파트 관리사무소와도 지속적으로 협의해가면서 우유팩이 별도로 배출될 수 있게 공간을 마련하고 관리해나가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그 피드들을 여러 차례 보다 보니 내 눈에도 우리 아파트 종이 배출함에 버려진 우유팩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도 몇 차례 그냥 지나치다가 아무래도 눈에 밟혀서 가져오게 되었다. 조금 번거롭지만 어차피 종이팩들 모으고 있으니, 그리고 장난감으로 변신했던 우유팩보다는 씻어버리기 수월한 마음에 종종 도로 가지고 와 베란다에서 씻어 말린다.


 


 그렇다고 매번 혹은 일부러 그러면 봉사와 노동이 되기 때문에 그러지는 못하고, 몸과 마음의 여유가 있는 날, 크고 작은 박스들 사이에서 빼꼼히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우유팩들만 짚어와 싹 목욕을 시킨다. 그런데 몇 번 그렇게 가져와서 씻고 펴서 말리고 하다 보니 버려지는 우유팩에도 저마다의 스타일이 있고, 분리배출의 손길들이 묻어나 있다는 걸 발견했다.




 


예를 들면, 그냥 먹고 나서 입구도 모양도 안에 내용물도 그대로 버린 사람. 어떤 사람은 헹궈서 그대로 버린 사람. 어떤 사람은 입구는 네모로 펼쳐 씻어서 버린 사람. 어떤 사람은 씻어서 납작하게 눌러 버린 사람. 혹은 다 먹고 빨대를 안에 넣은 채 같이 버린 사람.




 

 폐지 사이사이에 나름의 쓰임을 다하고 버려진 종이팩을 주워 오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이렇게 버려도 충분한 재활용 시스템이 촘촘히 갖춰져 있다면, 그런 과정에 돈을 쓰는데 아끼지 않는다면, 그게 어쩌면 더 돈이 될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게 투자하고 연구한다면.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나무들로 만든 최고급 펄프로 종이팩을 만든다. 당연히 잘 씻어서 버리면 훌륭한 자원이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종이팩들은 재활용되지 못하고 태워진다. 그래서 재생휴지를 만드는데 드는 재료(재활용 종이팩)를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 와서 쓰고 있다고 들었다. 그 비용을 줄이고, 잘 모아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면 생산비용도 줄이고 에너지도 줄일 텐데 정말 안타깝다.



 쓰레기였기 이전에 누군가에게 쓰임을 다했던 물건들의 사용새를 버려진 모습에서 찾는다. 다시 쓰일 수 있게 종이류에 버리려고 노력한 최소한의 흔적들을 마주하며 종이팩 하나에도 사람들의 성격, 습관들이 엿보였다.


 정말 이 세상에는 어느 하나 같은 게 없나 보다. 제각기 너무나도 다른 우리들이 하나의 마음을 모은다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이고 정성을 쏟아야만 가능한 걸까. 또 그렇다고 모두가 다 똑같은 생각과 가치를 향해 산다면, 그것만큼 지루하고 우울한 세상도 없겠지만.


 버려진 우유팩들을 보다가 든 생각을 한 자 한 자 적다 보니 생각이 여기까지 흘렀다. 마음을 모으는 일은 흩어진 종이팩처럼 어렵지만, 잘 펴고 깨끗이 말려 모아 가져온 종이팩들을 보면서 가끔은 단순히 종이팩 그 이상의 가치가 있음을 느낀다. 어쩌면 각자의 소중한 시간과 습관을 역행하며 모아낸 노력의 흔적들이며, 당신의 쓰레기가 어딘가에서 다시 새것이 되어 잘 쓰이길 바라는 진심도 함께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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